[여적] 안네의 밀고자
[경향신문]
누가 은신처의 안네 프랑크 가족을 밀고했을까. 전직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중심이 된 전문 조사팀이 6년간의 조사 끝에 같은 유대인 출신의 공증인 아르놀트 판덴베르크가 밀고자라고 밝혔다. 유대인 조직의 일원으로 동족들의 비밀주소 목록 접근권을 가진 그가 정보를 나치에 넘겼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암스테르담의 한 건물에서 2년간 숨어지낸 과정을 기록해 나치의 잔혹성을 폭로한 <안네의 일기>.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던 일가족은 누군가의 밀고로 강제수용소로 잡혀가 아버지 오토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해방을 코앞에 둔 1945년 초였다.
그동안 거론된 용의자는 30여명으로, 가족과 가까운 인물일 것으로 짐작은 돼 왔다. 그런데도 판덴베르크가 밀고자로 거론되지 않은 배경이 있었다. 사실 오토는 1964년 판덴베르크가 밀고자라는 제보를 받았다. 하지만 <안네의 일기>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마당에, 동족에 의해 밀고돼 가족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반유대주의 정서가 확산될까봐 묻어둔 것으로 보인다. 입증할 추가 증거가 없는 점도 부담이었다. 가족을 잃게 만든 동족을 두둔하게 된 셈이다.
밀고는 은밀한 사정을 알 만큼 신뢰관계가 있어야 가능하다. 권력은 금전이나 신분의 상승 등 보상으로 밀고를 유도한다. 박탈을 매개로 한 강압도 있다. 판덴베르크에게는 가족의 생명이었다. 자기 가족의 강제수용소행을 막으려 프랑크 일가를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밀고는 전쟁과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냉전 초기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이른바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도 밀고는 만연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전설적 안무가 제롬 로빈스는 동성애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위협에 굴복해 동료들 이름을 댄 뒤 밀고자 멍에를 썼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엘리아 카잔 감독도 동료를 팔아넘긴 뒤 후회했다.
판덴베르크는 1950년 암으로 숨졌다. 로빈스는 예술계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카잔의 뛰어난 작품성은 빛이 바랬다. 안네의 밀고자를 추적한 영화감독은 말한다. “진짜 질문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가 돼야 한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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