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통신사찰은 민주주의 파괴하는 범죄

기자 2022. 1. 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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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상영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이번 통신사찰은 공수처가 수사 관행이라고 하면서 드러났다.

공수처는 사찰이 아니라, 사건과 관련해 관계자들에 대한 통신자료를 법에 따라 조회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공수처의 통신 자료 조회가 통신사찰이라고 하는 것은, 수사와 무관한 일반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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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10여 년 전 상영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아기의 모습으로 죽는다는 내용의 영화인데,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인간사회의 모순을 그렸다. 영화는 인간사회의 시간이 언제든지 거꾸로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정치권이 통신사찰로 시끄럽다. 사찰이란 용어가 다시 언급되는 상황을 보니 시간은 언제든지 거꾸로 갈 수 있다는 게 영화만은 아닌 듯하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자꾸 과거의 군사정권, 권위정권 또는 보수정권 때와 비교하면서 희석하거나 확산을 피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 과거의 잘못 때문에 민주화를 추구하고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많은 국민이 희생하고 노력하지 않았나?

이번 통신사찰은 공수처가 수사 관행이라고 하면서 드러났다. 그러자 그동안 숨죽이고 조용히 있던 숨겨진 사찰에 대한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특히, 통신사찰의 규모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크다는 점에서 놀랍기만 하다. 통신사찰 관련 언론 보도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공수처는 사찰이 아니라, 사건과 관련해 관계자들에 대한 통신자료를 법에 따라 조회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이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공수처를 비롯해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 등의 목적으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서비스 이용자의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다. 그래서 공수처는 적법성을 주장하지만, 통신자료 조회의 대상이 수사 목적과 관련 없는 사람들도 포함됐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수처의 통신 자료 조회가 통신사찰이라고 하는 것은, 수사와 무관한 일반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통신자료에는 이용자의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 등 개인 신상 정보가 포함돼 있다. 사찰은 조사하여 살피는 것을 뜻하므로, 개인의 신상 정보를 조사하는 것은 대상자를 살피고 감시하는 것으로, 사찰일 수밖에 없다. 국가기관인 공수처가 법 규정의 목적을 넘어 그 대상을 확대해 무차별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사찰이나 다름없다.

헌법은 제1조 제2항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무를 가진 수사기관이 오히려 법이 규정한 범위를 넘어서 국민을 사찰함으로써 자유와 권리를 침해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기관이 법을 위반해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면 이는 범죄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현 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학자나 지식인들이 수사기관들로부터 통신 자료 조회를 당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민주주의는 비판과 반대 등 다양한 견해를 토론으로 수렴하면서 발전한다. 사찰은 민주주의의 적(敵)이며 범죄행위다. 헌법재판소는 통신 자료 조회에 공권력의 강제력이 없어서 위헌이 아니라고 했지만, 공권력의 요청을 거부할 간 큰 통신사가 없음을 간과한 비현실적인 결정이다. 통신 자료 조회에 영장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이 문제와 상관없이 그동안 불법 사찰한 수사기관들은 적법하고 적정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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