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원불교 박청수 교무가 '賞 욕심' 많은 까닭은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2. 1. 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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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박청수 교무.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에서. /김한수 기자

지난주 원불교 박청수(85) 교무의 거처를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경기 용인 처인구 헌산중학교 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이지요. 오랜만에 찾았지만 변한 건 거의 없더군요. 바람이 불 때마다 오묘한 소리를 내며 울리는 풍경(風磬), 박 교무가 선물 받아 잘 키우고 있는 식물들, 입구의 ‘길냥이 밥 그릇’까지 거의 풍경은 그대로였습니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을 오랜만에 찾은 이유는 박 교무님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지구 살리기 기금’을 기부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부한 금액은 3400만원. 요즘은 신문에 실리는 기부도 액수가 많이 커졌습니다. 억단위가 수두룩하지요. 그런데,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박 교무님의 3400만원은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지난주 조선일보에도 기사가 게재됐습니다만, 오늘은 그 뒷 이야기를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022년 1월 13일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에서 '지구 살리기 기금' 전달식이 있었다. 왼쪽부터 세계자연보전연맹 한국위원회 황은주 사무총장, 한국위원회 윤종수 회장, 연맹 이성아 사무차장, 박청수 교무, 김명자 전 장관. /김한수 기자

시작은 한 80대 여성이 박 교무에게 650만원을 ‘개인적으로’ 기부한 것이었습니다. 박 교무님은 은퇴 전까지 50년간 전세계 55개국의 어려운 이웃을 도왔지요. 지금도 캄보디아에 무료병원과 어린이집 운영을 위해 매월 640만원씩 보내고 있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한 박 교무님이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아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80대 여성은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분이었겠지요. 650만원을 건네며 “이 돈은 꼭 (다른 사람이 아닌)박 교무님 본인을 위해 쓰시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박 교무님은 기부금을 받고 마음이 편치 않았답니다. “제 나이 또래 분인데, 말씀을 나누다보니 650만원이 그 분의 전재산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대화 중에 ‘샌드위치’란 단어가 나왔는데 그 분이 못 알아들으셨다는군요. 박 교무님은 순간적으로 ‘이 분이 평소 샌드위치도 잘 못 사드신 분인 것 같다’고 눈치챘다지요. 그 후로 박 교무는 그렇게 귀한 돈이 자신의 통장에 있다는 사실이 부담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궁리를 했지요. 지금까지 해온 일이 ‘사람 살리기’ 였다면 ‘지구 살리기’ 혹은 ‘지구+사람 살리기’로 시선을 확장한 것입니다. 신문, 뉴스만 보면 언제든 나오는 것이 온난화, 탄소 등등 지구 살리기 이슈이니까요.

경기 용인 처인 헌산중학교 뒤에 위치한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입구. /김한수 기자

박 교무의 네트워크가 가동됐습니다. 30년 지기(知己)인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께 물었답니다. 어디에 이 돈을 쓰면 좋을지. 김 장관이 고민 끝에 추천한 기관이 세계자연보전연맹이었습니다. 이 연맹이 제안한 사용처는 우간다였습니다. 우간다 북부엔 시어(Shea) 나무 숲이 있었답니다. 시어 나무는 버터나 화장품 등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나무이지만 땔감이 부족한 주민들이 베어 연료로 쓰는 바람에 사막화는 가속되고 주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연맹은 이 지역에 나무를 심는 운동을 통해 자연도 살리고 주민도 살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답니다.

사용처가 결정되자, 박 교무 특유의 ‘욕심’이 발동됐습니다. 650만원에 더해 1000만원을 만들기로 마음 먹은 것이지요. 80대 여성이 박 교무에게 650만원을 건넨 것이 지난해 11월. 마침 이 연맹의 2인자인 사무차장은 한국 출신 이성아씨였습니다. 이 사무차장은 다른 사업 논의도 있고 해서 올해 1월 한국을 방문해 박 교무님께 기부금을 전달받을 예정이었지요. 그 사이 박 교무와 연맹 사이엔 기부 절차를 위한 논의가 진행됐지요. 이 사무차장을 비롯한 연맹 관계자들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기부 액수가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1000만원이던 기부금이 한 달 후엔 2000만원, 3000만원으로 늘다가 최종적으로 3400만원이 된 것지요.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작은 마당엔 풍경 7개가 달려 있어 바람이 불면 항상 맑은 소리가 울려퍼진다. /김한수 기자

박 교무는 원불교 강남교당 책임을 맡아 세계 55개국을 지원할 때 모금 비결을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뻔뻔하게, 그렇지만 밉지는 않게’라고요. 이번에도 이 비결을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종잣돈 650만원이 2개월여만에 3400만원으로 불어난 것입니다. 13일 조촐한 기증식 자리에서 연맹 관계자들은 “저희 방문 날자를 한 달만 늦췄어도 기부 액수가 더 늘어났을 것 같다”고 말해 참석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엔 박청수 교무가 선물 받은 식물들이 잘 자라 온실을 방불케한다. /김한수 기자

저는 박 교무님의 활동을 보면서 몇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면 일단 움직인다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원불교는 지금은 국내 4대 종교로 꼽히지만, 사실 개신교 불교 천주교에 비하면 교세(敎勢)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박 교무가 한창 활동하던 30~40년 전에 교세가 더욱 미약했지요. 그렇지만 박 교무는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국내외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이 있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이 마음 쓰여서 못 견뎠습니다. 고민 고민 하다가 못 견디고 결국 돕기로 결심하고 본인이 먼저 나서고 주변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못 견디면 회의(會議) 없이 일단 지원을 결정했지요. 천주교가 운영하는 성라자로마을 후원도 그렇게 시작해 40년이 흘렀습니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엔 국내외에서 박 교무에게 보낸 기념품, 선물이 고스란히 소장돼 있다. 사진은 성라자로마을에서 보내온 기념품. /김한수 기자

박 교무는 스스로 먼저 ‘엿장수’까지 하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간절함을 잘 알기에 주변 분들은 기꺼이 주머니를 열었지요. 소설가 고(故) 박완서 선생은 박 교무의 활동을 지원하는 원불교 강남교당 교도들을 ‘화수분’이라 불렀다지요. 박 교무가 이야기하는 ‘뻔뻔하게, 그렇지만 밉지는 않게’의 본질입니다. 박 교무는 2015년 펴낸 저서 ‘박청수-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세상 받든 이야기’에서 자신의 평생을 “쉼 없이 길쌈했던 여인”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일마다 애가 타고 애간장이 녹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이뤄지곤 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일손을 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손을 못 놓으신 것이지요.

박청수가 도왔던 세계 55개국을 표시한 세계지도. /김한수 기자

지금 박 교무의 거처인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박 교무가 전세계에 설립한 9개 학교 중 하나인 헌산중학교 뒷편에 있습니다. 2층은 거처, 1층은 박 교무의 반세기 봉사 인생이 정리된 일종의 개인 박물관입니다. 신문 기사 스크랩, 세계 각지에서 선물 받은 기념품과 도움받은 이들이 보내온 감사 편지까지 하나하나 소중히 전시되고 있습니다. 생존 인물이 개인 박물관이 옳으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서 본인 스스로 모으지 않고 보관하지 않았다면 이 기록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박 교무는 상(賞) 욕심도 많습니다. 이미 만해대상, 호암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으셨지요. 상 욕심이 많은 것은 그 상금을 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 기증식에서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박 교무가 돕게 된 우간다가 ‘세계 55개국’에 포함되느냐, 아니면 새로 추가돼 ‘세계 56개국’이 되느냐가 잠시 화제가 됐습니다. 결국 박 교무의 저서에서 지원국 목록을 꼼꼼히 살피던 김명자 장관이 결론 내렸습니다. “세계 55개국 변함 없습니다! 우간다도 이미 도우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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