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98>질풍을 타다

정현정 2022. 1. 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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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공학 얘기다.

이 페라리 250 GTO에서 빌려온 GTO란 이름에 젊은 고객들은 열광했다.

이 페라리 250 GTO에서 빌려온 그란 투리스모 오몰로가토(Gran Turismo Omologato)는 그야말로 마력을 입혔다.

고작 36대만 생산된 페라리 GTO의 차주 중 자칫 자존심을 상할 경주에 차를 빌려줄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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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공학 얘기다. 당시만 해도 속력을 높이려면 이물쪽 모양은 대구처럼 둥글고 고물은 고등어처럼 좁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길이와 폭은 4:1 정도가 최적이라 봤다. 그런데 누군가 속도를 높이려면 그 반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뾰족한 이물과 두툼한 고물에 폭은 좁고 길쭉한 모양새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업에 시장에서 부는 변화만큼 중요한 전환점은 없겠다.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에게 순풍은 다른 이에겐 역풍이 될 수도 있다. 순풍을 만났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 멀리 이는 구름을 알아보고 뱃머리를 돌려세운 누군가의 성공은 전설이 되기도 한다.

그런 사건 중심에 존 들로리안(John DeLorean)이 있었다. 이즈음 젊은이들은 멋진 자동차에 대한 동경과 질주를 원했다. 그렇다고 유럽산 스프츠카를 살 수는 없었다. 들로리안은 그렇고 그런 차였던 템페스트(Tempest)에 폰티액이 갖고 있던 가장 큰 엔진을 올린다. 325마력짜리 V8 엔진이었다. 혹자는 이 폰티액 GTO를 머슬카(Muscle Car)의 탄생이라고 본다. 5000대나 팔릴까 싶던 차가 3만2000대나 팔려나간다.

브랜드 마케팅의 서곡이기도 했다. 이 페라리 250 GTO에서 빌려온 GTO란 이름에 젊은 고객들은 열광했다. 이 페라리 250 GTO에서 빌려온 그란 투리스모 오몰로가토(Gran Turismo Omologato)는 그야말로 마력을 입혔다. 실상 이 이름이 부끄럽지 않았다. 페라리 GTO조차 300 마력이던 시절이었다.

이런 질풍을 감지한 것은 폰티액만이 아니었다. 카 앤드 드라이버(Car and Driver)란 잡지는 두 차를 경주시켜 보자고 나선다. 정작 차는 구할 수 없었다. 고작 36대만 생산된 페라리 GTO의 차주 중 자칫 자존심을 상할 경주에 차를 빌려줄 생각은 없었다.

카 앤 드라이버(Car and Driver) 1964년 3월판 (사진=카앤드라이버)

방법이 없자 편집장은 가상 대결을 해보기로 한다. 폰티액은 경주용으로 튜닝된 차까지 보내준다. 이 말도 안 되는 가상 대결을 실은 1964년 3월 판은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폰티액 GTO는 100마일을 11.8초에 갈랐다'는 제호 밑에 붉은색 페라리와 초록빛 폰티액이 질주하는 삽화를 실은 이 50센트짜리 잡지는 불티나게 팔린다. 그리고 그해 최고의 자동차 매거진 자리를 꿰찬다.

이런 시장의 질풍은 또 다른 전설을 낳는다. 포드 머스탱이란 걸작과 리 아이아코카란 스타였다. 이것은 저렴하고 콤팩트하되 세련된 포니카의 시조가 된다. 헨리 포드 2세가 개발담당이던 도널드 프레이(Donald Frey)에게 “실패하면 너와 아이아코카가 책임져”라며 마지못해 승인했던 차가 그해만 무려 40만대가 팔려나간다. 프레이는 27년이 지난 뒤 한 칼럼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어떤 지지도 시장 조사도 자금도 없이 소수의 믿음이 어떻게 회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좁고 긴 배 형상의 배가 취항하자 주장은 사실이란 것이 증명된다. 클리퍼선이라 불리던 이 배 중 하나는 증기선인 브리타니아호와 대양에서 조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기록을 항해일지에 남기게 만든다. “어느 범선이 15노트로 항해하던 우리 배를 추월해 갔다.”

이 전설의 주인공은 커티삭(Cutty Sark)호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어느 위스키의 이름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클리퍼선으로 남아 있다. “저 멀리 피어오르는 바람을 보라. 이제 키를 돌려 바람을 맞자. 나아가자.”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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