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처럼 영원한 왕권' 욕망 그린 일월오봉도..사진으로 보는 해체부터 수리까지
[경향신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일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의 보존처리를 완료하고, 보존처리 과정과 관련 연구 결과를 담은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소는 의궤, 유리건판 자료 등을 토대로 금박 장황을 복원했다. 일월오봉도 병풍틀 배접지에 사용된 시권으로 1840년대 이후 제작품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그 아래 다섯 봉우리와 소나무, 파도 치는 물결을 묘사한 그림이다. ‘일월오봉병’ ‘오봉병’ ‘일월곤륜도’ ‘일월오악도’ 등으로도 부른다. 그림의 주축을 다섯 개의 산(嶽 또는 岳)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일월오악도, 다섯 개의 봉우리(峰)로 보는 관점에서는 일월오봉도라 칭했다. <숙종실록>(6권)을 보면 숙종 3년 2월27일자 기사에 ‘어좌에 오악(五岳) 그림 병풍’이란 표현이 나온다.
묘사 대상이 된 자연물은 영원한 생명력과 왕을 상징한다. 조선 왕실에서 왕의 존재와 권위를 나타내려고 궁궐 안 정전의 임금 의자나 임금 초상 뒤에 뒀다. 4폭, 6폭, 8폭의 병풍에 그렸다.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는 인정전 당가(唐家, 어좌와 좌탑을 둘러싼 닫집)의 어좌 뒤에 설치된 4폭 병풍이다. 인정전을 일반에 개방한 뒤 외부 자연광과 먼지 등에 노출되며 화면 전체에 오염과 탈색 현상이 두드러졌다. 화면이 터지거나 안료가 들뜨며, 병풍틀이 틀어지는 손상을 입었다.
2015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겼다. 2016년부터 전면 해체 보존처리를 시작했다. 해체 후 병풍틀 수종과 안료, 배접지, 바탕 화면 재질 등을 확인했다. ‘인정전영건도감의궤’와 ‘인정전중수도감의궤’, 1900년대 초 경복궁 근정전 일월오봉도와 덕수궁 중화전 일월오봉도의 유리건판 사진, 창덕궁 신선원전 일월오봉도 등 문헌과 사진, 유사유물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꽃문양을 붙인 녹색 그림 무늬의 장황 비단을 재현했다. 장황은 글씨나 그림을 족자·병풍·책 등 형태로 꾸미는 걸 말한다.
연구소는 해체 과정에서 ‘화면-배접지-1963년 신문지-시권-병풍틀’ 순서로 겹쳐진 구조를 확인했다. 낙폭지(落幅紙, 과거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를 재활용해 일월오봉도를 제작한 사실도 알게 됐다. 신문지는 1964년 보수 때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병풍틀의 첫 번째 배접지(褙接紙, 서화를 지지하고 장황을 하기 위해 뒷면에 붙이는 종이)로 사용된 종이들 중 총 27장이 과거 시험 답안인 시권(試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 중 25장이 1840년 시행된 식년감시초시(式年監試初試, 식년시는 3년마다 치러졌고, 감시초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해 부르는 말)의 낙폭지였다. 연구소는 “조선 후기 당대의 종이 물자가 매우 부족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적외선반사사진장비 등을 활용해 결실(缺失) 부분을 확인했다.
인정전 일월오봉도는 1964년, 1983년, 1997년, 2004년, 2012년에도 보수·보존 처리됐다. 센터는 2021년 말 보존처리 작업을 마쳤다. 연구소는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보고서를 홈페이지(www.nrich.go.kr)에 공개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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