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욤 뮈소 "시시한 걸 멀리 하라, 쉽게 전염되는 질병이니"
신간 '센강의 이름 모를 여인'으로 돌아와
교통사고 겪고 난 뒤 판타지 장르 빠져
'개미' 쓴 베르베르와 절친, 만나면 한국 얘기
"새해, 책은 더 많이 읽고 화면은 덜 보길!"
18년째 정기 적금 붓듯 매년 한 권씩 출간한다. 게다가 내놓는 족족 베스트셀러. 2004년 ‘그 후에’를 시작으로 모든 소설이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냈다 하면 서점 진열대 위칸을 장식하는 인기 작가. 2005년 출간한 ‘구해줘’는 국내에서 200주 넘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었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아이유가 팬을 자처하고, 2016년 그의 작품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가 한국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프랑스 소설가 기욤 뮈소(48)가 신간 ‘센강의 이름 모를 여인’(밝은세상)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전매특허인 스릴러. 좌천된 경찰이 센강에서 구조됐다가 사라진 의문의 여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19세기 센강에 얽힌 이야기를 그리스 디오니소스 신화와 결합했다. 거짓과 반전이 할리우드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맞물려 돌아가면서 이야기의 점성(粘性)을 높인다.
지금까지 전세계 45국의 독자를 흔들어놓는 이 천하의 이야기꾼을 이메일로 만났다. 좀처럼 인터뷰를 안 한다는 그가 파리에서 보낸 답은 간단명료했다. 현학적 단어를 경멸하는 듯한 그의 문장처럼.
-프랑스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고?
“‘센강의 이름 모를 여인’은 19세기 말 센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젊은 여인을 암시한다. 당시 여인의 사체가 파리의 시체 공시소로 옮겨졌는데, 그곳 직원이 지극히 평온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매료돼 데스마스크(죽은 자의 안면상)를 떴다고 한다. 현재 관점으로 쓴 내 소설에선 하천경찰대가 센강에 빠진 여인을 구조한다. 목숨은 붙어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억을 상실한 여인이 파리 경찰청 간호실로 보내지고, 다시 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 도주한다. DNA 분석 결과 여인의 신원은 독일 출신 피아니스트. 그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1년 전 항공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여인이었으니.”
-스릴러와 판타지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나.
“젊은 날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삶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사고 이후 내 안에서 판타지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판타지란 심각한 문제를 유희적인 방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문학 장르라 생각했기에.”
-경찰, 작가, 의사가 주로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번 작품에도 경찰(록산)과 작가(라파엘)가 극을 이끈다.
“세 직업 모두 잘못된 걸 ‘고친다’는 목표를 지녔다. 의사는 몸, 작가는 영혼, 경찰은 사회의 느슨해진 기강을 고쳐주는 사람 아닌가.”
-이야기의 중심축은 거짓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극장 ‘글로브’의 모토, ‘세상은 배우 놀이를 한다(Totus Mundus Agit Histrionem)’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세상을 향한 메시지인가.
“연극을 좋아해 공연장에 자주 간다. 카멜레온 같이 재능을 발휘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 끊임없이 변신할 수 있는 연기력은 스파이나 공작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요원들에게도 요구되는 핵심 능력 같기도 하다. 소설가의 창작 활동은 배우가 매번 다른 인물로 변신해 연기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소설을 쓰는 동안 등장인물의 정체성을 체화하고, 그들 입장이 돼 살아가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문학 교수였던 존 가드너가 소설가들에게 한 명언을 새긴다. ‘잊어서는 안 된다, 너는 절대 너의 등장인물이 아니고, 너의 등장인물들이 너라는 사실을’.”
-매년 한 권씩, 줄기차게 쓴다. 소설에서 독일작가 토마스 만의 말을 빌려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썼다. 당신은 어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렇게 말했다. ‘소설 한 편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열 권, 열다섯 권, 스무 권까지 계속 쓰긴 어렵다. 자기 희생과 열정, 규율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그의 관점에 동의한다. 스티븐 킹은 글 쓰기 위해선 ‘문 닫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혼자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세상을 벗어나 상상의 세계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면서. 글을 쓸 때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작업 방식을 지킨다. 그래야만 글이 잘 써진다는 느낌이 든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준 다음 저녁까지 작업실에서 혼자 일한다.” 그는 유명 예술가의 명언을 인용한 뒤 답을 이어갔다. 좋은 글귀를 수시로 메모해 뒀다가 하나씩 빼내 이야기를 쌓는 습관이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다.
거실엔 아내가 선물해 늘 가까이 둔다는 까만 빈티지 타자기가 있다. 헤밍웨이가 썼다는 타자기와 같은 ‘코로나 1929′. 우연의 일치지만 팬데믹을 일으킨 주범과 이름이 같다.
-코로나가 모든 사람의 일상을 흔들어 놨다. 작가로서의 삶엔 어떤 변화가 있나.
“작업 루틴이 완전히 바뀌었다. 네 살, 일곱 살 두 아이에게 집이 학교가 되다 보니 나 역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글쓰기에 전념하시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다.”
-언젠가 글쓰기 다음으로 관심 있는 것이 아이들 교육이라고 했던데.
“아이들과 가족은 행복과 안정감의 원천이다. 가족은 까다로운 숙제인 동시에 내가 살아가는 중요한 의미다.”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로 늘 그가 꼽는 이는 도서관 사서였던 어머니다. 하지만 책의 즐거움보다 지루함부터 느꼈단다. 고전보다 만화책에 깊이 빠졌다. 그를 ‘독서 마라톤’에 빠지게 한 책은 열 살 때 만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었다. 이후 학창 시절 단편소설 대회에 참가해 재능을 확인했다.
주류 문단과는 동떨어진 삶이었다. 파리가 아닌 프랑스 남동부 작은 도시 앙티브 출신.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고등학교 경제 교사를 하면서 스물세 살 때부터 무작정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지만, 소도시의 이름 없는 교사의 책을 추천하는 이는 없었다. 데뷔작은 2001년 출간한 소설 ‘스키다마링크’. 3년 뒤 내놓은 두 번째 소설 ‘그 후에’를 시작으로 성공가도에 올랐다.
-소설가로서 명성을 쌓고도 한동안 교사를 병행했는데 작가와 교사의 공통점이 있는가.
“글쓰기와 교육은 지식을 나눠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며, 이해하려 시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교사로 일한 시절을 좋아했다. 언젠가 글쓰기 마스터클래스 등으로 다시 가르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생 신조로 삼는 경구가 있다면.
“시시한 것을 가까이하지 말라. 그런 것은 쉽게 전염되는 질병이므로.”
-기욤 뮈소 하면 페이지터너(page-turner·재미있어 책장을 넘기게 하는 책)를 떠올리는 독자가 많다. 글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게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면.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소설’을 쓰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힘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싶다. 나 자신에게 먼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재미있고 내 맘에 들어야 다른 사람도 재미있어 할 테니까.”
재미 위주의 상업 소설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르는 것도 사실. 그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 책 읽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기쁜 일은 없다. 대중적 작가로 불리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파리를 배경으로 했지만 지난 작품들엔 뉴욕이 자주 등장한다. 특별한 이유라도.
“열아홉 살 때 인생 경험 삼아 뉴욕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몇 달 동안 지낸 적이 있다. 소설에서 공간 배경은 매우 중요하다. 배경이 되는 장소를 제대로 묘사해야만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일 수 있으니까. 뉴욕은 많은 사람이 사는 대도시이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잔혹한 비극, 신비하고 매혹적인 사건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곳, 그야말로 모든 일이 가능해 보이는 곳이다.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소설가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도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파리가 내 소설에서 점점 더 중요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파리 또한 매력적인 곳이기에.”
-독자와의 추격전에서 매번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작품 패턴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염두에 두는 것이 있나.
“언제나 첫 작품을 쓸 때의 마음가짐으로!”
-전작 ‘구해줘‘에선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나왔고, ‘종이 여자’에선 이화여대생 박이슬이 등장했다. 이번 책에도 ‘한국 제주도 산 감귤 맛이 가미된 홍차’라는 식으로 한국 관련 디테일을 넣었던데.
“한국 독자들의 변함없는 애정에 감사를 표하는 일종의 윙크다. 오래 전부터 친한 사이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만나 한국 얘기를 종종 한다. 우리 둘 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프랑스 소설가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을 배경으로 작품의 몇 장 정도를 쓰고 싶은데 팬데믹 때문에 여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안타깝다.”
-한류 팬으로 알려졌는데.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엄청 좋아한다.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열렬한 팬이다. 최근 ‘오징어 게임’의 성공,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이 이룬 위업을 접하고는 매우 기뻤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특히 오락적인 요소와 사회 문제를 하나로 버무리는 역량이 뛰어나다. 한국에서 영화로 제작된 내 작품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김윤석·변요한 주연)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신년 메시지가 있다면?
“책은 더 많이 읽고, 화면은 덜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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