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김건희, 대선의 '블랙스완' 될까

이규화 2022. 1. 18. 18: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규화 논설실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세평이 녹취록 공개 전과 후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방송 전 국민의힘은 의원들과 선대위 사람들이 MBC로 몰려가 방송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방송금지가처분신청도 냈다. 공개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MBC는 완강했고 여권은 국힘이 언론을 겁박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16일 막상 방송이 나간 후 분위기는 일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다.

김 씨는 그저 가식 없고 평범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중년여성이란 이미지로 다가왔다. 김 씨가 가감없이 처음으로 미디어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과장·허위 이력 기재 논란으로 기자회견을 한 적 있지만, 그건 연출된 페르소나였다. 녹취록에선 어떤 대상에 잘 보이려고도 않았고, 무슨 의도도 없었다. 본심이 그대로 드러났다. 보통 사람이 이렇게 노출될 경우 적잖이 '사고'를 치는데, 공개된 녹취록에는 그런 게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미투' 관련 발언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법원 판결까지 난 성추행을 희화화했다. 더구나 피해자가 있는 상황이다. 개인간 매우 제한된 공간(전화통화)에서 한 말이지만, 발언이 공개된 만큼 사과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조국사태'의 발전 과정,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일부 보수가 취한 행태, 문재인 정부의 실책에 대한 발언 등은 '내 생각을 대신 말해줬다'는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별히 법적 문제가 될 것 같은 부분도 없었다. 문제는커녕 인터넷 상에서는 오히려 '사이다' 발언으로 속이 후련하다는 의견과 댓글이 많다. '한방'을 기대했던 여권은 실망하는 기색이다. 기껏 꼬집는 게 미투와 '기자 매수' 발언이다. 기자에게 함께 일하면 1억을 주겠다는 말이 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는 두 사람간 이미 '누나-동생' 관계가 형성됐고 상대를 취재 기자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를 취재로 본다면 술자리에서 기자가 취재원과 나누는 대화가 모두 기사가 돼야 하고, 기자의 언행을 모두 공적 행위로 봐야 한다.

김 씨의 녹취록 공개는 악재가 외려 호재로 둔갑한 경우다. 네이버에 개설된 김 씨의 팬 카페는 회원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개설된 이 카페는 지난 15일까지 회원이 200명 수준이었으나 18일 오전 1만명을 넘겼다는 것이다. 윤 후보의 지지율에도 이상 징후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악재를 보통 '블랙 스완'이라고 한다. 월가 투자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저서 '검은 백조'(The Black Swan)에서 한 말인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언하면서 회자됐다. 김건희 씨의 녹취록 공개가 전화위복이 되어가는 과정이 상식적으로 기대했던 영역 밖에서 의외의 긍정값을 나타내는 블랙스완 현상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김 씨의 녹취록 공개는 대선후보 부인 또는 대통령 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꼰대의 레디메이드에 '극혐'하는 2030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뜻하지 않는 환호가 터졌다. 김건희 씨가 윤 후보의 리스크가 아니라 이제 '히든카드'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녹취록 공개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밝혔다. 그는 "(김 씨를)신데렐라처럼 느꼈던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다. '나랑 똑같네, 평상시 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여성이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정치평론가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본보 인터뷰에서 "후보의 부인이 맡아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사회의 소외된 분야를 찾아 보살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MBC는 녹취록 2탄을 예고했다. 첫회 분 이상의 부정적 요소가 나올 것 같지가 않다. 이미 김 씨에 대한 판단은 굳어지고 있다. 서글서글하면서도 거칠 게 없이 말하는 품새가 2016년 미국 대선에 불었던 '트럼피즘'을 연상시킨다.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미국 대중이 열광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기성정치권의 닳고 닳은 위선과 가식에 신물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 유권자들도 가면 뒤에서 '호박씨 까는' 기성 정치권과 기득권층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런 때에 김건희 씨가 등장했다. 이 현상을 잘만 활용하면 윤 후보 지지율을 분출시킬 호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규화 논설실장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