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태종 이방원', 아직은 아쉬운 이유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이 11%에 달하는 시청률로 순항하고 있다. 요즘 시청률 한 자릿수 드라마도 많기 때문에 11% 정도면 일단 성공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KBS 주말 대하사극이기 때문에 기대치에 아직 못 미친다는 느낌이다. 과거 KBS 대하사극은 국민드라마 수준의 인기를 누렸고, 2014년에 방영된 '정도전'은 시청률이 19%였다. 특히 '정도전'은 시청률 수치 이상의 화제성으로 큰 파급력을 발휘했고 비평적 찬사도 많이 받았었다.
'태종 이방원'은 5년 만에 부활한 KBS 대하사극으로 큰 관심을 받았지만 그다지 화제를 모으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KBS가 여말선초 이야기를 선택한 것엔 대선국면에 대한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1997년 대선 땐 똑같이 여말선초 이야기를 다룬 '용의 눈물'이 큰 화제였다. '정도전'도 정치적 토론의 대상이 됐었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과 관련해서는 그런 토론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비록 시청률은 성공적이지만 기대치에는 못 미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방송대상까지 받은 '정도전'에선 고려말 권신 이인임과 정도전 간의 정치적 관점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났었다. 단순한 권력암투가 아닌 국가운영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를 그렸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 봐도 큰 울림이 있었다. 화제성이 컸던 이유다. 퓨전 사극으로 만들어진 '뿌리깊은 나무'도 정도전의 후예인 정기준과 이방원의 아들인 세종의 국가관 토론으로 큰 주목을 받았었다. '선덕여왕'에선 선덕여왕과 미실의 가치관 격돌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엔 그런 국가관이나 정치적 대의명분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도전' 때 역성혁명 세력의 대척점이 이인임이었다면 '태종 이방원' 초반엔 정몽주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정몽주와 혁명세력이 어떤 국가관으로 대립했는지가 표현되지 않고 그저 유교적 충성 윤리만 나왔기 때문에 작품이 납작해졌다. 이래서 대선국면인데도 불구하고 '태종 이방원'의 대권 쟁탈전이 화제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대의명분 표현이 약하면 권력암투라도 박진감 있게 표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극 초반의 빠른 사건 진행으로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이 요점만 나열되는 느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극적 몰입도가 약했다. 목숨을 건 권력투쟁의 느낌이 좀 더 살아나야 극의 박진감도 강화될 것이다.
주요 인물들의 존재감도 너무 약하다. '정도전' 때는 정도전, 이인임, 이성계 등 주요 인물들의 존재감이 모두 강렬했고, 그래서 캐릭터들의 격돌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에선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 등 주요 인물들의 존재감이 모두 약했다. 특히 결정적으로 주연인 이방원의 존재감이 약해서 극의 동력이 형성되지 못했다. 부인들의 입김이 너무 강하게 그려진 것도 주요 인물들의 존재감을 약화시켰다.
이런 이유들로 이 작품이 아직 탄력을 받지 못하는 것인데, 앞으로 기회는 남아있다. 이방원이 전면에 나서는 왕자의 난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방원과 정도전의 격돌에 이은 1, 2차 왕자의 난에서 작품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태종이 만들어나가는 조선의 모습, 그리고 외척 엄단의 결단 등을 통해서 국가관과 리더십을 조명할 수 있다.이 당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웬만한 소설보다 흥미진진할 정도다. 거기에 조선이라는 국체가 건설되는 시기이고, 정도전의 신권에 맞서 태종이 왕권을 세우는 시기이기 때문에 충분히 많은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여말선초 이야기가 지금까지 여러 사극에서 다뤄졌던 것인데, 그 시대를 이방원 중심으로 조명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기존에 여러 번 그려졌던 시기이기 때문에 재탕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인식을 불식시키려면 일단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혁명기에 각 주체들이 어떤 가치관으로 대립했는지를 깊이 있게 그려서 작품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 속에서 이방원의 신념을 생생하게 그려내면 확실한 차별성이 생길 것이다. 각 주체들의 리더십 차이를 그리는 것도 현 시점에서 화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핵심적인 캐릭터들의 존재감을 키우고 그들의 권력투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극의 동력이 훨씬 강해질 것이다.
퓨전사극만이 득세하는 시대에 5년 만에 부활한 대하정통사극은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앞으로 본격적인 전개로 큰 호응을 얻어 정통사극의 맥이 이어질 발판이 마련되면 좋겠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노래방서 지인 `성폭행 혐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 법정구속…징역 3년 6월
- "강아지가 먹었다면 끔찍"…공원에 낚싯바늘 끼운 소시지 발견
- 호랑이 응징 떠들썩한 `엽기사건`…"꼼꼼한 가죽벗기기`, 전문가 솜씨다"
- 쏘나타와 QM6 충돌하더니 상점 출입문에 `쾅`…다행히 손님은 없어
- "왜 안만나줘?"…집에 침입해 물건 부수고 행패부린 70대 징역형
- 韓 "여야의정 제안 뒤집고 가상자산 뜬금 과세… 민주당 관성적 반대냐"
- [트럼프 2기 시동] 트럼프, 김정은과 협상할까… "트럼프 일방적 양보 안 할 것"
- 내년 세계성장률 3.2→3.0%… `트럼피즘` 美 0.4%p 상승
- `범현대 3세` 정기선 수석부회장, HD현대 방향성 주도한다
- "AI전환과 글로벌경쟁 가속… 힘 합쳐 도약 이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