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을 사유하며 [오늘을 생각한다]

2022. 1. 1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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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호랑이를 본 적이 있는가. 보통 사람은 살면서 호랑이 볼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호랑이는 친근하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이 호랑이라는데, 그에 관한 속담만 13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아시아에 서식하는 식육목 고양잇과 포유류 호랑이는 모든 고양잇과 동물 중 가장 크다. 호랑이는 총 9종인데, 발리 호랑이, 카스피 호랑이, 자완 호랑이는 멸종했다. 남은 6종도 세계자연보존연맹이 분류한 멸종위기종으로, 2016년 기준 3890마리가 살고 있다. 같은 해 세계 총인구는 74억3300만명이다. 1900년대 16억5000만명에 불과했던 인류가 4배 이상 성장하는 사이 10만마리가 넘던 호랑이는 97% 감소했다. 인구가 100억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는 2050년, 호랑이는 몇마리나 지구에 남아 있을까? 아이들에게 속담의 의미를 설명해주려면 동물원이나 사파리가 아닌 박물관을 방문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프다가 아뿔싸, 2050년 호랑이와 인간 중 누가 더 안녕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새해 들어 가장 떠들썩한 단어는 ‘멸공’인데, 멸공보다 ‘멸종’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100년 동안 최소 543종의 육지 척추동물이 멸종했으며, 앞으로 20년간 또 그만큼의 동물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생물다양성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생물다양성은 왜 중요할까?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거미줄에 비유했다. 거미줄이 하나씩 끊어지는 만큼 약해진다고 설명한다. 생물학자 폴 얼릭은 “생물 한 종을 잃는 것은 비행기 날개에 달린 나사못을 뽑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사못을 몇개 뽑는다고 비행기가 즉각 추락하지는 않지만 계속 뽑다 보면 결국 비행기는 추락하고 말 것이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생물다양성의 위기를 젠가 게임에 빗댄다. 어떤 동식물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멸종이 티핑포인트가 돼 생태계가 굉음을 내며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있는 인류일 것이다. 6500만년 전 공룡이 지구에서 자취를 감춘 것처럼….

인간은 호랑이가 멸종위기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낄 뿐 ‘위기감’이나 ‘두려움’은 잘 느끼지 못한다. 수달은 어떤가? 두루미와 제비는? 맹꽁이와 구렁이는? 꼬마잠자리와 장수하늘소는 또 어떤가?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각각의 동식물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생명이 존속하려면 서로에 의존해야 한다. 삶이 풍요롭다는 것은 의존할 대상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임인년을 시작하며 호랑이의 멸종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꼬마잠자리와 장수하늘소가 점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고, 지리산과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하얗게 박재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난해 말 작고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을 추모하며 멸‘종’을 사유한다.

지현영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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