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봐주기'가 필요한 때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박현철 콘텐츠기획부장
법원과 검찰을 취재하던 시절, 온·오프라인을 통해 들어오는 검사(검찰) 관련 제보는 둘 중 하나였다. ①‘이아무개 검사가 최아무개를 기소한 건 문제’라는 것과 ②‘이아무개 검사가 최아무개를 기소하지 않은 건 문제’라는 것. ①은 그나마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 그 논리를 근거로 수사와 기소 과정의 부당함을 따져볼 수 있었다. ②는 난감하다. 제보자의 말을 듣고, 취재를 해보면 분명 검사의 불기소(또는 기소유예) 결정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걸 기사에 담기가 어려웠다. 불기소 결정문엔 별다른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 “…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가 고작이었다. 담당 검사와 연락이 닿아도 “결정문에 다 썼다”고 하면 더 따져 묻기도 어려웠다. 맘 같아선 기사에 “검사가 봐줬네”라고 쓰고 싶었다.
기소 편의주의.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 것(공소 제기)도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도 검사 재량이라는 뜻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검사는 피의자의 나이나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나 수단 등을 고려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다”며 기소 편의주의를 보장하고 있다. 법에 보장된 권한이며 기소를 하지 않으니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수도 없다. 제보 ②를 기사로 쓰기 어렵거니와 제보자들(주로 피해자 또는 고소고발인) 가슴에 응어리가 맺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검사의 기소 편의주의는 특히 검사나 그 가족·친인척을 수사할 때 ‘빛을 발한다’. 알려진 사건만 나열해도 24시간이 모자랄 테고, 최근으로 보면 2020년 12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술접대를 받은 현직 검사 3명 중 2명을 불기소한 경우가 있다. 검찰은 ‘먼저 자리를 떴으니 이후 술자리에 들어온 밴드와 유흥접객원 비용은 빼주는’ 계산으로 검사 2명의 향응 액수를 100만원(청탁금지법의 허용 금액) 아래로 맞춰 불기소 처분했다.
그래서, 검사를 믿을 수 없으니, 조건이 충족되면 반드시 기소하게 하는, 기소 법정주의로 가자는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다. 기소 편의주의의 진짜 필요성을 말하려는 중이다. 아래 같은 경우는 어떨까.
오피스텔 관리 일을 하는 60대 박아무개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됐다. 오피스텔 앞에서 중고물품을 파는 노점상 김아무개씨와의 마찰이 시작이었다. 주민들은 김씨의 노점이 거슬렸고, 관리인 박씨의 등을 떠밀었다. 20년 전부터 같은 곳에서 장사를 했다는 김씨는 완강했다. 참다못한 박씨는 김씨의 좌판 자리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놓아뒀다.
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쓰레기통을 치운 뒤 물건을 펼쳐놓았고, 화를 참지 못한 박씨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벽에 던졌다. 그 음식물 쓰레기가 김씨의 물품에 튀었다. 검찰은 박씨를 벌금 30만원에 약식기소했고, 그는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재판 결과는 벌금 20만원의 선고유예. 선고유예는 당장 형을 선고하지 않고 2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하게 해 전과 기록이 남지 않도록 하는 판결이다.
재판 과정에서 김씨의 피해는 ‘음식물이 튄 책 1권’으로 줄었다. 이 중고책 가격은 5천원이었다. 검찰은 벌금 30만원 구형을 바꾸지 않았다. 1심 선고 5일 뒤 검찰은 양형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5천원짜리 책에 튄 ‘음쓰’…검찰은 벌금 30만원을 구형했다
기소와 구형, 그리고 항소. 기소 편의주의를 활용해 피의자(피고인)를 ‘봐줄’ 기회가 검찰엔 세번이나 있었다. 기소를 하지 않을 수 있었고, 1심 판결 전이라도 공소를 취소하거나(형사소송법 255조) 구형량이라도 낮출 수 있었고, 판결에 불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2명의 검사를 기발한 계산법으로 불기소해주던 그 정성과 ‘명석함’의 절반만 활용했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검사가 봐줬네” 하며 기사 쓸 기자가 있지도 않을 텐데.
때마침 중국 상하이 인민검찰청이 인공지능(AI) 검사를 개발해 기소 권한을 줄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서 상상해봤다. 인공지능 검사에게 그동안 대한민국 검찰의 기소 편의주의 사례를 입력하고, 나쁜 사례와 바람직한 사례를 알려준 뒤, 술접대 검사 사건과 관리인 박씨 사건을 맡기면 어떻게 될까. ‘결정을 내리는 데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그동안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는지.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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