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 사이]문재인 대통령, BTS, 윤석열 후보 팬덤의 국민들
[경향신문]
재현물이나 현실에서 정치인, 예술가 등 유명인에게 “팬입니다”라며 악수를 청하는 장면이 나오면 불길하다. 나는 스릴러 영화의 전조를 보는 착각에 빠져 혼자 시나리오를 쓰는 버릇이 있다. “팬이 안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식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호모 사피엔스의 숭배와 사랑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1961년 출간된 에드가 모랭의 <스타>는 우상의 역사로부터 시작, 현대 사회 대중문화의 정치경제학과 심리학을 다룬 역작이다. 영국의 영문 표기는 여전히 왕국인 양 ‘United Kingdom(UK)’이다. 영어의 ‘~dom’은 옛 왕국을 뜻한다. “스타덤에 올랐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오늘날 문화산업 연구에서 소비자의 주체성이 강조되면서 팬덤(fandom)이라는 말도 생겼다. 팬이 없다면 스타도 없다. 팬덤은 국가처럼 일종의 상상의 공동체다. 일본 사회의 한류는 자신을 욘사마 나라, 뵨사마(이병헌) 나라의 국민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열정을 의미한다.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통치자의 운명처럼 팬 없는 스타는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 국민(nation, 사람) 개념이 그렇듯, 팬덤도 그리 간단한 현상이 아니다.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스타가 있다. 인구는 적지만 나만의 국가, 커뮤니티다. 이때 나의 국적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내가 스타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랑의 반대는 부담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반대는 구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스타가 나를 알면 곤란하다. 스타는 팬들의 사랑을 받되, 그들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 나의 스타는 소설가인데, 나는 그(녀)의 예술이 자본주의의 희생자 - 상업적 논리로 사유가 억압당하는 것 - 가 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나의 스타는 정치적·윤리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그는 나를 변화시켰다. 스타와 팬이 한마음이 되어 국토를 넓힌다. 나는 그(녀)의 책을 많이 사고 주변에 널리 알리며 ‘수준 높지만 민망하지 않은’ 댓글을 달기 위해 고심한다. ‘그분의 독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국민에서 사도(使徒)로 승격되고 싶다.
문빠·박사모 팬덤에 지지자 분열
반면 스타의 시간을 빼앗고, 집착하고, 머리카락 등 몸을 탈취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랑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광신으로 발전하기 쉽다. 토니 스콧 감독의 <팬>의 로버트 드니로는 광팬을 거쳐 스토커, 살인자로 변모한다. 이처럼 스타에 대한 팬의 마음은 여러 가지다. 그냥 좋음, 존경, 선망, 소유욕, 반사회적인 짝사랑….
이 중 자기 인생의 스트레스와 낙오자 심리를 스타를 숭배함으로써 도피하려는 부류가 가장 위험하다. 팬덤의 어느 행태가 다른 이들이 ‘그 나라’를 싫어하는 이유다. 종교사회학에서 말하는 역선교(逆宣敎)다. 예전, 서울의 신도림역은 이런 이들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더욱 고달팠다. 그 왕국은 스피커를 틀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친다. 그들에게 잡힐까봐 뛰는 사람도 있었다. 시민들의 이구동성, “저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싫다”.
사랑은 가장 첨예한 권력의 이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층은 숨죽이며 그를 사랑했다. 반면 사랑의 자유를 맘껏 누리는 이들도 있다. 극성스러운 정치인 팬덤은 ‘국정농단’이 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집권 초기 문빠의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친구가 나더러 “문빠”라고 해서 놀랐다. 이 단어는 기존의 ‘오빠부대’라는 말에서 나왔다. 여성 팬과 남성 스타의 조합, 즉 성별화된 표현인 데다 정치인에 대한 차선의 선택이 팬덤이라니. 다소 불쾌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권 내내 ‘문빠’는 논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윤석열씨 같은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생산했다.
대표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한겨레21 표지 사건은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저널리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례다. 당시 한겨레21은 2017년 5월22일자(1162호, “새 시대의 문”) 표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누리꾼들은 수백 개의 악성 댓글로 비난을 퍼부었다. 요지는 대통령의 얼굴이 권위적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수천 명의 정기구독자가 절독을 선언했고, 언론사 측은 그다음에 ‘대통령 얼굴 해명 특집호’를 냈다. 내가 보기엔 리더십이 부각된 문제없는 사진이었다. 대통령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 이것이 협박하고 ‘해명’할 일인가.
이후 문빠, 대깨문으로 불리는 이들은 박정희 부녀 팬덤(박사모)과 다를 바 없이, 누가 더 퇴보적인 집단인지를 경쟁했다. 혹자는 두 집단이 어떻게 같냐고 하겠지만, 전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숭배 대상이 아니라 행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박노자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어디에서도 믿을 만한 사회적 ‘어른’을 찾을 수 없어 헤매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피해자들이 특정 정치인에게 그들의 욕망을 투영해 그를 유사 가부장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문빠는 수많은 중도층을 도망가게 해서, 결국 문재인 정부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팬덤이 왕국에서 유래한 말이므로 문빠는 국수주의에 해당한다. 누가 좋아하겠는가. 연애 담론에 흔히 나오는 얘기, 이들은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진정으로 지지한 것이 아니다. 그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했을 뿐이다(과거형이기를 바란다).
반면, 1990년대 ‘서태지와아이들’의 등장은 그들의 음악뿐만 아니라 당대의 문화 정치 패러다임을 바꾼 현상이었다. 서태지와아이들의 메시지를 공유하는 팬들은 작은 행동에서부터 사회를 바꾸고자 했다. ‘서태지기념사업회’는 스타 사랑을 공연 후 쓰레기 줍기부터 불우이웃돕기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행동으로 실천한 이들이었다.
기이한 건 지지자 비하하는 윤석열
지금 BTS의 아미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코로나로 2년 만에 열린 LA 대면 콘서트 때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사랑해, 끝까지 함께하자.” 이 구호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멸망 직전의 세상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서로 돕고 살자는 뜻이다. 신자유주의와 코로나 시대,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 없는 세상에서 “끝까지 함께하자”는 팬들의 외침은, 생존의 욕구다. 팬덤, 종교, 정치는 공동선을 의식하는 배려와 사랑의 공동체여야 한다. 그 운영 원리는 다르지 않다.
BTS는 열등감 없는 최초의 한국 남성이 공적으로 등장한 사건이다. 피해자 의식이 없는 이들만이 인류에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고 설득할 수 있다. 2018년, 유엔 연설에서 BTS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당신들의 심장을 뛰게 하나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분이 누구든 어디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젠더 정체성이 무엇이든,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보세요.”
이처럼 서태지와아이들과 BTS의 팬은 일방적으로 스타로부터 위로받고 즐기는 이들이 아니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의 팬이기에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문빠는 배타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을 이용하고 장사를 하는 진보 세력도 많았다. 문빠나 박사모는 타인의 불편을 대놓고 조장하고 이유 없이 적대한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팬덤도 없고, 팬덤 정치도 없는 듯하다. 특히 윤석열 후보는 스스로 등장한 정치인이 아니라 현 정권에 대한 안티 테제의 산물로, 훈련할 것이 많은 “연기력이 필요한” 신인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매력이 워낙 없다보니 그의 지지자들도 윤 후보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윤석열 후보에 대한 나의 관심은 본인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향한 가학적 태도다. 이런 분은 처음 본다. 많은 이의 가슴에 새긴 그의 명언(銘言), “극빈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세금을 걷어, 어려운 그들을 도와 교육과 경제 기초를 만들어주는 것이 자유의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나쁜 동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그의 발언에 대한 누리꾼들의 댓글에 있었다. “당신이 말한 그런 사람들이 바로 당신에게 투표하는 이들입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욕보이는 후보는 처음이네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자가 문제인가? 자기 지지자를 비하는 정치인이 문제인가? 한쪽은 ‘국민(문빠)’들이 난동을 부리고, 다른 쪽은 ‘왕’이 이상하다. 그러니, 나라에 국운이 없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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