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6]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김규나 소설가 2022. 1. 19.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 ‘어셔 가의 몰락’

균열은 바로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졌다.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사납게 몰아쳤다. 꽉 찬 보름달이 눈앞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벼락처럼 길고도 사나운 굉음이 들려왔다. 저택을 둘러싸고 있던 깊고 검은 호수가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어셔가의 잔해를 집어삼켰다. -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 중에서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지난 5일, 평택에서 발생한 냉동 창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세 명의 소방관이 안타깝게 순직했다. 14일엔 광주광역시의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외벽 붕괴 사고가 일어나 다수의 실종자와 사망자를 낳았다. 북한도 5일과 11일, 14일과 17일, 벌써 네 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어셔가는 왜 몰락했을까? 유서 깊은 가문이었지만 낡고 음산한 저택에 남겨진 건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던 로드릭과 마들렌이라는 병약한 남매뿐이었다. 로드릭은 여동생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볼 용기조차 없어 가사 상태인 줄 알면서도 그녀를 관에 넣고 못을 박는다. 그 후 로드릭의 심장을 옥죈 죄책감과 공포심은 그와 어셔가를 서둘러 파국의 골짜기로 이끈다.

소방 현장에서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 한 지휘관의 무리한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건설 현장 사고도 부실 공사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연속된 북한의 도발에도 군 통수권자는 언제나처럼 ‘주시하라’는 말만 남긴 채 중동으로 떠났다. 과도한 코로나 방역으로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가는 와중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로 잃지 말아야 할 목숨을 잃는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졸아든다.

11일에도 기억해야 할 사고가 있었다. 스물여덟 살의 심정민 공군 소령이 이륙 직후 기체 이상으로 추락, 순직했다. 탈출할 수 있었지만 민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인근 야산까지 조종을 계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는 게 살얼음판이다. 그래도 작지만 소중한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려 애쓰는 이들의 뜨거운 가슴이 있어서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