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갉아먹는 국민연금 개혁? 속시원한 공약 없는 대선판
[경향신문]
늦을수록 미래세대 부담
핵심은 결국 보험료 인상
대권 잡으려고 언급 회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작성한 “연금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최근 화제를 모았다. 국민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주장한 것인데, 정부는 즉각 “국민연금은 법으로 정한 사회보험으로서 수급권자가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경연의 지적처럼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면 2054~2057년쯤 재정이 고갈되고, 개혁이 늦어질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차기 정부에서는 국민연금의 장기적 재정 상황을 점검하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2023년)를 해야 하는 만큼, 대선 정국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선 후보들이 ‘연금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 있다. 연금개혁은 보험료 인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당장 선거에는 ‘표 떨어지는 공약’으로 꼽힌다. 다만 전문가들은 연금개혁의 시급성과 당위성을 따져볼 때 대선 후보들이 ‘차기 정부가 연금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구체적인 공약을 내기보다는 ‘연금개혁위원회’와 같은 논의기구를 만들겠다는 의사만 밝히는 수준이다. 이 후보는 지난 3일 KBS에 출연해 관련 질의에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서 연금개혁위원회와 같은 논의기구를 만들어 가능한 방안을 만들겠다까지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윤 후보도 지난달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초당적으로 큰 계획을 제시하겠다”면서 “의석수가 많은 민주당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건을 붙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공무원연금·군인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겠다고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안 후보는 지난 11일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공무원·군인연금 적자는 세금으로 메워지는데, 국민연금을 받을 확률이 줄어들고 공무원연금 적자는 세금으로 메워주면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일리있지만, 연금개혁의 핵심인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 방안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지난 6일 MBC에 출연해 “국민에게 솔직하게 재정 구조를 밝히고, 현 세대가 일정하게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을 요청할 생각”이라며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개혁해 노후는 공적연금이 책임질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현재도 의무적으로 5년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하게 돼 있어서, 개혁논의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은 연금개혁과 관련해 아무것도 공약하지 않은 것과 같다”며 “연금개혁의 주제가 다양하지만 핵심은 보험료를 인상할 것인가인데, 대선 후보들이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재정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야 책임있는 정치라고 본다”고 했다.
김향미·민서영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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