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너도 죽는다, 그리고 나도

김은형 2022. 1. 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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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건축가 정기용은 다큐 <말하는 건축가>에서 “밝은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했다. 허둥대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말하는 건축가>의 스틸컷

김은형 | 문화기획에디터

새해 첫날, 친구와 죽음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신년대담을 나눌 만한 석학은 물론 아니고, 시아버지가 얼마 못 사실 거 같다는 이야기였다. 구순을 훌쩍 넘기신데다 지금까지 중증 질환 한번 앓으신 적 없고, 정신은 여전히 오륙십대 자식들보다도 맑은 분인데 소화력을 비롯해 모든 기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친구의 말. 평균수명 83년 가운데 거의 십년을 병마와 싸우다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한국인의 생애주기인데 이런 마무리는 모두가 꿈꾸는 결말 아닌가.

“맑은 정신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또렷하게 인지하면서 엄청나게 두려워하시거든. 옆에서 자식들은 어쩔 줄 모르고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야.” 치매에 걸려 자식도 못 알아보고 가족들에게 물리적 심리적 고통을 안기면서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걱정만 했지, 죽음을 직시해야 하는 상황은 경우의 수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친구와 통화가 끝난 뒤 십여년 전 아버지의 죽음이 기억 밑바닥에서 쑥 올라왔다. 돌아가시기 6개월 전쯤부터 아버지는 폐가 안 좋아졌다. 하지만 병원의 별다른 주의가 없어 범상한 노환이라고만 여겼다. 어떤 죽음의 그림자도 느껴지지 않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졌고 불과 일주일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숨이 막혀 쓰러졌지만 아버지의 정신은 멀쩡했다. 온갖 기기를 몸에 붙인 채 누워 있는 한 침상의 환자를 가리키며 “저이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 같다”는 참견까지 했다. 정작 의사는 아버지가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 이미 가족에게 통보한 상태였지만 “아버지가 저분보다 먼저 가실 거예요”라고는 물론, 말할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임종을 하기 위해 일반병실로 옮길 때도 아버지는 본인이 회복되어 옮기는 거라고 착각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우리 형제들은 갈팡질팡했다. 아버지에게 임종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말다툼을 벌였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이 아버지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또 거기서 기도삽관을 하느냐 마느냐로 우리는 다시 말다툼을 벌이다가 “내 아버지라면 하지 않겠다”는 의사의 의견을 듣고서야 허둥지둥 임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눈을 뜨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채 5분도 못 되는 작별 인사를 한 거 같다. 어린 시절 추억 몇가지를 이야기하면서도 더 중요한 게 있을 텐데, 이게 아닌 거 같은데, 이건 뭐지, 드라마 속에 들어간 건가, 정말 아빠가 죽는 건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에 머릿속은 헝클어져만 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맺혀 있는 생각. 아버지는 떠나는 순간까지 ‘이거 실화냐’ 했을 것만 같다.

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죽음은 어느 정도 불가항력이었고, 사고 등 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가족 모두 너무 준비되지 못한 작별을 했다는 후회가 든다.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면서도 마무리의 절차를 밟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는 친구의 시아버지와 가족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수십년 동안 무뚝뚝하게 지내온 가족끼리 갑자기 살갑게 손잡고 고맙다, 사랑한다 말하는 게 어색했겠지만 그래도 미리 연습했어야 했다. 아버지와 지냈던 좋은 시간들, 아버지는 잊었지만 나만 기억하는 아버지의 어떤 모습들, 아버지가 말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몰랐던 것들을 물었어야 했다. 아툴 가완디가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 그저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이 쓸 수 있기를 원할 뿐이다”라고 썼듯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조력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모두가 마지막에 허둥대지 않기 위해서 조금씩 준비해가야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암 투병을 하다가 2011년 세상을 떠난 건축가 정기용은 그의 마지막을 담은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서 “밝은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위엄 있게 세상과 이별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어령은 그의 책 <마지막 수업>에서 죽음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조차 자신의 죽음은 두려워했다면서 타인의 죽음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라면 자신의 죽음은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덤벼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호랑이를 만나는 시간은 올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가족과 친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새해, 죽음과 좀 더 가까워지기로 한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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