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부플랫폼 '체리' 최대 수혜자는 바로 접니다"
[짬][짬] 정보기술전문업체 ‘이포넷’ 이수정 대표
“뭐든 하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스스로 만족하는 기질이 강해요. 7080 꼰대 화법으로 ‘폼생폼사 주의’라고나 할까요. 27년 전 혼자서 아이티(IT) 회사를 창업할 때도 그랬고, 10년 전 기부 운동에 나설 때도 그랬어요. 그러다보니 남들이 쉽게 하지 않은 일을 겁없이 잘 벌이는 편이죠.”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기반 기부플랫폼 ‘체리’(cherry.charity)를 개발해 운영 중인 이수정(58·)씨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의 본업은 블록체인 핀테크 비지니스와 다국어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간 상거래(B2B) 업체인 이포넷(E4net)의 대표이사로 정보기술업계에서 ‘여성 1호’를 달려온 전문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11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5년째 수익사업과는 무관한 ‘체리’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최근 한 경제 매체에서 선정한 ‘2021 기업대상’에서 체리로 사회공헌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웃돕기 성금 횡령 사건 등 계기
“내 기부금 제대로 쓰이는지 의문”
2018년 세계 첫 블록체인 ‘앱’ 개발
“투명성·편의성·지속성 보장 강점”
후원자 10위 안에 ‘엠제트세대’ 8명
“수익 없지만 ‘인생 프로젝트’ 얻어”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뭔가 비밀스럽고 접근이 어렵다고들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특성을 기부 프로그램에 적용하니까 장점이 됐어요. 바로 투명성·편의성·지속성이죠.”
그는 2018년 체리 프로그램 개발의 첫번째 계기로 ‘투명성’을 강조했다. “2017년 이웃돕기 성금, 어금니 아빠, 새희망씨앗 등 횡령·사기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기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졌어요. 내가 낸 기부금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블록체인은 전세계 컴퓨터 시스템에 정보가 분산 저장되는 거잖아요? 단순하게 말하면, 100만대 중 51만대 정보가 일치해야 결제가 가능해 그만큼 해킹도 수정도 어려워요. 또 컴퓨터에 모든 기록이 남아 있어 ‘마이크로 트레킹’ 기술로, 내 기부금이 언제 어디에 전달되어 쓰이는지 한눈에 확인이 가능해요. 물론 기호로만 표시되는 ‘가상계좌’니까 익명성도 보장되고요.”
두번째로 ‘편의성’에 주목한 이유도 있었다. “1995년 회사 설립 때 두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기술로 사회를 섬기는 기업’, ‘수익 10% 사회환원’이죠. 2013년부터는 정보기술업체들이 연합해 꾸린 엔지오인 국제정보기술민간협력기구(WTIT)를 통해 기부운동에 참여하게 됐죠. 주로 중고피시를 모아서 제3세계에 보내는 캠페인을 했는데, 피시를 회수하는 비용과 국제 화물 운송비가 만만치 않았어요. 바자나 토크쇼 같은 자선 행사를 따로 열어 모금을 하거나 강연료 같은 개인적인 수익도 쏟아부었죠. 그런데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하고, 시간을 따로 내서 일일이 찾아다니는 아날로그 방식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간편한 앱 방식을 착안했죠.”
이포넷에서 모두 10억원을 들여 개발한 ‘기부플랫폼 앱’은 마침 2019년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주최한 ‘블록체인 민간 주도 프로젝트 공모’에서 쟁쟁한 대기업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 15억원을 지원받았다. 이 앱은 기술의 독보성을 인정받아 국제표준화기구(ISO) 사용 사례로도 등록됐다.
“체리는 영어 ‘채리티’(자선)의 약자로 ‘결실’을 상징하는 과일로 앱의 이름을 짓고, ‘나눔’의 뜻으로 열매 두 알을 로고로 삼았죠. 앱을 다운받아 깔고 사용자 인증을 받으면 다양한 기부 단체와 개인들에게 지원을 직접 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토큰을 충전해 놓고 필요할 때 마땅한 곳을 선택해 기부를 지정할 수도 있고요.”
이 대표는 이제 ‘지속성’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 “체리는 이름처럼 하나의 유기체로 성장하고 있어요. 상근 직원 20명인 이포넷 구성원들도 재능기부로 지원하고 있죠. 블록체인 시스템과 아마존(AWS) 클라우드 사용료만 연간 1억이 들어요. 개인적으로는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꾸준히 해야할 ‘인생 프로젝트’가 됐고요.”
1964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82년 서강대에 입학해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소방관이던 아버지가 중2 때 남대문시장 화재 사건으로 순직한 이후, 어머니가 홀로 2남1녀를 키우셨죠. 보따리 장사며 파출부며 닥치는대로 하다 보험설계사로 비교적 성공하셨는데, 다양한 고객들로부터 귀동냥을 통해 시류를 읽었나봐요. ‘앞으론 주부도 컴퓨터를 알아야 할 시대가 온다’며 직접 전산학과 원서를 받아왔거든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그였으나, 1986년 졸업했을 때 여성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받아주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지도교수가 ‘남학생 5명’에 ‘여학생 1명’을 끼워주는 조건으로 추천해준 덕분에 그는 방산업체 대영전자에 첫 여성 연구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990년에는 동진전보통신으로 옮겨 국내 최초 전자문서교환(EDI)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사이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던 그는 1995년 “아픈 큰아이를 업고 전철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회사일도 육아도 소홀해지는 것 같아” 사직을 하고 연립주택에서 컴퓨터 하나로 용역 프로젝트를 맡아 이포넷을 창업했다. 한동안 승승장구하던 그는 역시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맞아 부도 어음 탓에 큰고통을 겪었지만 동고동락한 창업 직원들과 함께 고비를 넘기고 연매출 200억원대의 강소기업으로 일궈냈다.
“체리를 통해서 누구보다 수혜를 받은 사람은 제 자신이에요. 커피 한 잔이나 걷기 만으로도 ‘기부 토큰’이 쌓이니,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추구하는 엠제트(MZ) 세대가 적극 호응해주거든요.”
‘체리’는 지난 2년간 3만명 후원자가 4만5천회 기부로 28억7800만원을 200여개 단체에 지원했다. 또한 전체 후원자 중 엠제트 세대 비율이 34%로 가장 높다. 2021년 한해 동안 후원 금액과 횟수로 상위 10명을 뽑은 ‘체리 명예의 전당’에는 엠제트 세대가 무려 8명이나 올랐다. 이는 2020년 5명에서 더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대면 후원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도 앱을 통해 손쉽게 기부를 할 수 있으니 다행스럽다는 후원자들의 댓글에 힘이 나네요.”
그는 비씨카드와 제휴해 개발한 기부 전용 선불카드를 통해 올해말까지 후원 총액 100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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