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라이가 할퀸 상처 고스란히..국제사회 잊혀진 이들 돌아보길"

손구민 기자 2022. 1. 1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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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세계식량계획 필리핀 사무소장 브렌다 바튼 화상인터뷰

[경향신문]

태풍 라이가 휩쓸고 간 필리핀 시아르가오섬의 모습. WFP 제공
작년 12월 민다나오 북동부 강타
여의도 면적 200배 농경지 파괴
아동 3명 중 1명 ‘영양실조’ 고통
수십만명 삶의 터전 잃었지만
코로나에 밀려 관심·지원 부족

혼자서 11개월 된 갓난아기를 키우는 소피아(19)는 지난해 12월16일 태풍 ‘라이’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북동부에 덮친 후 한 달 동안 생활했던 이재민 임시 생활센터를 최근 떠나야 했다. 임시 생활센터로 사용된 학교가 다시 학생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풍으로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소피아는 막막하다. 아기는 밥을 제대로 못 먹어 저체중 상태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소피아와 그의 아이처럼 필리핀에서 태풍 라이로 집을 잃은 이들은 적어도 수십만명에 달한다. 필리핀 정부와 WFP 등은 이외에도 약 800만명이 태풍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받았다고 추산했다.

브렌다 바튼 WFP 필리핀 사무소장은 지난 14일 경향신문과 화상 인터뷰를 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잡으면서 필리핀의 재난 상황은 언론의 관심 밖으로 벗어났다”며 “언론의 조명이 없다 보니 국제사회의 지원도 많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브렌다 바튼 WFP 사무소장이 태풍 피해 현장에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WFP 제공

지난달 민다나오 북동부 시아르가오섬을 중심으로 덮친 태풍 라이의 최대 풍속은 시속 195㎞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의 200배가 넘는 6만1000㏊의 농경지가 파괴됐고 집과 건물이 대부분 무너졌다. 사망자는 지난 14일 기준 500명을 넘어섰다. 전기통신망도 붕괴해 서로를 찾지 못하는 가족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임시 센터에 있던 이재민들 중 절반 정도는 돌아갈 집이 없다. 바튼 소장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우연히 만난 한 가족은 집이라 할 수 없는 공간을 지어 생활 중이었다”면서 “그들은 아침에 먹을 것이 빵 몇 조각이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천주교 국가인 필리핀은 크리스마스가 대명절이다.

WFP는 6개월짜리 초기 대응 계획을 시행 중이다. 우선 트럭 200여대를 동원해 정부가 마련한 비상식량의 배급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비상식량 패키지 20만개가 이재민들에게 전달됐다. WFP는 쌀을 구매해 정부의 식량 지원에 힘을 보태고 있다. 3개월간 식량을 지원한 후 다음 3개월 동안은 한 가정당 매달 59달러(약 7만원) 정도를 전달할 계획이다. 지역경제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다만 태풍 피해로 물가가 폭등한 상황이어서 현금 지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바튼 소장은 “물가 상승 요인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면서 다른 국제기관들끼리 현금 지원 규모를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튼 소장은 “2013년 필리핀에서 6000명 넘게 사망한 태풍 하이옌에 비해 태풍 라이는 세계의 관심을 끌 정도의 사망자 규모가 아니고 코로나19 상황으로 현지 취재를 할 외신 기자도 없다”며 국제사회의 더 많은 지원을 호소했다. WFP는 필리핀에 필요한 지원 규모를 2540만달러로 잡고 있다. 하지만 지난 14일 기준 지원금은 720만달러 수준이다.

바튼 소장은 지원이 부족하면 태풍 피해에 따른 후폭풍으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바튼 소장은 “태풍 피해 일부 지역에서는 아동 3명 중 1명이 영양실조에 걸린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그는 “위생 문제로 설사병과 콜레라도 퍼지고 있다”며 “코로나19 확산도 심각해 몸이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은 필리핀, WFP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어서 우리와 뜻을 함께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구민 기자 km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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