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우문현답
최근 조직 내 혁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론으로 디자인씽킹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아이디오의 Tim Brown은 "디자인 씽킹이란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방법들을 사용하는 훈련법으로,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비즈니스 전략을 고객 가치와 시장의 기회로 바꾸어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 정의했다. 디자인 씽킹은 고객과의 공감에서 출발하는 고객 중심의 문제해결 방식으로 기존의 로지컬 씽킹과는 달리 다소 '느슨하고 엉뚱한' 방법론으로 진행한다.
스탠포드 d 스쿨에서 디자인 씽킹 워크숍을 줌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시차 때문에 한국 시각 자정에서 새벽 3시까지 이어지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한 달간 매주 3일씩 진행되는 수업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첫날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 시각 밤 12시, 첫날의 수업이 시작됐다. 줌에 로그인해서 들어가 보니,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교수진은 총 4명이었는데, 모두 이마에 피를 흘리거나, 머리에 칼을 꽂거나, 가슴에 총을 맞은 모습이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참가자들 모두 해골 바가지, 캣우먼, 배트맨, 아이언맨 등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둘러 첫날 수업의 안내문을 읽어보니, "첫날의 컨셉은 '엉뚱한' 핼러윈입니다. 본인과 가장 다른 핼러윈 분장을 해보세요. 이를 통해 본인의 모습을 잠시 가려보십시오."
매일의 업무에 치여서 바쁘다는 핑계로 수업 준비를 제대로 안한 내 잘못도 있었지만, 50명 넘는 참가자 모두 핼러윈 분장을 하고 줌에 접속한 모습이 강렬했다. 하필이면, 그중 나 혼자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접속한 것은 더욱 '부끄러울'만큼 강렬한 기억이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스탠포드 d 스쿨에서 이러한 세팅을 한 이유가 있다. 디자인 씽킹은 뭔가 엉뚱하고, 멍청한 질문과 생각을 하면서 키워지는 것인데, 수업 첫날이라고 비즈니스 정장을 입고 나타난다면 두뇌가 경직되기 쉽기 때문이다. 본인의 모습을 숨기고, 모두가 편하게 웃을 수 있는 판을 깔아 놓으면서 참가자들 모두 한 번쯤은 생뚱맞은 아이디어를 꺼낼 수 있었다.
디자인 씽킹의 대가 중 한 명인 돈 노먼 (Don Norman)은 한 단계 더 내려가서 깊게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한 걸음 더 내딛는 용기와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가정과 상식에 대해서 도전하고 질문하는 태도를 중시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이란 없다. 오히려, 상식에 대해 질문하고 당연시되는 가정에 대해서 도전하는 멍청한 질문이 논리적인 척, 똑똑한 척하는 질문보다 백만 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엑손 모빌이 알래스카에 대규모 기름을 유출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대책 회의에서 한 직원이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꺼냈다.
"알래스카에 바다표범이 많은데, 바다표범에게 기름을 먹게 해서 기름을 없애면 어떨까요?"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세상 꺼지는 한숨과 못마땅한 혀 차는 소리가 회의실에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엑손에서는 누군가가 이 멍청한 아이디어를 받아서 멋들어진 솔루션으로 승화했다. 바다표범 대신 기름을 먹는 다른 존재를 궁리한 결과 기름을 먹는 미생물을 생각해 냈다. 미생물은 기름을 먹이로 삼을 뿐만 아니라 미생물의 배설물은 물고기의 훌륭한 먹잇감이라는 것은 덤이었다. '우문현답'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문'보다는 '현답'의 가치를 중시한다. 누군가 멍청한 질문을 던질 때 이를 언제나 현명하게 풀어줄 수 있는 정답의 상쾌함에 환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답'을 이끌어낸 것이 '우문'이라는 점이다. '우문'이 있었기에 '현답'이 가능한 것이고, '멍청한 질문'을 던졌기에 '혁신적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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