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대상] 생지옥에서 피는 희망꽃 (하) / 강인석
강인석 |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3년3개월 만에 내가 속한 도장부에서 최고 고참이 되었다. 나처럼 한 회사(하청업체)에서 붙박이로 일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여기저기 다른 하청업체로 떠돌아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단돈 1000원이라도 더 주면, 잔업 많다고 하면 옮긴다. 다닌 회사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면 자신도 기억 못할 정도로 많이 옮겨서 모른다고 한다. 소위 진보 정부라고 하는 지금, 조선소는 아직도 전태일 열사의 평화시장이다.
조선소에 들어온 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면 전환점이었다. 2년7개월이 지난 2021년 4월, 도장공의 파업이 벌어졌다. 도장부에 속한 전처리(일명 파워) 노동자가 이끌었고 터치업, 스프레이 노동자도 힘을 보탰다. 도장부는 90% 이상이 일당제이다. 일하면 돈 주고, 일 안 하면 돈을 안 준다는 식이다. 그동안 1~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계속 작성하며 3년이 넘었으니 무기계약으로 전환되어야 했지만 여전히 일당제였다. 그러니까 도장공의 파업이란 사실 파업이 아니라 그냥 노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사용자들도 할 말이 없어야 하는데, 그들은 근태가 어떻고, 무단결근이 어떻고 말이 많았다.
300여명이 모여 23일간의 파업을 했다. 그동안 잘릴까 봐 아무 말도 못 했던 노동자들이 무려 23일간을 파업하다니.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에도 가입했다. 23일의 투쟁은 대우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간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투쟁 끝에 승리로 이어졌다. 덕분에 근로계약서를 1년짜리로 바꾸었고, 휴가비(설·추석 각각 15만원, 여름 휴가비 10만원), 블랙리스트 금지, ‘데마치’(강제무급휴가) 금지 등을 쟁취했다. 그동안 없었던 퇴직금도 얻어냈다. 조선소 도장 노동자들은 포괄임금제로 계약했다. 포괄임금 안에는 연차, 휴일 등 법정 수당들이 다 포함되어 있고, 기본급은 최저시급이다. 게다가 그 전까지는 퇴직적치금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에게서 임금을 공제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대우조선 하청업체가 노동조합과의 합의를 거부해 그 아래 9개 도장업체 대표와 업체별 노동자 대표가 맺은 합의에 그쳤지만,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에게는 정말로 소중한 성과였다. 특히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감격이었다. 4월 파업 투쟁 이후 6월에 다시 조선하청지회 도장분회 이름으로 정식 교섭공문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하청업체는 공동교섭을 거부했기에, 결국 개별업체 단위로 교섭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6차에 걸친 교섭. 그러나 ‘수용 불가’라는 사용자의 답변이 돌아왔다. 특히 돈과 관련된 것은 100% 수용 불가란다. 안전보호장구를 지급하라는 것도 수용이 아니라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4월 투쟁의 성과인 휴가비를 지급하지 못하겠다, 데마치도 다시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난해 11월1일 드디어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했다. 대한민국 조선소 역사상 하청 노동자가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한 것은 처음이란다. 1978년 대우조선이 창립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합법적으로 행사하게 되었으니, 도장 노동자들도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파업권을 쟁취하고 열흘 뒤인 11월11일 낮 12시 대우조선 민주광장에서 첫 부분파업이 있었다. 간부들은 6시간 파업, 조합원들은 오후 4시간 파업하고 400여명이 모였다. 모두가 손을 잡고 ‘아, 이제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있구나’ 하고 감격하고 또 감격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파업가’도 우리의 노래가 되었다.
진짜 첫 파업을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도장업체 중 가장 악질적인 사업장 앞으로 찾아가 규탄집회를 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이 있는 본관으로 향했다. “대우조선 진짜 사장, 원청 사장은 나와라!” 목 터지게 외치며 본관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2020년 12월 용접작업을 하다 쓰러져 11월1일 결국 사망한 김도영 노동자에 대한 추모를 마치고, 대우조선 다섯 분의 열사 추모비를 지나 원청 본관 소위 지원센터라는 곳에 도착했다.
‘어이없게도 차벽이라니!’ 철옹성 같은 버스 차벽은 하청 노동자의 앞날이 얼마나 험난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듯했다. 하청 노동자들은 그 차벽을 ‘거머리 산성’이라고 불렀다. 거머리는 피를 빨아먹는다. 하청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원청의 차벽은 말 그대로 거머리 산성이었다. 거머리 산성에서 구호를 외쳤다. “대우조선 진짜 사장 원청을 박살내자!” 하청 노동자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옥포만 바닷바람을 타고 조선하청 노동조합의 깃발이 펄럭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 하편입니다. 다음주에는 최우수상 수상작이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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