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공급망 위기.. 반도체 다음엔 전기강판이 문제? [최원석의 디코드+]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2022. 1. 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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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디코드+’는 조선일보 온라인칼럼 ‘최원석의 디코드’의 ‘네이버 프리미엄’용 별도 기사입니다. 매주 수요일 나옵니다.

전기차(EV) 등의 모터에 사용하는 전기강판 공급이 2025년 이후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닛케이크로스테크가 지난 4일 보도했습니다. 전기차 생산·판매가 급증하고 있지만, 철강사들이 전기강판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죠. 연강에 규소(Si)를 첨가한 전기강판은 모터의 철심(코어)을 구성하는 핵심 자재입니다. 전기강판의 성능은 모터효율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성능이 좋은 전기강판을 사용한 모터는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지요. 같은 힘을 내면서도 배터리의 전력을 덜 소모할 수 있으니까요. 영국 조사회사 IHS 마킷에 따르면, 전기차에 들어가는 모터에는 1개당 60~150달러(약 7만~18만원) 어치의 전기강판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자동차 업계에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반도체 부족에 따른 부품 공급망 리스크가 이어질 전망인데요. 반도체 부족사태가 올해나 내년에 끝나더라도, 이후에 전기강판 부족이 전기차 생산의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반도체 부족사태로 자동차회사들이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거나 공급망을 자체 구축하는 등 자동차와 반도체 회사 간 관계가 변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기강판 부족사태가 자동차회사와 철강회사 관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전기강판 부족으로 전기차 생산에 제한을 받는다면, 반도체 부족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자동차회사가 직접 전기강판 제조에 관여하거나 공급망 장악에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기차용 전기강판의 세계 수요는 2020년에 32만 톤이었지만,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2027년엔 250만 톤, 2033년에는 400만 톤을 넘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IHS 마킷은 작년(2021년) 12월 전동차용 전기강판 수급 전망에 따르면 말입니다.

전기강판에는 방향성과 무방향성의 2종류가 있는데, 이 중 자동차업계에 영향이 큰 것이 무방향성 전기강판입니다. 모든 방향으로 우수한 자기 특성을 갖고 있어 주로 전기차용 모터에 사용합니다. 철강사들마다 무방향성 전기강판의 증산을 계획하고 있지만, IHS는 계획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조사회사 메탈즈테크놀로지컨설팅(Metals Technology Consulting)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IHS 예측에 따르면, 2025년 이후 무방향성 전기강판 공급이 부족해지기 시작해 2027년엔 연 35만 톤, 2030년엔 연간 90만 톤 이상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기강판의 공급이 부족해지면 전기차에 힘을 쏟는 모든 자동차 회사에 악영향이 예상됩니다. 일부 자동차회사는 이미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GM은 GE와 제휴해 안정적인 전기강판 공급망 구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자동차 회사와 철강사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철강사의 교섭력이 강해질 수 있고, 자동차회사와 철강사의 제휴가 증가할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일본제철은 작년(2021년) 10월 도요타와 중국 바오산강철이 자사의 무방향성 전기강판 특허를 침해했다며 이들을 제소했습니다. 부품·재료업체가 고객사를 고소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무방향성 전기강판의 공급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본제철이 대형 고객사에 강경한 수단을 써서 고객사와 관계가 악화하더라도, 미래 시장 확보를 위한 자사 기술 보호에 나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제철은 무방향성 전기강판 기술력이 세계 최고이고, 최고급 전기강판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죠. 따라서 고객사가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발주처를 바꿀 가능성이 작다고 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IHS는 자동차용 고품질 무방향성 전자강판을 만들 수 있는 철강업체가 전 세계 14곳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술적 난도와 특허 장벽이 높아 신규 참가가 쉽지 않고, 차량 성능을 좌우하는 부품이라 대체품 조달도 간단하지 않다고 IHS는 설명했습니다.

또 IHS는 전기강판을 적층해 모터 코어를 제조할 수 있는 업체가 제한된 것도 공급 부족 요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동차회사가 요구하는 품질에 대응할 수 있는 업체가 전 세계에 20곳 정도밖에 없는데, 기업 규모가 작아 빠른 생산 확대가 어렵다는 겁니다.

자동차회사로서는 무방향성 전기강판 생산 지역이 편중된 것도 리스크입니다. 생산량의 88%가 중국·일본·한국에 집중돼 있습니다. 전기강판 수입에 관세를 물리는 국가도 많아, 지역에 따라서는 전기차 생산 비용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급 부족에 빠질 가능성이 특히 큰 지역이 유럽입니다. 전기차 보급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지만 무방향성 전기강판의 생산 거점이 적습니다. 미국은 전기강판 수입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의 모터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IHS 는 전망했습니다.

IHS는 한 방향으로 뛰어난 자기특성을 갖는 방향성 전기강판도 공급부족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방향성 전자강판은 주로 충전 인프라 등의 변압기에 사용합니다. 각국에서 충전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어서, 방향성 전기강판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보입니다. 변압기용의 방향성 전기강판과 전기차 모터용의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거의 같은 제조설비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공급능력이 한정될 경우 세계적인 수요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사업체 마켓앤마켓츠에 따르면 세계 전기강판 시장은 2025년에 459억 달러(약 54조8000억원)로, 2020년보다 50%가량 늘어날 전망입니다.

한편 전기강판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최고, 다음이 한국·중국 순으로 평가됩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제철이 강판 성능이나 제조 비용 면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모터용 무방향성 전기강판의 경우, 상온에서 강판을 얇게 늘리거나 가열한 강판을 서서히 식히는 공정을 개발해 적은 전력으로 모터를 더 효율적으로 회전시킬 수 있는 강판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본제철의 제조 공정은 특수 설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코스트 면에서도 경쟁력이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기차에서 이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나가고 있는 중국이 최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작년(2021년) 12월 12일 기사에서 ‘중국 업체의 전기강판 경쟁력이 커지고 있다”면서 “바오산(宝山)강철이 2021년 10월 현재 일본 내 전기강판 특허 4위에 올랐다”고 썼습니다. 바오산은 세계최대 철강사인 중국 바오우(宝武)강철의 자회사입니다. 바오우그룹은 2016년 중국 내 2위 업체인 바오산강철과 6위인 우한강철이 합쳐져 만들어졌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특허 조사회사 패턴트리절트가 공동으로 2021년 10월 현재 일본 내 전기강판 특허를 바탕으로 업체별 관련 경쟁력을 분석했는데요. 단순 특허건수가 아니라 특허별 중요성 등을 종합 평가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1위는 일본제철(일본), 2위는 JFE 스틸(일본), 3위는 한국 포스코였습니다. 바오산강철은 2011년 8위에서 4위로 상승했습니다.

종합점수로는 일본제철 2647, JFE스틸 2205, 포스코 611로 일본·한국 주요 철강사가 톱3입니다.(점수가 높을수록 경쟁력이 높다는 의미) 바오산강철은 171로 상위 3개사와 아직 차이가 큽니다. 그런데도 바오산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10년 전과 비교한 종합점수 증가율이 3.6배로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또 바오산은 변압기 등에 사용하는 전기강판의 레이저 가공 기술이 뛰어납니다. 패턴트리절트는 바오산이 특허 건수는 적지만 특허 질이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바오산의 전기강판 특허 1건당 참조 회수는 일본제철·JFE의 2배 이상입니다. 바오산의 특허에 대한 업계 주목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오산의 2020년 연구개발비는 1조6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일본제철의 7000억원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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