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년 전 과거시험 낙방 답안지가 병풍 뒷면에서 쏟아졌다
1840년 과거 시험 답안지가 무더기로 쏟아진 곳은 다름아닌 병풍 뒷면이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뒷면에 과거시험 답안지인 '시권' 27장이 포개어 붙어 있었다고 19일 밝혔습니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창덕궁 인정전에 임금이 앉는 자리인 어좌 뒤에 설치되는 궁중장식화입니다. 가로 436·세로 241㎝의 4폭 병풍엔 해와 달, 다섯개 봉우리, 소나무, 파도 치는 물결이 담겨있습니다.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에도 일월오봉도가 있었습니다.
일월오봉도는 1964년부터 다섯 차례 보수됐습니다. 하지만 일부가 파손되거나 안료가 들뜨면서 병풍 틀이 틀어지자,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지난 2016년 전면 해체하고 지난해까지 보존처리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과거시험 탈락자들의 답안지를 발견한 겁니다.
그런데 탈락자들의 답안지인지는 어떻게 아는 걸까요?
조선 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한 응시자에게는 시권을 돌려주었습니다. 불합격한 응시자의 시권은 재활용을 위해 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윤선영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는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보고서에 수록된 논고에서 시험 과목과 문제가 확인되는 시권 2장을 분석한 결과, 1840년 시행된 식년감시초시의 답안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식년시는 3년마다 치른 정기 시험이고 감시초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를 뜻합니다.
윤 교수는 "시권의 글을 번역해 살펴본 결과 다섯 가지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 가운데 한 구절을 골라 대략적인 뜻을 물은 과목과 사서(四書) 중 의심이 가는 구절에 대해 질문한 과목의 답안지였다"며 "시권 27장 중 25장이 동일한 시험의 답안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식년시 응시자는 자비로 시지(과거 시험 종이)를 마련해야 했고, 권력 가문 자제들이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좋은 시지를 가져오는 폐습이 생기자 두꺼운 종이 지참을 금지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월오봉도에 붙어 있던 1840년 즈음의 시권은 대부분 두껍지 않고 고급 품질 종이는 아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왕실에서조차 시권을 재활용한 걸로 미루어보아, 조선 후기 종이 물자가 매우 부족했다는 점도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선 왕실에서 과거 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모란' 특별전에서 선보인 전통 예복 '활옷' 속에서도 1880년 과거 시험 답안지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보고서를 발간해 보존처리 과정과 재료 분석 내용, 일월오봉도 병풍의 변형에 관한 미술사적 연구와 장황의 고증, 발견된 답안지에 대한 의미 등을 상세히 풀었습니다. 보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http://www.nrich.go.kr,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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