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폴리페놀 발색 샴푸 논란의 관전 포인트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2. 1. 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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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화장품인가, 샴푸인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가 1,2,4-트라이하이드록시벤젠(THB)이라는 낯선 물질을 화장품 원료로 쓸 수 없도록 금지시키겠다는 행정 예고를 내놓았다. 사실상 천연 폴리페놀을 사용하는 모다모다의 발색 샴푸에 대한 강력한 퇴출 명령이다. 작년 11월에는 모다모다의 광고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도 설득시키지 못해서 집행이 정지되어버린 졸속 행정조치였다. 이제는 폴리페놀을 활용한 신제품의 허가 신청 여부를 두고 개발자와 낯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특정 기업의 제품을 기어이 시장에서 퇴출시켜버리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는 식약처의 모습을 절망적이다. 오이 밭에서는 신도 고쳐 신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어설픈 유해성 논란

연합뉴스 제공

식약처가 THB를 금지 목록에 올리겠다는 명분이 몹시 옹색하다. 식약처가 직접 유해성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럽연합(EU)이 올 6월부터 THB가 포함된 염색약과 발색 샴푸의 판매를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고작이다. EU의 결정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반드시 EU의 결정을 따라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영국·일본·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THB의 사용을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EU의 규제가 국제 사회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EU가 THB의 인체 부작용을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다. 실험용 흰쥐에 실험을 통해서 THB의 피부 감작성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쥐티푸스균(살모넬라 티피무리움)을 이용한 에임즈 시험에서 유전독성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EU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의 2019년 6월 보고서가 있을 뿐이다. 동물실험이 인체 부작용에 대한 직접적이고 확정적인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사람의 피부는 흰쥐의 피부와 생리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임스 시험은 발암성이 있는 의약물질을 가려내기 위한 초기 단계에서 사용하는 유용한 방법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임스 시험에서는 위양성과 위음성의 가능성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확인된 발암물질에 대한 에임스 시험에서 양성이 나오는 비율은 50~70%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에임스 시험의 양성이 곧바로 인체 발암성의 근거가 되는 것도 절대 아니다. EU 소지자안전과학위원회의 결론을 근거로 THB가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물질 목록에 올라갈 가능성을 심각하게 걱정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EU에서 THB의 사용 금지는 소비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전 예방적 차원’의 행정조치라고 할 수 있다. EU의 염색제 시장에서는 THB를 사용하는 염색제나 발색 샴푸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THB를 머리 염색에 사용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THB를 이용하는 케라틴 성분의 염색제가 미국 특허로 등록된 것은 1961년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THB를 이용한 염색제가 흔한 것은 아니다. THB는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해 쉽게 산화되어 검은 침전이 만들어지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EU의 행정조치는 기업들에게 굳이 인체 유해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THB를 원료로 사용하는 염색약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준 것이다.

그런데 THB를 원료로 사용하는 모다모다의 제품이 출시되어 있는 우리의 경우는 EU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식약처의 행정예고를 더 이상 사전 예방적 차원의 조치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확실한 근거도 없이 특정 기업의 제품을 퇴출시켜서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려 한다는 이유로 식약처가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식약처의 유해 가능성 주장은 지나친 것일 수밖에 없다. 인체에 대한 급성 독성이나 만성 독성을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고, 유해성을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했던 것도 아니다. 식약처가 유해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지고 따라나서는 식의 규제는 볼썽사나운 것이다.

‘기능성화장품’과 ‘생활화학용품’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더라도 유해물질이 걱정스러운 제품은 넘쳐난다. 현대 사회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에 포함된 유해물질에 대한 관리는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정부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공산품에 대한 유해물질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유해물질에 대한 관리가 지나칠 정도로 분산되어 있다. 가공식품·화장품·위생용품·의약품·의약외품은 식약처가 관리한다. 샴푸를 비롯한 생활화학용품이나 공산품은 산업부 산하의 국가기술표준원에서 관리한다. 농약과 동물의약품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몫이다. 라돈처럼 인체에 유해한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공산품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책임이다. 법령도 넘쳐난다. 식품위생법·식품안전기본법·제품안전기본법·생활용품안전관리법·약사법·화장품법·생활방사선법 등이 모두 유해물질 관리에 관한 법령들이다.

식약처가 느닷없이 들고 나온 ‘THB의 유해 가능성’은 사회적으로 혼란만 부추기고, 소비자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전문성·윤리성이 모두 의심스러운 선무당급 전문가들의 ‘의견’만으로는 논란을 잠재울 수 없다. 중국발 요소수 대란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혼란에서 분명하게 확인된 안타까운 현실이다.

제조사는 독성학의 아버지 파라셀수스의 ‘용량이 독을 만든다’(The dose makes the poison)이라는 주장으로 식약처의 유해 가능성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폴리페놀도 예외가 아니다. 100mL의 염색제를 30분 이상 사용해야 하는 영구 염모제와 달리 발색 샴푸에 들어있는 THB의 양이 매우 적고, 사용시간도 충분히 짧기 때문에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제도가 신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KAIST 이광형 총장의 발언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발색 샴푸 논란의 핵심은 따로 있다. 화장품법 제2조에 규정된 ‘기능성화장품’의 정의가 문제다. 특히 ‘모발의 색상 변화·제거 또는 영양공급에 도움을 주는 제품’은 모두 기능성화장품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제4조에 규정된 심사를 받아야 하고, 제10조와 제13조의 규정을 따라야만 한다. 작년 11월의 광고 금지와 12월의 원료 사용 금지 예고가 모두 화장품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식약처의 그런 주장은 광고 금지의 집행을 정지시킨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으로 상당 부분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제조사의 입장은 다르다. 모다모다의 폴리페놀 발색 샴푸는 기본적으로 계면활성제를 주성분으로 모발의 세정에 사용하는 ‘샴푸’라는 것이다. 다만 샴푸에 추가한 천연 폴리페놀 덕분에 모발의 색이 짙게 변하는 효과가 나타날 뿐이다. 결국 발색 샴푸는 식약처가 관리하는 ‘화장품’이 아니라는 것이 제조사의 입장이다. 발색 샴푸가 국가기술표준원이 관리하고 있는 ‘생활화학용품’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발색 샴푸를 어떤 법령에 따라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공연히 유해 가능성을 들고 나와서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낡은 적폐일 뿐이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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