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손바닥 王'에 도사·법사 등장.."대선이 굿판?"
-김건희, 7시간 녹취록 '도사' 등 무속 신뢰도 높아
-윤석열, '손바닥 王'이어 캠프에 친분 무속인 활동
-투명하고 공적인 대선 과정에 미신과 주술 끌어들여
-윤 씨 부부 무속과 결별 안하면 대권 잡아도 큰 일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당내 대선 후보 경선 TV 토론회 당시 왼쪽 손바닥에 임금 '王'자가 적힌 모습이 방송에 포착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그는 토론 잘하라는 지지자의 응원이라고 해명했으나 당내에서 조차 "경선에 웬 주술과 미신이 등장하느냐"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경쟁자였던 홍준표 후보는 "늘 무속인 끼고 다닌다는 것을 언론 통해 보면서 무속 대통령 하려고 저러나 의아했지만 손바닥에 부적을 쓰고 다니는 것이 밝혀지면서 참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질타했다.
한 나라를 경영해야 할 대통령은 누구보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력이 필요한 자리로 그런 인물을 뽑기 위한 대선 레이스에 '王'자를 적고 나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그런 윤 후보가 배우자인 김건희 씨와 함께 또다시 무속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건희 씨에 대한 무속 논란은 지난 16일 공개된 이른바 '7시간 통화' 녹취록을 통해 불거졌다.
MBC가 공개한 녹취록에서 김 씨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하는 와중에 나이트클럽 같은데 가는 것을 싫어한다며 '도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고 발언했다.
이어 17일 MBC가 추가 공개한 녹취록에서 김 씨는 자신이 신 내림을 받지는 않았지만 웬만한 사람보다 관상을 더 잘 본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김 씨의 무속 관련 발언은 <한겨레>가 입수했다며 보도한 '7시간 통화' 녹취록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자신과 윤 후보의 만남 과정 등을 설명하는 발언을 보면 김건희 씨의 무속인에 대한 신뢰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 후보 본인의 무속 논란은 대선과 직접 연관돼 있어 사안이 더 심각하다.
<세계일보>는 17일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아무개(61)씨가 윤 후보의 선대본부 조직인 '네트워크본부'에서 고문으로 사실상 상주하며 인재영입, 주요 의사결정 등에 관여해왔다고 보도했다.
또 전 씨가 윤 후보의 검찰총장 시절부터 대권 도전을 결심하도록 도왔고 자신은 '국사'(왕 자문역할을 하는 고승)가 될 사람이라고 소개했다는 지인의 증언을 보도했다.
무속인이 유력 대선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버젓이 활동해 왔을 뿐 아니라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것으로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힐 뿐이다.
윤석열 후보에게 "대선을 굿판 정도로 여기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국민의힘 측은 악의적인 오해 내지 소문이라고 밝히면서도 정작 '건진법사'가 활동한 네트워크본부를 전격 해산했다.
이처럼 발 빠른 조치에 나선 것은 전 씨의 선대본부 활동이 오해나 소문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는 반증으로 사안이 워낙 민감한 만큼 조기에 진화하겠다는 의도다.
상황이 이쯤 되니 지난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에 대한 악몽까지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홍준표 의원은 윤 후보 부부와 친분이 있는 무속인이 선대본부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도가 나오자 "최순실 사태처럼 흘러갈까 걱정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자칭 국사인 무속인 건진대사가 선대위 인재영입 담당을 하고 있다는 기사도 충격"이라며 "아무리 정권교체가 중하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는 말들이 시중에 회자하고 있다"고 적었다.
일각에서는 선거철이 되면 선거판에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자원봉사 등의 명목으로 모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 확인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선대 본부에 무속인이 단순 자원봉사가 아니라 인재를 영입하는 과정이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했다면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유력 대선 후보가 가장 공적이고 투명해야할 과정인 대선 경로에 미신과 주술이라는 무속을 공식적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나와 국민들을 어이없게 만든 일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미신과 주술 등에 의존하는 후보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겨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까지 들게 한다.
대통령은 국정 현안에 대해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들은 뒤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최종 결정하는 자리로 그 어느 순간에도 주술이나 미신 따위가 스며들어서는 안 된다.
윤 후보가 대권을 잡아 청와대에 입성할 경우 '도사' · '법사'라 불리는 무속인들과 소위 영적 대화를 즐긴다고 스스로 밝힌 배우자 김건희 씨에 대한 우려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베갯머리 송사'라는 말이 있다.
최고 권력에 오르기 까지는 많은 동지가 있어 힘도 되고 위안이 돼 외롭지 않으나 최고 권력자가 되고 나면 외로워지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이 때 외로운 최고 권력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역시 늘 곁을 지키고 있는 배우자로 그 존재감이 더 커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빗 댄 말이다.
윤 후보 부부를 둘러싸고 나오는 무속 관련 내용들을 보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자칫 청와대 기둥에 부적이 붙고 신당이라도 차려지는 게 아닐까하는 노파심마저 들게 한다.
윤 후보가 정말 국민을 생각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대권 도전에 나섰다면 자신과 배우자 모두 주변 무속인과의 친분을 확실히 끊고 미신과 주술 등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고려 말 공양왕 때 '신돈'이나 재정 러시아 말 '그레고리 라스푸틴'처럼 요승이 판쳐 나라를 기울게 한 역사적인 사례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CBS노컷뉴스 윤석제 기자 yoonthoma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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