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칼럼] 김건희는 영악했고 MBC는 무기력했다

박찬수 2022. 1. 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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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김건희씨의 사적 통화가 공개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또는 선거에 불필요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면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선거 시기에 언론 보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법원 결정도 선거 유불리도 아니라 오직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국민의 알권리이다.
김건희씨와 <서울의 소리> 이아무개 기자의 7시간 통화 내용을 보도한 문화방송(MBC)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박찬수 대기자

<문화방송>(MBC)의 김건희씨 ‘7시간 통화’ 녹취록 방송 이후, 200명에 불과하던 김건희씨 팬카페 회원 수가 1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방송 전에 국민의힘이 법원에 방송 중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문화방송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던 걸 생각하면, 뜻밖의 상황 전개인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힘에선 이참에 김건희씨가 공개 활동에 나서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정치에서 ‘유불리’란 팽팽한 줄을 타는 팽이와 같아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속단하기 어렵다. 2012년 대선 후보 토론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거세게 몰아붙여 많은 이에게 통쾌함을 안겼지만, 결과적으론 박 후보 지지자들을 더욱 결집하는 쪽으로 작용한 게 단적인 예다. 그러나 한가지 꼭 짚어야 할 건 있다. 후보 부인의 사적 통화까지 방송에 내보내야 하는가에 대해선 각자 생각이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발언을 보도한다면 국민이 내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충분한 취재를 덧붙였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국민 알권리보다 법원 가이드라인을 앞세운 것 같은 모양새가 돼버렸다.

단적인 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대목이다. 문화방송은 김건희씨가 “조국 수사를 그렇게 크게 펼칠 게 아닌데 너무 조국 수사를 많이 공격을 했지, 검찰을. 그래서 검찰하고 이렇게 싸움이 된 거지. 빨리 끝내야 된다는데 계속 키워가지고 … 사실은 조국의 적은 민주당이야”라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대목은 빠져 있다. 나중에 <서울의 소리>가 공개한 녹취 파일을 들어보면 김건희씨는 “가만 있었으면 조국 전 장관이나 정경심 교수가 구속 안 되고 넘어갈 수 있었거든.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 너무 키웠지”라는 발언을 했지만, 문화방송 보도에선 찾아볼 수 없다. 조국 수사를 지휘했던 검찰총장 부인이 ‘애초엔 조 전 장관 부부를 구속시킬 생각이 없었지만, 저쪽에서 너무 반발하니까 구속시켰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면, 과연 그것을 김건희씨 개인 의견이라고 볼 수 있을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 건 아닌지, 그렇다면 윤 후보는 명백히 검찰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건 아닌지 따지고, 당시의 상황과 사실관계를 짚었어야 했다.

가장 의아스러운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아무리 녹취 파일이 제보받은 것이라 해도 발언 내용이 사실인지, 그 발언이 지칭하는 내용 또는 맥락은 정확하게 무엇인지 추가 취재해서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 책임은 해당 언론에 있다. 그러나 문화방송 보도에선 통화 외에 자체적으로 보완 취재한 내용을 찾기 어렵다. 조국 전 장관 부부를 애초엔 구속시킬 생각이 없었는데 구속시켰다면, 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이는 김건희씨가 아니라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후보가 아닌가.

김건희씨 팬카페를 들썩이게 만든 ‘당당하고 솔직한 해명’은 과연 진실에 부합하는지도 검증하고 따져볼 필요가 있었지만 미흡했다. 여러 의혹을 해명하는 김건희씨의 목소리를 들으면, 김씨는 <서울의 소리>가 언제든 보도할 수 있으리란 점을 인식하고 발언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때론 기자를 회유하고 때론 농반진반으로 겁박하는 모습은, 물론 사적 통화였기에 그랬겠지만, 자신감에 가득 차서 영리하게 기자를 상대한다는 인상을 준다.

언론이 획득한 정보 또는 제보의 내용이 사실인지 자체 취재를 통해 검증하고, 국민에게 알려야 할지 여부를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설령 보도에 따른 정치적 논란이나 법적 책임이 따르더라도, 그 결정권을 온전히 법원의 손에 맡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그 경계선을 끊임없이 확장해온 배경엔 공익을 앞세운 언론 보도가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법원 결정에 따라 통화 내용 일부가 보도 내용에서 제외됐습니다. 시청자의 양해를 바랍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사라진 내용 중에는 정말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은 없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김건희씨의 사적 통화가 공개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또는 선거에 불필요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면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선거 시기에 언론 보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법원 결정도 선거 유불리도 아니라 오직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국민의 알권리이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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