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도 맘에 든다 [편집실에서]

2022. 1. 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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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산책을 좋아합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은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회사 근처를 걷습니다. 정동길은 사계절 아름답습니다. 해마다 빠지지 않고 ‘베스트 산책로’에 이름을 올리는 덕수궁 돌담길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 건너편 경희궁, 좀더 멀게는 청계천과 서촌, 안산자락길까지 진출하기도 합니다. 그날의 기분과 몸 상태에 따라 ‘골라 가는’ 재미가 있지요.

최근에는 서소문역사공원 쪽으로 산책 코스를 잡았습니다. 오랜만이었어요. 볕이 좋아 예정 시간을 넘겨버렸습니다. 종종걸음으로 편집실로 돌아오는데 뭔가 ‘낯선’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처음엔 은행지점인가 했어요. 파란색 간판이며 창문 너머 직원들의 복장, 창구 앞에 줄 서 있는 고객들의 모습 등이 전형적인 은행 창구의 풍경이었거든요. 은행지점치고는 공간이 협소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내부를 들여다봤습니다. 고객들은 환전이나 예·적금, 대출 상담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도’ 커피를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간판의 상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커피기업’ 커피숍이었던 겁니다. 다음날, 바로 달려갔습니다. 은행 창구(커피숍 매장)에서 환전 상담(주문)을 마치고 마시는 커피는 어떤 맛일까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매장 내부는 은행 창구와 항공사 발권 카운터, 비행기 내부를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데페이즈망’이라고 하죠. 초현실주의 거장 중 한명인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가 즐겨 사용한 표현기법인데요. 우리말로 하면 ‘낯설게 하기’쯤 되겠습니다. 익숙한 풍경과 고정관념을 뒤집어 전혀 엉뚱한 곳에 사물을 배치하거나 현실에선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묘한 궁금증과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의 작품들은 각종 영화와 광고 등에서 패러디나 오마주의 단골 대상으로 등장하기도 하지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외국에 못 가니 비행기 탈 일이 확 줄었습니다. 은행의 환전 창구에 들를 일도 별로 없습니다. 비대면 상담 증가와 온라인 뱅킹 활성화로 금융권에선 지점 통폐합과 인력 감축 작업이 한창입니다. 은행 창구가 사라진다는 소식만 들려오는 상황에서 불쑥 나타난 ‘오피스(사무공간) 콘셉트의 커피숍’은 낯설면서도 신선했습니다. “한 집 건너 한 커피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피 매장은 차고 넘치지만 다들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요. 데페이즈망이 후대 예술가들 사이에 영감의 원천으로 떠오른 것처럼 ‘커피기업’의 낯선 조합도 대세로 자리 잡으려면 여러 관문을 거쳐야겠지만 적어도 이들의 창의적 발상과 과감한 시도만큼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습니다.

‘주간경향의 실험과 도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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