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전기노동자 사망 '늦장 대책', 무보도하거나 받아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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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날부터 한전 대책 발표 전날인 1월8일까지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국일보와 SBSJTBCTV조선채널AMBN은 이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경제는 고용노동부가 공공기관 중 산재 사망자가 많은 한전에 더 이상 노동자가 죽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한 일을 '자랑삼아 한 것'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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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9일 한국전력이 하청업체 노동자 김다운 씨가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사고가 난 지 66일만입니다. 한전은 김 씨 사망 원인 중 하나인 '전력선 접촉 작업(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에 직접 접촉하며 작업하는 공법)'을 퇴출하고 '작업자가 전주(전봇대)에 직접 오르는 작업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전은 산업재해 예방 의무와 책임이 없는 '발주자'라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한국전력·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한전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47명으로 지난해만 8명이 사망해 공공기관 중 사고사망자가 가장 많았습니다. 게다가 2016년~2020년 사고사망자 39명 중 1명을 제외하곤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였습니다. 한전의 경우 전기노동자 중대재해사고가 반복된 데다 '죽음의 외주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또다시 지적돼 김 씨 사망 원인은 물론 이번에 내놓은 특별대책도 언론의 관심이 필요했습니다. 김 씨 사망사고와 한전의 대책,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언론 무관심, 공공기관 산재 사망 1위 한전 만들었나
한전 대책 발표 보도와 구분하기 위해 김 씨 사망사고가 알려진 1월 3일부터 한전 발표 전날인 1월 8일까지 보도를 우선 살펴봤습니다.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지면,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 저녁종합뉴스 중 김다운 씨 사망 사고를 가장 먼저 전한 곳은 MBC입니다. 앞서 인터넷신문 세이프타임즈 보도가 있었으나 1월3일 MBC가 <한전 하청업체 직원 2만 2천 볼트에 감전… 결국 사망>, <면장갑 끼고 혼자 오른 전봇대… 무시된 '안전 수칙'>, <'13만 5천 원짜리' 공사라?… 한전하청업체 '떠넘기기'> 등을 연속보도하면서 크게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날부터 한전 대책 발표 전날인 1월8일까지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국일보와 SBSJTBCTV조선채널AMBN은 이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 8건을 보도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MBC 외에 경향신문·한겨레는 각각 3건, 한국경제 2건, 매일경제·KBS가 각각 1건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고 김다운 씨는 지난해 11월5일 경기도 여주시 한 전봇대에서 전력공급 작업을 하던 중 2만2000V 고압전류에 감전됐고, 같은 달 24일 치료 중 사망했습니다. 김 씨가 맡은 작업은 한국전력 안전규정에 따라 '2인 1조'로 진행돼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또 전력공급 작업에 필수적인 감전방지 차량(활선차) 배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김 씨가 무리하게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사고 이후 “한전은 작년 공공기관 중 산재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며 “중대재해법 시행 시 한전 사장이 처벌될 수 있다”고 강도 높은 경고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이례적으로 비판 입장을 내고, 공공기관 중 최다 사망자를 기록한 한전에서 죽음이 반복되었음에도 많은 언론이 '무보도'한 것입니다.
한국경제, 한전 경고한 노동부 되레 비판
한편,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김 씨 사망사고보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기자간담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안 장관은 1월6일 고용노동부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양한 노동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김 씨 사망사고 관련해서도 유감을 표했습니다. 특히 한전에 대해 “사장과 통화해 유감을 표명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한전 사장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경제는 <고용부장관 “중대재해법, 보완 조치 없을 것”>(1월7일 곽용희 기자)에서 고용노동부 기자간담회 소식을 전한 뒤 다음날 <사설-“중대재해법 보완없다” 현장 아우성 귀막은 고용부 장관>(1월8일)에서 “한국전력 사장에게 주의를 당부시켰다는 안 장관의 얘기도 자랑삼을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 걱정이 크다'며 줄곧 경영계 입장을 전해온 한국경제가 한전 하청업체 노동자자 사망한 데 대한 고용노동부 입장에도 딴지를 건 것입니다.
한국경제는 고용노동부가 공공기관 중 산재 사망자가 많은 한전에 더 이상 노동자가 죽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한 일을 '자랑삼아 한 것'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노동자 사망에 따른 기업의 책임은 모르쇠하고, 발생조차 하지 않은 경영상 불이익만 강조한 셈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해당 사설에서 한국경제는 “안전보건의무를 다했는지, 구속 기소될지, 법원 판단은 어떨지 관심 쏟다보면 기업경영에 전념할 수 없을 것”이라며 노동자 사망을 막기 위한 경영자의 당연한 의무를 기업경영의 방해물 정도로 인식했습니다.
매일경제도 이번 사망사고를 다룬 유일한 보도인 <고용부 장관 “중대재해법 땐 한전사장 처벌될 수도”>(1월7일 김희래 기자)에서 김 씨 사망사실이나 원인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전 사장의 처벌 가능성에 관한 안 장관 발언을 제목에 강조했습니다. 노동자 사망보다 산업재해로 인한 경영진 처벌 가능성을 더 걱정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한전 늦장 대책, 일부 언론 뒤늦은 관심조차 없다
한국전력은 1월9일 “전기공사 현장의 안전환경 조성을 위한 실효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9페이지짜리 특별대책안이 담긴 보도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정승일 사장 등 경영진은 기자회견을 열어 전기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도 했습니다. 한전의 첫 사과와 대대적으로 내놓은 대책에 언론은 실효성을 따지고, 또 다른 죽음을 막을 만큼 충분하고도 근본적 대책인지 살펴야 했습니다. 하지만 보도조차 않거나 한전 대책을 '받아쓰기'만 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한전 기자회견 당일과 다음날 지상파3사종편4사 저녁종합뉴스와 기자회견 이튿날부터 다음날 6개 종합일간지2개 경제일간지를 살펴본 결과, 조선일보중앙일보와 SBSJTBCTV조선채널A는 한전이 대책을 내놨다는 소식조차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보도했더라도 한전 대책을 '받아쓰기'할 뿐 실효성이나 구체성을 따지지 않아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보기 어려운 곳도 있습니다. 동아일보 <한전, 감전위험 큰 전력선 접촉 작업 금지한다>(1월10일 구특교 기자), 매일경제 <사망사고 고개숙인 한전…“전신주 작업 전면 금지”>(1월10일 송광섭 기자)는 한전 대책을 전달할 뿐 실현 가능성이나 실효성 등을 검증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한겨레MBC '책임 회피', 경향 '늑장재탕' 지적
반면 다른 언론은 한전 대책이 믿을 만한지, 현실성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폈습니다. 한겨레 <한전 사장 직접 나와 사과했지만… 처벌 피하려 “도급인 아닌 발주자”>(1월10일 박태우 김영배 기자)는 한전이 스스로를 '발주자'라고 한 주장에 대해 산재 예방 의무가 있는 '도급인' 지위를 회피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짚었는데요. 고용노동부가 한전을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란 사실과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는 '건설공사 발주자'를 도급인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김 씨 업무는 건설공사로 볼 수 없다는 민주노총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MBC도 <한전, 공식 사과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발주처”>(1월10일 김건휘 기자) 등을 통해 “한전은 작업을 승인하고 보고받고 원청업체처럼 행세해 왔다”며 한전의 '발주자' 지위 주장이 사실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한전 대책의 신뢰도와 실현가능성을 살핀 보도도 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프리즘-배전공과 로프공의 장갑>(1월10일 하어영 기자)은 “한전은 이미 2016년 '배전 활선작업 공법'이라는 자료를 내놓고 '안전 최우선'을 밝힌 바” 있지만 지키지 않았다고 했고, 경향신문 <한전, 안전사고 근절 대책 '늑장·재탕'>(1월10일 박상영 기자)도 2019년 국정감사에서 한전이 '2021년까지 간접활선 공법 적용률을 10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이행하지 않았다며 이번 대책을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를 짚었습니다. 한국일보 <고개 숙인 한전… '협력사 근로자 감전사' 두 달 만에 책임 인정>(1월10일 김형준 기자)는 지면 기사와 같은 제목의 온라인 기사에서 “감전 우려를 없애기 위해 정전 이후 작업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발표에 대해 “전력이 끊기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는 산업체 입장에서는 민감한 문제”라며 “현실성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사회는 노동자가 사망해도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는' 식으로 대처해왔습니다. 경영진이 카메라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지만, 허술한 대책 마련으로 똑같은 유형의 죽음이 매번 반복되는 것을 방조했습니다. 한전이 내놓은 대책을 '받아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철저히 따져보고, 검증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트위터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은 그날 죽은 노동자에 관한 기록을 매일 업로드하는 계정입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10여 일 지났지만, 지금까지 2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정 운영자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다같이) 살기 위해 노동자의 죽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많이 알게 되면 바꿀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일하다 죽지 않게”라는 메시지는 모든 노동자와 가족들의 오랜 외침입니다. 한국이 2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데는 이런 외침을 '경영방해' 정도로 인식하거나 외면해온 언론 탓도 있습니다. 산재사망률 1위 한국에서 모든 노동자의 죽음을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죽음이 기록되지 않으면 또다시 반복될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인식전환이 필요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2년 1월3~10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2022년 1월4~1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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