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맞서, 차별을 넘어..20년 구른 '휠체어 투쟁'의 바퀴
[경향신문]
흑백사진이 컬러로 바뀌는 20년 동안 사진 속 구호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버스에 오르기 위해 투쟁해온 장애인들의 목소리다. 19일 찾은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 늘어선 사진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구호가 시간과 장소만 달리해 계속 등장했다.
이동할 권리를 위해 싸워 온 장애인들의 20년을 돌아보는 사진전 ‘버스를 타자-장애인이동권 21년의 외침’이 지난 17일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들이 주관하고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천준호 의원,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장혜영 의원 등이 공동주최했다. 국회 사진전은 원래 20주년인 지난해 열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한 해 밀렸다.
■앞서 간 이들에게 빚진 ‘이동할 권리’
‘편안히 이동할 권리’를 위해 장애인들은 20년 동안 투쟁했다. 어떤 것도 공짜가 아니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지하철 승강기와 장애인 콜택시, 저상버스 등은 이들이 끈덕지게 싸워 얻어낸 결과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해 1월 서울지하철 오이도역에서 수직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 이용자가 사망했다. 야학을 중심으로 함께 공부하던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끌고 거리로 나왔다. 이들에게 이동권이란 단순히 ‘이동할 권리’에만 그치지 않았다. 누군가의 평범한 출근길은 이들에겐 삶과 죽음이 갈리는 곳이었다. 2001년 오이도역 사고 이후에도 2002년 발산역, 2008년 화서역, 2017년 신길역 등 곳곳에서 사망·부상사고가 이어졌다.
투쟁은 그래서 전투적일 수밖에 없었다. 버스 아래로 기어들어가고, 도로를 점거하고, 쇠사슬을 몸에 묶었다. 지하철 선로로 내려가 사다리를 목에 걸었다. 계속된 투쟁 끝에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됐다. 종종 싸늘한 시선에 부딪히기도 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멈춰세우는 이들의 시위 방식이 시민들의 불편을 부른다는 이유였다. 욕설과 고성을 참아가며 바퀴를 굴렸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냉담에 맞서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고 답하는 시간들이었다.
■법은 항상 휠체어보다 느렸다
교통약자법이 생겼지만 장애인들은 계속 싸워야 했다. 법의 강제성이 약했기 때문에 변화는 몹시 더뎠다. 정부는 2021년까지 저상버스 보급률을 42.1%까지 높이겠다고 했지만 2020년 9월 기준 보급률은 28.4%에 그쳤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사정에 따라 이동권에 차등이 생기기도 했다. 2020년 9월 충남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9.8%, 울산은 12.3%였다. 영국은 2020년 저상버스 100% 도입을 완료했다. 작년 말에는 새로 버스를 도입할 때는 반드시 저상버스로 해야 한다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장애계는 법 개정을 환영하면서도 정부 예산 지원이 의무규정(해야 한다)에서 임의규정(할 수 있다)로 후퇴한 점을 지적한다. 일반 버스보다 훨씬 비싼 저상버스를 도입하려면 국가 보조금이 필요한데, 예산을 주지 않으면 각 지자체 예산에 따라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하게 굴려온 휠체어 바퀴를 계속 굴려나가겠다고 이들은 말한다. 앞서 서울 혜화역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예정된 지난해 12월6일 엘리베이터를 폐쇄해 시위를 ‘원천 봉쇄’했고, 같은 해 11월 서울교통공사는 이들의 계속된 이동권 투쟁으로 열차가 지연됐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 장애인단체 상임대표가 집회·시위법 위반과 교통방해죄로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기획재정부가 장애인권리 예산의 책임 있는 반영을 약속할 때까지 외침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회를 기획한 이들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전시회 개요와 사진설명을 녹음한 음성 파일도 준비했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이자 장애인 당사자인 김명학씨가 첫 번째 파일을 녹음했다. 파일 속에서 김씨는 철학자 고병권이 쓴 전시회 개요를 천천히 읊었다. “우리의 투쟁은 당신과 대중교통을 함께 타자는 투쟁입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이동하고 싶고, 당신과 함께 세상을 이동시키고 싶습니다.”
(관련기사▶[꼬다리]출입금지 테이프 앞에서)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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