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이름 '지단 넘버원'으로 짓겠다는 스포츠 덕후 기자, 원픽 영화는?

에그스토리·eggstory 2022. 1. 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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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축구 유니폼 입고 출근한 찐 스포츠덕후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OTT는 많고, 시간은 없다. 남들은 뭘 보고 좋아할까요. 조선일보 ‘왓칭’이 남들의 취향을 공유하는 ‘타인의 취향’을 연재합니다. 때때로 레플리카(축구 유니폼 굿즈)를 입고 출근할 만큼 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진 양지혜 스포츠부 기자와 문답을 나눴습니다.
2019년 영국 '윔블던' 현지 경기 취재를 기념해 촬영한 양지혜 기자의 셀카.
미래 아이 이름을 ‘지단 넘버원’으로 짓고 싶을만큼 스포츠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는 양지혜 기자. 그의 취향을 공유합니다.

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양지혜 기자입니다. 부친이 롯데 자이언츠, 그 중에서도 고(故) 최동원 선수 열혈 팬이어서 아들이었으면 ‘양동원’이 될 예정이었죠. 80년대생인데, 이 때는 여자 아이들에게 ‘지’자 돌림이 유행(지영 지민 지현 등)이었습니다. 특히 ‘지혜’는 동명이인이 너무 많아서 어릴 때 슬펐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처럼 미래의 아이 이름을 미리 정해뒀습니다. ‘지원’. ‘지단(Zidane) 넘버원’이란 숭고한 뜻이죠. 제게는 ‘페더러’ ‘메시’ ‘조던’, 그 누구보다도 가장 위대한 스포츠 선수가 오직 지네딘 지단! 지단 뿐입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때 지단을 TV중계로 처음 보고 반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운동 선수의 움직임이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죠. 단체 구기종목을 아름답게 플레이하면서 우승까지 시키는 사람이 있다니! 지단처럼 주어진 일을 아름답게 잘 해내는 걸 언제나 소망합니다.

2. 어떤 스포츠를 가장 좋아하나요?

보는 스포츠는 종목 불문 다 좋아합니다. 야(구)·농(구)·축(구)·배(구)는 기본이고 세팍타크로나 바이애슬론도 TV중계를 해주면 홀린 듯이 봅니다. 제 신체의 비밀과도 연관이 있는데요. 제가 키가 큰 편(운동화 신으면 180cm)인데 운동을 정말 못 합니다. 스스로를 ‘농구 못하는 흑인’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흑인인데 농구를 못하면 참 괴롭겠지요. 제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릴 적부터 운동 잘하는 남들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꼈고, 이게 무차별적인 스포츠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질문을 바꿔 요즘 싫어하는 스포츠를 물으신다면, 그건 바로 한국 프로야구! 뚱뚱하고 거만하고 억(億)원을 우습게 아는 선수들 상대하는 건 아주 괴로운 일입니다. 제가 야구 담당인데, 웬만해서 야구 선수는 인터뷰하고 싶지 않아요. 그들의 태도 때문에 ‘마상(마음의 상처)’ 입는 경우가 많거든요. 작년 여름 원정 숙소 술자리 파동으로 리그가 중단 됐을 때 “터질게 터졌다” 싶었고, 도쿄 올림픽 때 지탄받는걸 보면서 프로야구도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 최동원 선수가 요즘 작태를 본다면 얼마나 가슴 아프실까요.

기사 쓸 때 가장 즐거운 스포츠는 테니스입니다. 페더러·나달·조코비치 3인방의 경이로운 시대를 함께 한데다, 기사까지 쓸 수 있었던 건 인생의 영광입니다. 2019년 이들 3인방이 나오는 영국 윔블던 현지 취재를 갔는데, 하루 고작 두세시간 눈 붙이는 빡빡한 일정이었어요. 그래도 라켓 들고 검투사처럼 싸우는 3인방의 모습을 직접 보니 안 자고 안 먹어도 힘이 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3. 스포츠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역시 부친의 영향이 큽니다. 회사원이었던 아버지는 주말마다 쇼파와 물아일체로 누워 종일 스포츠 중계만 보셨죠. 그게 저한테는 ‘성공한 어른’의 표상으로 보였습니다. 주말에 숙제 안 해도 되고, 실컷 TV만 보는 아버지가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자라서 성공하면 저렇게 하루종일 스포츠만 원없이 보리라. 입술을 깨물며 밀린 숙제를 했었죠. 시간이 흘러 제가 스포츠 담당 기자로서 진짜 하루종일 스포츠를 끼고 살게 됐으니 인생의 신묘함을 느낍니다. 대학 때 경제학을 전공했고, 스페인이 좋아 서어서문학도 복수 전공했지만 스포츠쪽 진로는 생각해본 적 없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스포츠로 인생을 배웠습니다. 가령 1994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결승전 때 ‘도하의 기적’으로 한국이 극적으로 월드컵 티켓 따내는 걸 보면서 “뭐든 끝까지 열심히 해야한다” 느꼈습니다. 여기서 승부차기를 실축해 패배의 원흉이 된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가 기운 쭉 빠진 꽁지머리 아저씨의 뒷모습을 했을 땐 초딩의 눈에도 어찌나 안쓰럽던지. 최선을 다해도 질 수 있다는 걸 바조의 쓸쓸한 등이 가르쳐주었죠. 덕분에 개인적으로 승자보다 패자에게 본능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 때 실축한 호아킨 산체스(스페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한일전에서 실수한 G.G.사토(일본)처럼 큰 좌절을 겪어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땡깁니다. 이렇게 재미도 있고, 교훈도 주는 스포츠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4. MBTI 성향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ENTP(발명가형)로 나오는데, 설명을 읽어보면 얼추 다 들어맞는 것 같아요. 주관이 뚜렷하고, 간섭과 통제를 혐오하며, 뭐든 새롭고 나만의 방식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 등등. 가장 흡족한 것은 이게 한국엔 2% 남짓 밖에 없는 유형이라는 점입니다(웃음). 저는 대중적 인기 거스르는 걸 좋아해서 소설 ‘해리 포터’도 안 읽었고, 영화 ‘쉬리’도 여태 안 본게 자랑인 사람이거든요.

5.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에 돈을 지불하고 계시나요?

둘 다 구독하다가 넷플릭스는 최근 요금을 올려 탈퇴했습니다. 왓챠도 ‘밴드 오브 브라더스’ ‘왕좌의 게임’ 같은 HBO 명작 드라마가 많아서 애용했는데 이젠 관련 제휴가 끊겨 구독을 그만둘까 고민 중입니다. 그나저나 언론사는 어떻게 해야 ‘구독 경제’ 시장에서 성공할까요. 이들 사이트에 로그인할 때마다 생각하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 했습니다.

6. 현재 보고 있거나 푹 빠져있는 작품들이 있으세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연말연시가 되면 혼자 나름 고상하게 지키는 루틴(습관)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느낌이 뿜뿜한 영화 ‘러브 액츄얼리’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1·2·3)’, ‘나홀로 집에(1·2)’를 몰아서 보는 거지요. 앞의 두 시리즈는 이미 지난 연말에 끝냈고, 요즘은 ‘나홀로 집에’를 돌려 보는데, 케빈 엄마가 다시 보여요. 옛날에는 ‘애 잃어버린 칠칠맞은 아줌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저 극성맞은 5남매를 어떻게 키우는건지 안쓰러워서 눈이 자꾸 갑니다. 케빈이 망가뜨린 집 구석은 어떻게 다 치울 것이며…역시 인생은 All by myself!

7. 스포츠 관련 취재를 하면서 ‘아 이건 영화나 드라마 찍을 감’이라고 느꼈던 사건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지난해 1월 태국에서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본선 티켓을 따낸 뒤 기뻐하는 한국 대표팀. 왼쪽부터 김수지, 김연경,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세자르 에르난데스 코치./FIVB

여자배구 스테파노 라바리니 호(2019~2021)의 항해 일지는 그 자체로 드라마입니다. 라바리니 감독이 부임 초반엔 선수들과 갈등이 많았어요. 코트 안에서는 불 같고, 밖에선 물 되는 사람인데 한국 선수들이 처음에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죠. 훈련 못 따라가겠다고 태극마크 반납한 선수도 있고요.

그래도 작년 초 태국에서 가까스로 올림픽 본선 티켓을 땄는데, 갑작스런 코로나 사태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습니다. 선수 명단도 대거 바뀌었고요. 여기에 ‘학폭 미투’까지. 만일 두 사태가 없었다면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는 지금도 국내에서 경기를 뛰고, 도쿄 올림픽 인기 스타가 됐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런 각종 돌발 사태를 이겨내고 여자배구팀이 도쿄 올림픽 여정을 ‘1등보다 더 값진 4등’으로 끝낸건 소설가도 상상 못했을 결말 같아요. 제가 제목까지 지어보자면 ‘다시!’ 라고 하겠습니다. 라바리니 감독이 “다시!” 만큼은 또렷한 한국어로 말하고, 지금도 이탈리아 리그에서 선수들에게 이 말을 자주 외쳐서요. ‘다시!’의 힘으로 여자배구가 올림픽 드라마를 완성했다고 생각합니다.

8. 영화 찍을 만한 스포츠 관련 인물은요?

2020년 흥국생명 배구단으로 11년 만에 국내 리그 복귀를 선언했던 김연경 선수. 이후 2020도쿄올림픽 등에서 활약한 그녀는 최근 국제배구연맹(FIVB)이 운영하는 매체 '발리볼월드닷컴'이 발표한 '세계 최고의 배구 선수' 명단에 꼽혔다. 특히 남녀 배구선수 12명씩, 총 24명이 포함된 이 명단 중에서도 여자 선수 랭킹 1위는 김연경에게 돌아갔다. /뉴시스

김연경은 정말 멋집니다. 배구가 개인 종목이었다면 김연경이 올림픽 3관왕은 거뜬히 하지 않았을까. 혼자만 잘하는게 아니라, 팀을 제대로 이끌면서 실력 발휘를 한다는 게 대단합니다. 김연경을 실제로 보면 기독교 성화 속 인물처럼 빛이 번쩍번쩍 납니다. 타고 났다기엔 어렸을 때 150cm대 단신이라 고교 배구부 진학을 걱정할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갑자기 192cm로 훅 자라 월드 클래스가 된 일화도 드라마 같고요. 그런데 그를 연기할 배우가 존재할 지가 관건이네요.

9. 여태껏 보신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중 추천하고픈 작품 3편만 꼽아주세요.

<보리 vs 매켄로>

영화의 모델이 된 테니스 선수 비에른 보리(왼쪽)와 존 매켄로.

1980년 테니스 선수 비에른 보리, 존 매켄로가 펼쳤던 빅매치, 당해 윔블던 결승전을 다룬 영화입니다. 연기나 연출 다 좋지만, 영화 도입부 나오는 아래 안드레 애거시의 명언에 만점을 넘어 십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테니스는 인생의 언어를 사용한다. 어드밴티지, 서비스, 폴트, 브레이크, 러브. 그래서 모든 테니스 경기는 우리 삶의 축소판이다

<아이, 토냐>

영화 '아이, 토냐'.

피겨 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의 잡초같은 인생을 다룬 영화입니다. “F*** you!”란 욕설이 5820번쯤 나오는 것 같은데, 다 보고나면 “그래 인생 뭐있어, F*** you!” 따라 외치며 머릿 속 번뇌가 술술 녹아내리는 마법을 경험하실 겁니다.

<롱 베케이션>

일본 드라마 롱 베케이션의 주인공을 연기한 기무라 타쿠야. /넷플릭스

1996년 제작으로 꽤 오래된 일본 드라마입니다만 여전히 제 마음속 최고입니다. OTT 서비스가 없던 시절에도 CD로 구워 천번쯤 돌려본 것 같아요. 명대사는 남자 주인공 세나(기무라 타쿠야)가 뭘 해도 망해서 “하늘의 별이 반짝거리는걸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어둠, 내가 그런 걸까?” 자책할 때 여자 주인공 미나미(야마구치 토모코)가 던진 말입니다. “신이 주신 긴 휴가라고 생각해”. 드라마 제목도 여기서 나왔죠. ‘세나’의 이름이 F1 선수 고(故) 아일톤 세나(1960~1994)와 같아서 극 중 미나미가 종종 “세나~아일톤 세나~”라고 부르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특히 기무라 타쿠야의 꽃 같은 얼굴에 푹 빠져 있다보면 저절로 일본어 공부도 잘 됩니다.

<추천작 보러가기>

보리vs매켄로

아이, 토냐

롱 베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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