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사장, '편집권 침해' 연서명에 "두 번 기회 없다" 경고 파장

김예리 윤유경 기자 2022. 1. 1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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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 비판기사 삭제 사태에 구성원 '편집권 침해' 비판 잇다르나
"두번 기회 없다" 엄포, 이후로도 이어지는 기수성명

[미디어오늘 김예리 윤유경 기자]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이 '호반 대해부' 50여건 기사 삭제를 규탄하는 기자 연서명을 놓고 “호반이 최대주주인 회사에서 기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느냐”며 “경고한다. 두 번 기회는 없다”고 밝혔다. 편집권 침해에 이어 언론사 경영진이 대주주 일가를 대변하며 보복 예고에 나서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곽 사장 입장 표명 뒤로도 저연차 기자들을 중심으로 경영진 비판 성명은 잇따르고 있다.

곽 사장은 19일 오전 8시40분께 열린 경영설명회에서 “호반 관련된 기사를 삭제한 것과 관련해 일부에서 내부분열을 하려는 것도 있다”며 “사실 나는 사장된 순간부터 호반기사를 빼려고 했다”고 말했다.

곽 사장은 이 자리에서 “호반이 최대주주인 회사에서 호반에 대해서 악의적으로 쓴 기사도 많이 있는데 그 기사 자체가 서울신문에 그대로 남아있는게 맞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말했다. 이날 경영설명회엔 편집국을 포함한 사내 팀장 이상 간부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곽사장은 “작년 5월 고광헌 사장과 박홍기 편집담당 상무, 안미현 편집국장, 박록삼 사주조합장, 장형우 노조위원장, 박홍환 TF팀장. 이 여섯 분이 회의를 해서 기사를 다 삭제하기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며 현 상황을 두고 “내로남불”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신문과 호반건설 사옥 사진.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곽 사장은 “기사내용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저는 정확히 모르지만, 명예훼손적인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호반이 대주주인데 그런 기사를 우리가 그대로 갖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느냐”며 재차 기사 삭제의 당위를 강조했다.

곽 사장은 “8명의 임원 중 나 혼자 등기임원이다. 등기임원하고 집행 임원과의 차이가 뭔지 알지 않나.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지만 저는 3년 임기가 보장돼 있다”며 “소신대로 할 것이다. 사장으로서 권한은 확실히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곽 사장은 그러면서 기자들을 겨냥해 “경고한다. 두 번 기회는 없다”고 말했다.

호반그룹이 서울신문 대주주로 올라선 뒤 과거 호반 비리 의혹 등을 취재한 기획보도 50여건을 삭제한 데에 '편집권 침해' 비판이 일자 곽 사장이 공개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이다. 언론사 경영진이 자사 보도를 놓고 편집국을 우회해 대주주를 대변하는 결정을 하면서, 반발하는 구성원에게 보복을 예고한 것이어서 문제가 크다.

미디어오늘은 이날 곽 사장에게 '보복 예고' 발언의 취지를 묻기 위해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한편 경영설명회가 진행된 시각 이후로도 편집국에선 기자들의 입사 연차별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전날인 18일 저녁엔 2019년과 2013년 입사한 기자들이 각각 성명을 내고 경영진과 편집국장에 해명과 재발방지책을 요구했다.

2017년 입사한 50기 기자들도 19일 아침 9시께 성명을 내고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웹사이트 주소와 보도는 우리에게 서울신문의 편집권을 상징해왔다”며 “2019년 당시 특별취재팀(호반 TF)은 편집국 구성원들의 총의를 모아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 삭제권한이 사장이나 당시 TF팀장에게 있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가 모았던 총의는 악의적 오보였느냐”라고 밝혔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임원실 입구. 사진=김예리 기자

2012년 입사한 47기 기자들도 아침 9시15분께 성명을 내고 “기자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있지도 않던 6인 체제를 만들어 기사를 삭제하는 것은 교묘한 방식의 편집권 침해일 뿐 아니라, 이미 출고된 기사를 팩트가 틀리지 않았는데도 삭제하는 것은 스스로 언론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편집권은 신문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기자의 권리다. 서울신문이 편집국장을 선출할 때 기자들의 투표 과정을 거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곽태헌 사장과 황수정 편집국장은 이번 일에 대한 책임 있는 해명을 내놓으라. 이미 침해된 편집권 독립을 앞으로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장할지도 명확한 대책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2018년 입사한 51기 기자들도 같은 날 10시50분께 '언제까지 후배들을 무기력하게 만드실 겁니까'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온라인 기사라도 잘못 나가면 징계를 받는다. 그런데 몇달간 수많은 기자들이 함께 쓴 기사를 모조리 삭제하고 한마디 말도 없다니 저널리즘 수호라는 거창한 말을 갖다 붙이기에도 민망하다”고 했다. 이어 “독자들에게는 기사 삭제가 어떻게 비춰지겠는가. 독자들도 편집권 침해와는 다르다는 편집국장의 말에 동의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편집국장은 6인 협의체와의 회의에 따라 '과거 논의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21년 5월 협의체가 호반 지분 인수를 위해 사안을 논의하던 때와 지금은 명백히 다른 상황”이라며 “편집국장은 어떤 근거에 따라 과거 협의 내용이 2022년 1월 현재도 효력이 있다고 본 건지 밝혀달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경영진과 편집국장, 당시 2대주주였던 우리사주조합 등은 지난해 5월 회의를 열어 '호반 대해부 기사' 삭제 건을 논의한 바 있다. 당시는 3대주주였던 호반건설이 2대주주였던 우리사주조합에 보유 지분을 모두 넘기기로 합의했던 상황이었다. 주주 검증 작업 차원에서 이뤄졌던 기획탐사보도인 만큼 양해를 구하고 삭제하기로 다수 의견에 따라 협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호반건설이 사주조합 지분을 흡수하며 대주주로 올라선 현 상황은 당시와 하늘과 땅 차이일뿐더러 현재까지 편집국 내 공론화 절차가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게 기자들의 입장이다.

51기 기자들은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를 향해 “(노조의) '입장이 없다'는 건 경영진과 국장단의 판단에 동의한다는 뜻인가”라고 물은 뒤 “언론사 노조가 가장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사안에 아무 입장이 없다면 노조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라고도 물었다.

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는 이날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서울신문 편집권 침해 비판 성명에 참여한 기자는 5개 기수, 33명이다. 노조는 현재까지 이번 삭제 사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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