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김건희 녹취보도 갑론을박 논쟁 뜨거워

김도연 기자 2022. 1. 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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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적 수요에 부응한 보도" 혹평부터
시청자 판단에 맡긴 선택에 "고심 느껴져"
기자-취재원 관계 지적도… 기만취재 어디까지?
MBC "보도가치 있어" 서울의소리 "보복 감수할 것"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지난 주말 시청자 이목은 MBC 시사 프로그램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 집중됐다. 16일 오후 본방송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와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의 '7시간 통화' 내용 일부가 공개돼서다. 통화 녹취에는 김씨와 이 기자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통화한 내용이 담겼다. MBC 보도 이후 서울의소리가 순차적으로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취재 윤리 차원에서 이번 MBC 보도에 여러 평가가 나온다. 보도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MBC 방송은 법원이 지난 14일 방송을 막아달라는 김씨의 가처분 신청을 일부만 인용하면서 전파를 타게 됐다.

▲ 지난 16일 밤 MBC 스트레이트가 방송한 김건희씨와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 녹취록. 사진=MBC 뉴스 갈무리

재판부는 김씨가 연루된 수사 사건 관련 발언에 대해 방송금지를 결정하면서도 “김씨는 대선후보 윤석열의 배우자로서 언론을 통해 국민 관심을 받고 있는 공적 인물에 해당하고, 김씨의 사회 이슈에 대한 견해 내지 정치적 견해는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MBC 보도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법이 아닌 취재 윤리 차원의 고민거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좌영길 헤럴드경제 법조팀장은 17일 통화에서 “기자들이 사석에서 듣는 이야기를 모두 기사로 쓰진 않는다”며 “기자의 정보 수집과 보도 영역 사이에는 큰 벽이 있는 것인데, 지상파 스스로 그 경계를 허문 것이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BC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이 아닌, 제공받은 통화 녹취를 지상파 전파에 그대로 태웠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이 표방하는 탐사 보도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좌 팀장은 “영국 가디언지와 가판대의 더선(The sun) 기사의 퀄리티 차이는 분명하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선일보 기사나 가판대 신문 기사나 큰 차이가 없다. MBC가 메이저 언론이라면 더 신중했어야 했다. 법원이 방송을 금지하지 않았대도, 법원 결정으로 없던 보도 가치가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좌 팀장은 헤럴드경제 칼럼에서 “그저 특정인의 통화 내역에 대한 호기심에서 유발된, 일종의 관음증적 수요에 부응한 것 아닌가. '플러스 알파'로 선거에 영향도 주고 싶었을 것”이라며 “1인 미디어와 기성언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취재 내용을 거르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느냐다. 지상파 방송사가 '게이트 키핑'을 포기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 2021년 1월17일자 좌영길 헤럴드경제 기자 칼럼.

반면, MBC 보도에 고심이 묻어난다는 평가도 있다. 뉴스통신사에서 30년 근무한 한 기자는 “MBC가 어떤 해석을 가미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한 건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스트레이트가 일부에선 정파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그런 상황에서 MBC 제작진이 첫 보도부터 특정한 관점을 드러냈다면 시청자 판단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기자는 “김건희씨와 기자 통화를 '사적 통화'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김씨는 유력 대선후보 부인이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청와대 제2부속실이 김씨를 공식 보좌하게 되는데, 김씨에 대한 검증도 반드시 필요하다. 제공받은 녹취 파일이 편집되지 않았는지, 제보 목적이 공익적인지 검증한 뒤 통화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걸 무가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공직자와 그 가족에 대한 검증 보도가 가혹한 것은 한국 언론의 전통”이라며 “언론 스스로 윤리 문제를 이유로 검증 보도의 중요성을 축소하는 건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BC 보도는 공직자 가족에 대한 검증 보도로서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녹취 보도는 할 수 있지만, MBC만의 추가 취재가 필요했다는 지적도 있다. 인터넷매체 미디어스 편집장 출신인 시사평론가 김민하씨는 “MBC 보도만 봐서는 김씨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만약 윤석열 캠프 운영 문제를 지적한다고 했을 때 캠프 인사 난맥상을 지적한 뒤 일각에서 제기하는 배우자 개입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번 녹취 음성을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씨는 “시청자들은 그런 형식을 갖출 때 '그래서 김씨 발언이 문제구나'라고 받아들일 텐데, MBC는 우리가 녹취를 공개했으니 시청자들이 판단해보라는 취지로 보도했다”라며 “결국 '녹취록 공개'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되고 수단으로만 활용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지난해 12월26일 김건희씨가 대국민 사과에 나선 모습을 한 시민이 TV로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도 “많이 아쉬운 보도였다. MBC가 통화 녹취를 기반으로 김씨와 윤석열 캠프를 제대로 취재한 뒤 김씨 발언의 맥락을 충분히 전하면서 보도했어야 했다”며 “방송에 녹취를 그대로 트는 방식이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서울의소리가 유튜브에서 녹취를 공개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고 반문한 뒤 “따옴표 저널리즘과 차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의소리 취재 방식에 관해 '기만 취재'에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가 김씨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고 접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두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기자-취재원' 관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일반적 취재 행위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SBS 보도본부장을 지낸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기자가 김씨에게 정보를 물어다주고 강의까지 나서는 등 통상의 기자-취재원 관계에서 벗어난 모습”이라며 “그런 두 사람 사이 대화를 사적 대화가 아닌 공적 대화로 규정하고 방송에서 그대로 트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기자는 내가 취재하고 있음을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적 관계로 상대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이것저것 물은 후 그 내용을 폭로하는 것이 저널리즘 이름으로 용인된다면, 누가 기자를 만나려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기만·함정 취재는 공익 목적에서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 ⓒ연합뉴스

반면 이명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취재원(김건희)이 누나, 동생으로 호칭하길 원해서 자연스럽게 받아준 것”이라면서 “다만 이후 이어진 통화에서 '사모님'으로 불렀다가 김건희씨가 '무슨 사모님이냐, 나 오십 밖에 안 먹었다, 누나로 해'라고 해 결국 누님으로 말하게 된 것이다. 호칭만 누나 동생일 뿐이지 50여 차례 이상 통화하며 질문과 답변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기자와 취재원 관계는 무너지지 않았다는 취지다.

서울의소리는 18일 홈페이지에 “국민의힘 주장대로 이 기자의 덫에 김건희씨가 빠진 것이 아니라 김건희씨의 덫에 이 기자가 자발적으로 빠져준 것”이라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서울의소리 정보가 필요했던 김건희씨와 윤석열 일가의 그들만의 세상을 알고자 했던 이 기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씨의 도를 넘어선 위험천만한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두려움마저 느낀 이 기자는 김씨가 던져주는 달콤한 유혹과 윤석열 일가의 비상식적 가치관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기자의 사명감을 두고, 심한 심리적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며 “결국 조선의열단 단원으로서, 기자로서, 사명감을 저버리지 않고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예측할 수조차 없는 보복 위험을 감수하고 녹취록 공개를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MBC 보도 편향을 문제 삼는 여론도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18일자 중부일보 칼럼에서 “MBC가 아니어도 녹취록 방송은 어차피 다른 매체들에 의해 이뤄질 텐데 왜 굳이 공영방송이 '두 개로 쪼개진' 공론장의 한복판에 사실상 어느 한 쪽을 편드는 역할로 뛰어들어야 한단 말인가”라며 “방송 민주화는 진보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보수는 반드시 이겨야 하거나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 장인수 MBC 스트레이트 기자는 1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건희씨가 육성으로 자신의 의혹에 대해 해명한 건 처음이기 때문에 상당히 보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MBC 라디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장인수 MBC 스트레이트 기자는 1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건희씨가 육성으로 자신의 의혹에 대해 해명한 건 처음이기 때문에 상당히 보도 가치가 있다”며 “김씨가 이 기자와 나누는 대화 중간중간 우리사회를 바라보는 상당히 왜곡된 시선이 있다. 미투 관련 발언이 그렇다”고 주장했다. 녹취 공개에 보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통화 녹취에는 김씨가 성폭행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복역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적극 옹호하는 발언이 나오는데, 안 전 지사 성폭행 피해자가 김씨를 직접 거론하며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피해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김씨의 부적절 발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성범죄 전문 이은의 변호사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MBC 보도를 겨냥해 “후보 배우자가 얼마나 젠더의식이 떨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각 진영의 프레임만 강화시켰을 뿐”이라며 “결국 (성폭력) 피해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가십만 늘려주고 피해자에게는 상처와 부담을 주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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