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별이 슬픔으로 반짝일 때..'온전한 사랑'을 배웠다

한겨레 2022. 1. 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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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펫로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③
돌봄과 죽음의 공간..동물보호소의 펫로스
활동가들은 날씨가 따사로운 날이면 아픈 동물도 어떻게든 유모차에 태워 볕을 쬐러 나가려고 노력한다. 유모차에 올라 더봄센터 옥상 정원에 나온 자람이.

🌈펫로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①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 펫로스
② 반려인 50%가 펫로스…“왜 쓰레기봉투로 보내야 하나요?”
③ 강아지별이 슬픔으로 반짝일 때…‘온전한 사랑’을 배웠다
④ 하루 1100여 마리…반려동물 장례 어떻게 치르고 있나요
⑤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⑥ 가족이 떠났는데, 경조휴가 1주일 낼 수 있을까요

정예진 활동가는 카라의 유기동물보호소 ‘더봄센터’ 동물돌봄팀 소속이다. 그를 포함한 3~4명의 활동가들은 2층 견사를 담당하고, 60~70마리 정도의 동물들을 돌본다. 더봄센터에 입소하는 개들은 주로 개농장, 도살장, 애니멀호딩, 방치현장 등 열악한 환경에서 구조된 동물들이다.

그만큼 사람을 극히 두려워하고 병든 경우가 많다. 그들을 치료하고 좋은 가족을 만날 때까지 보살피는 것, 견사를 청소하고 밥과 약을 먹이는 것, 매일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산책, 목욕을 해주는 것 등 동물의 생활 전반을 돌보는 것이 그의 직무다.

여섯 개의 별이 사라졌다

수많은 개들이 입소와 퇴소를 반복했지만, 그는 아직 뽀카를 잊지 못한다. 뽀카는 사설보호소에서 온 개였다. 순하고 예뻐서 금방 입양을 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뽀카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개들이 많은 2층 견사의 자랑이었다. 모두가 뽀카의 행복을 기원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뽀카는 갑자기 밥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종양 가능성을 진단했다.

사설보호소에서 온 뽀카는 순하고 예뻐서 금방 입양을 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뽀카에게 강제급여 하는 일이 시작됐다. 어떻게든 맛있는 밥을 만들어 먹이려고 했다. 매일 오전엔 더봄센터 내의 병원에 뽀카를 데려갔고, 하루 종일 수액을 맞힌 뒤 다시 견사로 와 강제급여 하는 일이 이어졌다. 상태가 악화돼 걷는 것조차 어려워졌을 때는 한 발자국씩 떼는 것을 한참 기다리며 함께 걸었고, 그마저 안될 땐 유모차에 태워서 다녔다.

따사로운 날이면 어떻게든 뽀카를 챙겨 볕을 쬐러 나갔다. 그나마 그때가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뽀카는 결국 복수까지 차게 되어 24시간 응급진료를 하는 병원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뽀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뽀까는 투병 끝에 결국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지난해 가을 이후 더봄센터를 떠난 개가 여섯 마리나 됐다.

뽀카 전에도 세상을 떠난 동물들이 있다. 지난해 가을 이후로 넉 달 동안 여섯 마리가 떠났다. 코나, 젤리, 소리, 민국이, 달슈 그리고 뽀카. 그 이전에도 간혹 동물의 죽음을 맞았지만, 날씨가 쌀쌀해진 이후로는 아픈 동물들의 컨디션이 급격히 무너진 탓이다. 어떨 때는 격주로 장례식을 갔고, 또 어느 때는 병원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 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돌봄

모든 생명이 그렇듯 더봄의 동물들도 떠날 때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새벽에, 밤에, 혹은 아침에 평범하게 인사를 한 후에 숨을 거두곤 했다. 차라리 저녁이나 아침에 소식을 들으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은 아침에 분주하게 청소하고 밥을 주다 날벼락 같이 사망 선고를 듣기도 했다. 병원으로 가 사체를 붙잡고 서럽게 우는 날들이 있었다. 슬픔을 오래 누릴 수는 없었다. 눈 앞의 생명은 꺼졌지만, 견사에는 여전히 개들이 있었고 그들은 오로지 활동가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봄센터 옥상정원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카라 동물돌봄팀 활동가.

활동가들은 죽음을 뒤로 하고 다시 청소를 하고 밥을 주고, 목욕을 시키고 산책을 나가고, 아픈 동물들에게 돌아가 삶을 돌보는 일을 계속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했지만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개들이 죽고 난 견사를 보면 언뜻언뜻 그들의 잔상이 보였지만, 빈 견사는 다시 다른 동물로 채워졌다. 슬픔을 숨기고 일을 해야만 했던, 사실은 너무 바빠서 생각할 시간도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돌보던 개가 병원에 입원하거나 죽으면 일은 줄어든다. 똥칠된 벽을 닦지 않아도 되고, 몇 십 분씩 한 개를 붙잡고 강제급여를 하지 않아도 되고, 급여하다 흘린 음식물을 닦아야 하는 노동도 아낄 수 있다. 수액을 놓아주지 않아도 되고, 약욕을 하거나 압박배뇨를 하지 않아도 된다. 손을 많이 타야 하는 개가 사라지면 그만큼 노동강도는 완화된다.

아픈 자람이의 압박배뇨를 하고 있는 동물돌봄팀 활동가.

하지만 정예진 활동가는 이런 현실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내가 뭘 하는거지?’ ‘아,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너무 잔인하다…’. 그는 누군가 죽고, 울다가도 계속되는 일상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퇴근을 하고선 문득문득 말로 정리할 수 없는 감정으로 세상으로 내팽개쳐지곤 했다.

뽀까의 장례식장에서

뽀카가 세상을 떠난 날은 정예진 활동가의 휴무일이었다. 근무 중에는 못 갔지만, 뽀카의 장례식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날은 유독 많은 활동가들이 장례식에 왔다. 처음 뽀카가 계류장에 있을 때 돌봐줬던 사람, 처음 견사에 입소했을 때 맡았던 사람, 일을 그만둔 사람까지 포함해 그 애를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뽀카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뽀카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 애를 추억하고 추모했다.

슬픔을 오래 누릴 수는 없었다. 눈 앞의 생명은 꺼졌지만, 견사에는 여전히 개들이 있었고 그들은 오로지 활동가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하고 착했던 뽀카는 유골함에 담겨 그들의 품에 돌아왔고, 그제야 정예진 활동가는 ‘내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뽀카의 장례식에서 그는 아이가 떠날 땐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화장장으로 들어갈 때 그걸 지켜보는 것, 그 애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추모하는 것, 죽음을 잊지 않고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것까지가 모두 그들의 일이라고 했다. 그는 몇 차례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그리고 뽀카의 끝을 함께하면서 가슴에 묻어둔 이들을 꺼내는 것에 조금 더 담담해진 듯 했다.

지금도 견사에는 아픈 개들이 있다. 정예진 활동가는 걱정되는 이의 이름으로 커피와 슈슈를 꼽았다. 나이가 들었고 오래된 병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 끝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절박하게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너무나 애틋하다고 했다. 그는 따듯한 날 어떻게든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가는 것, 똥칠한 견사를 닦고 이불을 세탁하는 것,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주는 것, 그 모든 걸 더 기쁜 마음으로 한다고 했다. 야근을 하거나 점심을 거르게 되어도, 몸이 아프거나 때로 힘에 부쳐도 기꺼이 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이 지금 여기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슬픔이 펫로스일까

묘사를 담당하는 임선미 활동가도 지난해 떠나보낸 고양이가 있다. 심장과 신장이 모두 망가져 있던 고양이 ‘오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묘사 준비실에는 여전히 오니가 썼던 이동장이 있다. ‘오니야 사랑해, 어서 돌아와.’ 고양이 오니가 떠난 지는 벌써 몇 개월이 흘렀지만, 이동장에 남겨둔 메모는 지울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했다. 임선미 활동가 또한 종종, 오니와 그 애의 죽음이 생각난다고, 그래서 더 절박하게 묘사의 고양이들을 돌본다고 했다.

지난해 6월 더봄센터 정문에서 떠난 동물을 애도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지난해 6월 더봄센터 정문에서 떠난 동물을 애도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동물이 싫어하는 강제급여을 한 게 미안하고, 좀 더 정성스럽게 닦아줄 걸,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할 걸 후회한다. 내내 ‘좋은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거야’라고 주문처럼 이야기 해줬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보호소 동물들의 가족은 활동가들이었다. 제 반려동물처럼 마음껏 목 놓아 울지도 못하고 가슴에 묻어야 했으나, 활동가들에게 그 애들은 또 다른 가족이었다.

한편으론 차마 가족조차 되어주지 못한 동물들에 대한 상실감과 슬픔을 느끼는 동료들도 있다. 산 채로 타 죽은 개의 사체를 끌어안고 오열하던 고현선 활동가가 그랬고, 토막살해를 당한 고양이의 사체를 품에 안고 걸으며 명복을 빌던 최민경 활동가가 그랬고, 빤히 죽을 것이 뻔한 돌고래를 손쓸 수 없이 볼 수밖에 없었던 김민수 활동가가 그랬다.

더봄센터 2층 견사에는 별이 된 아이들의 프로필이 남아있다.

숨죽여 슬픔을 삭이며 차마 말도 못 꺼내고 가슴에 묻어야 했던 활동가들, 그리고 개시장의 뜬장에서 꼬리를 흔들던 누렁이를 두고 돌아서야 했던 나 또한 그랬다. 이 슬픔을 감히 펫로스라 불러도 괜찮은 것인지, 심리적 외상이라 할 수 있을지, 나는 아직도 그 감정과 상태를 무엇이라 정의할 지 잘 모르겠다.

떠난 생명들이 알려준 것

보호소에서 죽는 동물의 삶은 비참하다. 우연히 태어나, 불행히도 학대 당하고, 운 좋게 구조됐지만 끝내 보호소에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그 애들은 또한 잠시나마 잔디밭을 뛰놀았고, 우리의 손길에 턱을 괴고 나름의 애정을 표현하고 사랑 받았다. 이제는 안다. 그들도 행복했다는 것을.

말 못하는 작은 생명들은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가르쳐줬다.

슬픔을 감내하고서 기꺼이 온전한 마음을 바치는 것,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그 헌신은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말 못하는 작은 생명들은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가르쳐줬다. 이제 우리는 그 슬픔과 고통을 빌어 다른 생명들을 더 사랑하게 됐다. 떠나간 이들의 명복을 빈다. 그들이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부디 그들에게 배운 사랑을 다시 돌려줄 수 있기를 빈다.

글 김나연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권행동 카라는 물리적‧물질적 이유로 ‘살처분’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비영리단체다. 단, 의료적 처치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고통이 극심한 경우에는 수의사의 판단과 활동가들의 승인으로 인도적인 ‘안락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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