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안네 가족 은신처, 나치에 밀고한 이는 유대인"

박용하 기자 2022. 1. 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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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 심층추적 방송팀, 2016년부터 조사
유대인 사업가 판 덴 베르그 용의자 지목
나치가 만든 유대인 자치기구 창립 멤버
안네 아버지 생전 인터뷰서 실마리…추적

안네 프랑크 가족의 밀고 사건을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다큐멘터리 제작자 타이스 바이엔스가 1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 가족이 나치의 탄압을 피해 숨어 살았던 은신처를 밀고한 이가 유대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CBS의 심층추적 프로그램 ‘60분’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연방수사국(FBI) 요원 출신 빈스 팬코크를 포함한 조사팀이 2016년부터 현대적 기술을 활용해 프랑크 가족을 밀고한 인물을 조사한 결과 유대인 사업가인 아놀드 판 덴 베르그가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다고 보도했다.

조사팀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생전 한 인터뷰에서 “‘은신처를 밀고한 이는 판 덴 베르그’라 쓰여있는 익명의 쪽지를 받았다”고 밝힌데서 실마리를 찾았다. 확인 결과 50년전 밀고 사건을 조사했던 담당관의 서류 더미에서 오토가 받은 쪽지의 사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사팀이 판 덴 베르그의 행적을 별도로 추적해보니 그는 나치가 만든 유대인 자치기구인 ‘유대인 평의회’의 창립 멤버였다. 덕분에 그는 수용소에 가지 않고 암스테르담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팀은 증거들을 종합해 볼 때 판 덴 베르그가 자신의 가족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나치에 유대인들이 숨어 있는 주소들을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밀고 사건과 관련된 과거의 조사 보고서에서도 거론된 바 있으나 후속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토가 판 덴 베르그에 대한 의심을 왜 재차 강조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팀은 추론했다. 이들은 오토가 자신의 의심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고, 반유대주의 정서가 한층 강해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프로제트를 기획한 다큐멘터리 제작자 타이스 바이엔스는 “이번 조사는 나치 정권이 얼마나 기괴하게 작동했으며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끔찍한 일(밀고)을 하게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암스테르담의 정교회 랍비 메나헴 세바그는 유대인들이 불편한 진실에도 “실존적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인간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네 가족의 은신처를 누가 밀고했는지에 대해선 과거 네덜란드 경찰에서도 두 차례 조사가 이뤄졌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밀고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은 청소부 아줌마와 아버지 오토의 종업원, 오토를 협박했던 남성, 나치 비밀경찰 요원으로 일했던 유대인 여성 등 약 30명에 달한다.

이번 조사팀은 밀고 사건을 일종의 미제 사건(콜드케이스)으로 보고 범죄학 전문가와 역사학자, 언론인, 컴퓨터 전문가 등 19명으로 조사팀을 꾸려 조사했다. 안네가 살았던 네덜란드의 국립문서보관소, 전쟁·홀로코스트·인종학살연구소, 암스테르담시와 안네프랑크재단 등 네덜란드 당국도 각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이용하도록 협조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의 다락방에서 숨어지낸 안네 가족 8명은 1944년 8월 나치에 적발돼 유대인 강제수용소로 옮겨졌다.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희생됐다. 그 뒤 안네가 은신처에서 약 3년간 기록한 일기가 발견됐으며, 이 ‘안네의 일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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