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산업재해들.. 결국 최상위 책임자에 책임 묻지 못했다

이효상 기자 2022. 1. 19. 18: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노동절이던 2017년 5월1일,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내 7안벽에서 골리앗 크레인과 충돌한 타워 크레인의 붐대가 부러져 해양플랜트 제작 작업 현장 쪽으로 넘어져 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여러 명이 사망하는 중대재해 사고가 나도 원청의 최고 책임자는 처벌을 피했다. 하청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책임도 하청의 관리자가 졌다. 이는 최고경영자의 안전사고 방지 의무를 규정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이 시행돼도 수사·재판에서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무부 중대 안전사고 대응 태스크포스(TF)는 오는 27일 중대재해법 시행에 앞서 최근 5년간 발생한 주요 안전사고 16건을 분석한 사례집을 19일 발간했다. 사례집은 유형별 사고의 원인과 사고 이후 관련자에 대한 사법처리 현황 등을 담고 있다.

16건의 사례 중 14건이 ‘2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사망자 1명을 포함해 3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사고였지만 원청의 최고 책임자는 처벌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청 책임자가 수행한 안전 관련 업무와 발생한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는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원청이 현장 안전에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없다고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7년 12월 경기 용인시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다. 타워크레인 높이를 한 단 높이는 과정에서 타워크레인이 균형을 잃고 넘어져 작업자들이 지상 75m 높이에서 추락했다. 작업자 3명이 사망했고 4명은 부상을 입었다. 잘못된 작업 순서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당시 작업에는 우리나라에 10대가 채 되지 않는 40톤급 타워크레인이 사용됐는데, 수입산인 이 타워크레인은 일반적인 공사현장에서 사용하는 15톤급 타워크레인과 작동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도 15톤급 타워크레인처럼 작동하려다 중심을 잃고 무너졌다.

사고 배경에는 거미줄 같은 원하청 구조가 있었다. 대림종합건설은 물류센터 공사를 발주받아 A업체에게 타워크레인 납품 및 설치 업무를 하청줬다. A업체는 40톤급 타워크레인을 소유한 B업체에서 국내에는 희소한 프랑스제 타워크레인을 빌려왔고, 일당을 받는 개인사업자 C씨의 팀에 실질적인 설치 업무를 맡겼다. A업체는 사고 타워크레인이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일반 15톤급 타워크레인처럼 작업계획서를 작성했다. C씨의 팀은 사고 타워크레인을 다뤄본 경험이 없었는데도 작업을 강행하다 사고가 났다.

검찰은 A기업의 이사와 법인, C씨를 기소했다. 발주처는 기소대상에서 빠졌다. 복잡한 원하청 구조를 만든 대림종합건설에서도 현장소장과 법인만 기소됐다. 법원은 C씨에게는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A기업에는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대림종합건설 법인과 현장소장에게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일부 무죄로 판단해 각각 벌금 700만원, 5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법원은 “공사현장에 10명도 안되는 관리인원만 배치했다”면서 대림종합건설 측의 안전사고 주의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사현장에 소규모 인원만 배치한 것을 관리 소홀의 근거가 아니라 면책의 근거로 든 것이다.

2017년 5월 발생한 삼성중공업의 타워크레인 붕괴사고는 현장의 최고 책임자인 조선소장이 유죄 판단을 받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크레인 두 대가 충돌해서 발생한 사고로 하청 노동자 6명이 죽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검찰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장과 법인까지 기소했지만 1심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조선소장부터 골리앗 크레인을 운행하는 팀까지 총 7단계의 부서를 거쳐야 하는 구조여서 조선소장에게 구체적·직접적인 주의 의무는 없다고 봤다. 반면 항소심은 7단계를 거쳐야 하는 수직적 계층구조인 만큼 안전대책에 대한 권한도 상급 관리자들에게 있다고 보고 조선소장의 책임을 인정했다.

상고가 제기됐지만 조선소장이 사망해 대법원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사례집은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최고경영자에게 일반적 지휘·감독의무만 인정되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주의의무가 인정되지 않은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의 책임이 인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거나, 각 분야 책임자로부터 구체적인 보고를 받았거나,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전례가 있어 위험성을 인식한 경우에 한해 원청 또는 발주처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천물류창고 화재사고 역시 발주처 관계자가 사상 처음으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주의의무 자체가 없다는 취지로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원청 책임자의 행동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경우에만 법원은 원청의 책임을 인정했다. 2019년 강릉 과학단지에서 수소탱크가 폭발해 2명이 사망한 사고에서 법원은 사업 총괄 책임자 D씨에게 금고 1년6월을 선고했다. D씨는 작업자가 설비 설치를 거부했음에도 1000시간의 실험시간 달성을 위해 시스템 가동을 강행해 사고를 야기했다.

중대재해법은 도급·용역·위탁 등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사업의 실질적인 책임자에게 재해를 예방할 의무를 규정한다. 그러나 재판에서 최상위 책임자의 행위와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용희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지난달 법무부와 고용노동부가 개최한 중대재해법 공동학술대회에서 “구체적인 안전 의무 위반행위와 중대재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인정 문제는 법 시행 후 실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고, 많은 사안에서 그 인정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기업에 과징금 등의 제재를 무겁게 가하는 방법을 택하는 대신 엄격한 책임주의 및 입증책임이 따르는 경영책임자 개인에 대한 형사벌을 택한 이상,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결과”라고 말했다.

입증 책임이 있는 검찰과 판례를 만들어나갈 법원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일반적인 사건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으로 인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인데, 중대재해법의 처벌 대상은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은 부작위범”이라며 “중대재해법에서 요구하는 특정 행동을 했다면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상관관계를 인정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반복적인 사고로 시민 청원 끝에 만들어진 법의 입법 취지 달성을 위해서는 기소할 책임이 있는 검찰과 판례를 만드는 법원의 노력,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