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끔찍했던 '영유아 살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2022. 1. 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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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당시 가해자 상당수는 과부… 1년에 50여 건 부모의 강제 결혼·남편 외도 등 원인 되기도 용서 못 받을 잔혹범죄 뿌리 뽑을 방법 없나

대한민국에 영유아 학대·살해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취약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는 느낌이다. 100년 전에도 이런 잔혹범죄는 신문 지면을 달궜다. 당시엔 상당수 가해자들이 과부였고, 생활고에서 비롯된 것도 많았다. 그 끔찍하고 비통한 이야기들을 한번 찾아가 본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22년 1월 15일자 매일신보에 '법정(法廷)에서 본 조선 여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법정에 서는 조선 여자의 과반수는 영아 학살과 간통인데, 대부분 과부의 범죄가 많은데, 법정에 선 과부의 범죄 사실을 들으면 실로 비통하다."

이렇듯 영아 살해와 간통은 과부들에 의해 많이 저질러졌다. 1921년 4월 20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황해도 고산군 함치호(咸致鎬·39)라는 여성은 본부(本夫) 이우식(李禹植)이 죽어 이별하고 친정집에 와서, 그 동네의 김성식(金晟植)과 정을 통해 오던 중 아기를 배어서 여아(女兒)를 낳았는데, 세상의 비난을 염려하여 그날 자기 집 방안에서 여아를 엎어놓고 목을 손으로 눌러서 질식케하여 살해한 후, 사체를 그 동네 공동묘지에 갖다 내버린 것이 발각되어, 살인사체유기죄로 경성지방법원에서 3년 징역에 처하였더라."

1922년 1월 15일자 매일신보에도 비슷한 기사가 실려있다. "강원도 춘천군 방씨(方氏·35)라는 여성은 1911년 남편 김홍현(金洪鉉)과 사별한 후 과부로 10년간이나 정조를 지켜왔음에, 그 동네 최형집(崔亨集·30)이란 자와 불의(不義)가 생겨 잉태(孕胎)하게 되어 작년 7월 25일에 이르러 사산한 후 그 아기를 강 급류에 집어넣었다 발각되어 방씨와 최씨 두 명은 사체유기죄로 각각 징역 1년에 처하고 2년간 집행유예하기로 되었더라."

1921년 8월 공주지방법원 대법정에 섰던 담양 사는 이점현(李点現·39)이라는 과부 여성도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1년 전에 눌러 죽인 아기의 해골을 증거품으로 면전(面前)에 내놓자 그는 "집이 가난하여 충분히 양육할 수도 없고 또 과부로서 절개를 지키기 어려운 고로 아이를 죽였습니다"라고 울면서 참회한다.

세월이 흘러도 과부의 영아 살해는 근절되지 않았다. 매년 50여건씩 일어났다. 1935년 1월 27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조선에서 과부가 재가(再嫁)하지 못하므로 여러 가지 가정적 비극이 많고 사회 문제도 또한 많은 터인데, 그 중에서도 과부를 중심으로 한 유산 쟁탈전은 조선의 독특한 사회문제로 되었으며, 과부의 부정한 결정인 영아 살해 등 살인사건은 1년에 약 50여건에 달하여 이것이 또한 조선의 특수범죄로 되었는 바, 과부의 재가하지 않는 사실에서 발생되는 폐해는 과부 자신의 희생 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도 많은 것이라 한다."

부모의 강제 결혼으로 인한 비극도 있었다. '요강(溺缸) 속에 영아 사체'라는 끔찍한 제목의 1922년 1월 24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경기도 장단군의 이명임(李明任·23)이라는 여자는 한학성(韓學成)의 처(妻)가 되었던 바, 이것은 당사자의 의사는 존중하지 아니하고 한학성의 집이 부유하게 지냄에 병신(病身)임을 막론하고 강제나 다름없이 혼인을 하였던 바, 필경은 부부 사이에 정의(情誼)가 깊지 못하여 이명임은 자기 친정으로 왔다가 차제남(車濟南·27)과 불의의 관계가 생겨 아이 하나를 낳으려고 할 때에, 오줌이 들어있는 자기 요강에 계집아이를 낳아서 두 번이나 소리를 치고 우는 것을 친정 어미와 함께 세인(世人)의 이목을 속이기 위하여 그냥 요강에 넣어서 죽여 버린 것이 탄로된 것인데 (중략) 이것은 그 부모된 자가 지어준 허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바로, 범죄자가 본부(本夫)를 경멸하여 간음한 것이 아니요, 본부는 정교(情交) 불능으로 부부된 의(意)가 없음에 일시 친정에나 가면 위안이 될까하여 왔던 차에, 방년(芳年)의 춘정(春亭)에서 자연히 생겨난 것이 확실하여, 추한 관계로 맺어 나온 아이를 참혹하게 죽인 것은 우매한 일이나 조사 내용을 보면 참으로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데, 실로 보통 남녀가 추한 관계로 생긴 아이를 죽이거나 사체를 버리는 것 보다는 다르더라."

첩을 얻은 남편의 무정함으로 인해 자신이 낳은 아기를 죽인 일도 발생했다. "평남 성천군 나인엽(羅仁燁·41)이라는 여자는 17년 전부터 현재의 남편 박인언(朴仁彦)과 동거하여 오며 구차한 살림살이에 갖은 고통을 10년 동안이나 맛보아 오다가, 다소 생활의 여유를 얻게 되어 바야흐로 가정의 단맛을 꿈꾸려 할 즈음에, 그 남편은 주제넘게 여씨(呂氏)라는 젊은 여자를 작첩(作妾; 첩을 둠)하여 동거하며 온갖 애정을 모두 첩에게 옮기고 조강지처와 슬하의 자녀들을 도무지 돌아보지 않으므로 항상 비관으로 세상을 지내오던 중, 지난달에는 이미 자기 남편으로부터 잉태되었던 아들을 낳게 되었으므로 그 어린 것 역시 외로운 자기 슬하에 죄 없이 고생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이제 죽여 없애 그 불쌍한 광경을 아니 보는 편이 낫다 하고, 곧 아이가 세상 밖에 나오자마자 목을 눌러 죽인 후 산기슭에 매장하였던 바다." (1921년 12월 5일자 매일신보)

그렇다고 인간의 본능이 어디 속세에만 있겠는가. 1922년 1월 14일자 매일신보에 종교계에서 벌어진 사건이 소개되어 있다. "함경남도 북청군 백운암의 승려 황용택(黃龍澤·30)은 그 절 부속 청련암 승방의 여승 현태중(玄泰仲·39)과 은근한 정을 통한 결과, 현태중은 잉태하여 딸을 순산하였는바, 중의 몸으로 이와 같은 일이 세상에 발각될 것 같으면 불교의 치욕이라 하여 그 아기를 밭을 파고 산 채로 묻어버리고 서로 비밀을 지키던 중, '발 없는 말이 천 리까지 간다'는 말과 같이 드디어 북청경찰서에 탐지되어 황용택을 1월 2일 붙잡았고 현태중도 체포되어 지금 유치하고 취조 중이라더라."

100년이 지난 지금도 영유아를 학대·살해하는 사건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살해되거나 학대받는 아기들을 보면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수치(羞恥)'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의 본성에는 선한 천사만 있는 게 아니라 어두컴컴한 악마도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용서받지 못 할 '잔혹범죄'를 뿌리채 뽑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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