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6]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균열은 바로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졌다.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사납게 몰아쳤다. 꽉 찬 보름달이 눈앞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벼락처럼 길고도 사나운 굉음이 들려왔다. 저택을 둘러싸고 있던 깊고 검은 호수가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어셔가의 잔해를 집어삼켰다. -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 중에서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지난 5일, 평택에서 발생한 냉동 창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세 명의 소방관이 안타깝게 순직했다. 14일엔 광주광역시의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외벽 붕괴 사고가 일어나 다수의 실종자와 사망자를 낳았다. 북한도 5일과 11일, 14일과 17일, 벌써 네 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어셔가는 왜 몰락했을까? 유서 깊은 가문이었지만 낡고 음산한 저택에 남겨진 건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던 로드릭과 마들렌이라는 병약한 남매뿐이었다. 로드릭은 여동생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볼 용기조차 없어 가사 상태인 줄 알면서도 그녀를 관에 넣고 못을 박는다. 그 후 로드릭의 심장을 옥죈 죄책감과 공포심은 그와 어셔가를 서둘러 파국의 골짜기로 이끈다.
소방 현장에서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 한 지휘관의 무리한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건설 현장 사고도 부실 공사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연속된 북한의 도발에도 군 통수권자는 언제나처럼 ‘주시하라’는 말만 남긴 채 중동으로 떠났다. 과도한 코로나 방역으로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가는 와중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로 잃지 말아야 할 목숨을 잃는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졸아든다.
11일에도 기억해야 할 사고가 있었다. 스물여덟 살의 심정민 공군 소령이 이륙 직후 기체 이상으로 추락, 순직했다. 탈출할 수 있었지만 민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인근 야산까지 조종을 계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는 게 살얼음판이다. 그래도 작지만 소중한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려 애쓰는 이들의 뜨거운 가슴이 있어서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홍준표 “사람 현혹해 돈벌이하는 ‘틀딱 유튜브’ 사라졌으면”
- 기아, 인도에서 콤팩트 SUV ‘시로스’ 세계 최초 공개
- 조국혁신당, 한덕수 탄핵 소추안 준비...“내란 방조, 부화수행”
- 금감원, 뻥튀기 상장 논란 ‘파두’ 검찰 송치
- DPK pressures acting president with impeachment over delay in special counsel bills
- ‘박사방 추적’ 디지털 장의사, 돈 받고 개인정보 캐다 벌금형
- 마약 배달한 20대 ‘징역3년’... 법원 “단순 배달책도 엄벌 불가피”
- 대학 행정 시스템에서 번호 얻어 “남친 있느냐” 물은 공무원... 法 “정직 징계 타당”
- “무서워서 한국 여행 안갈래”… 외국인 여행 예약 뚝 떨어졌다
- 전국 법원 2주간 휴정기… 이재명 재판도 잠시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