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조선 왕의 그림' 뜯었더니..시험 답안지 무더기로 쏟아졌다

김성화 에디터 입력 2022. 1. 19. 15:06 수정 2022. 1. 2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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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840년 과거 시험 답안지가 무더기로 발견된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병풍.


조선시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뒷면에서 1840년 과거 시험 답안지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를 201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보존 처리를 진행하던 중 병풍의 틀에서 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券) 27장이 여러 겹 포개어 붙여진 사실을 확인했다고 오늘(19일) 밝혔습니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 소나무, 파도치는 물결을 화폭에 담은 궁중장식화로 영원한 생명력을 뜻하며 조선 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합니다.

왕의 집무 공간에 설치된 일월오봉도는 창덕궁 인정전을 비롯해 경복궁 근정전, 덕수궁 중화전에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182년 전 시험 답안지가 무더기로 발견된 인정전 일월오봉도는 어좌(御座·왕이 앉는 자리) 뒤에 있던 4폭 병풍으로 크기는 가로 436㎝ · 세로 241㎝입니다.

일월오봉도의 화면이 일부 파손되거나 안료가 들뜨고 병풍이 틀어지는 등의 손상이 진행되자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2016년 전면 해체하고 지난해까지 보존 처리를 했습니다.

사진은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에서 나온 과거 답안 시험지.

일월오봉도에서 쏟아진 시험 답안지 - 누가, 무슨 문제를 풀었을까


이번에 발견된 과거 시험 답안지는 탈락자들이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한 응시자에게는 시권을 돌려주고, 불합격한 응시자에게는 시권을 돌려주지 않고 재활용했습니다.

윤선영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는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보고서에 수록된 논고에서 시험 과목과 문제가 확인되는 시권 2장을 분석해 1840년 시행된 식년감시초시(式年監試初試) 답안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식년시는 3년마다 치른 정기 시험이고 감시초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를 뜻합니다.

윤 교수는 "시권의 글을 번역해 살펴본 결과 다섯 가지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 가운데 한 구절을 골라 대략적인 뜻을 물은 과목과 사서(四書) 중 의심이 가는 구절에 대해 질문한 과목의 답안지였다"며 "시권 27장 중 25장이 동일한 시험의 답안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식년시 응시자는 자비로 시지(試紙·과거 시험 종이)를 마련해야 했고, 권력 가문 자제들이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좋은 시지를 가져오는 폐습이 생기자 두꺼운 종이 지참을 금하도록 했다"며 "일월오봉도에 붙어 있던 1840년 즈음의 시권은 대부분 두껍지 않고 고급 품질 종이는 아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측 관계자는 "보존처리 과정에서의 이 발견을 통해 조선왕실에서 제작한 일월오봉도는 과거 시험 탈락자의 답안지인 '낙폭지'를 재활용해 제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일월오봉도 제작 연대가 적어도 1840년대 이후일 것이라 특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진행한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 처리 모습.

조선 왕실의 시험 답안지 재활용, 처음이 아니다?


'종이를 재활용했다'는 점을 통해 당시 종이 물자가 부족했음을 추론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 왕실에서 과거 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모란' 특별전에서 선보인 전통 예복 '활옷' 속에서도 1880년 과거 시험 답안지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윤 교수는 "왕실에서조차 시권을 재활용했을 정도로 조선 후기 종이 물자가 매우 부족했던 듯하다"며 "시권을 수집해 재활용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을 고려하면 인정전 일월오봉도 병풍은 1840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1960년대 신문지도 발견됐다고?


시험 답안지 이외 1960년대 신문지가 발견된 것도 의외인 부분입니다.

인정전 일월오봉도는 1964년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보수가 진행됐으나 이번처럼 '전면 해체' 방식의 보존처리는 아니었습니다.

연구소 측은 "1960년대 일월오봉도를 처리할 때는 조선 시대에 제작된 기존의 병풍틀을 재사용해 부분 보수만 진행돼 지금까지 이어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센터는 보존처리 과정에서 20세기 초반에 촬영된 경복궁과 덕수궁 일월오봉도 사진 등을 근거로 녹색 구름무늬 비단에 꽃문양 금박을 붙여 장황하며 인정전 일월오봉도의 원래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장황이란 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 책이나 화첩을 만드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번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보고서는 보존처리 과정을 소개한 글과 사진 외에도 '인정전 일월오봉도 변형과 전통 장황에 대한 고증', '인정전 일월오봉도의 과학적 분석'에 관한 논고가 실렸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며 아래 PDF 파일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 [PDF 파일 내려받기]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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