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불로소득' 환수, 주거안정, 그리고 실용주의(pragmatism)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2022. 1. 1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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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현 정부 들어 국민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정책은 단연 부동산정책이었다. 정부 출범 후 20번이 넘는 대책을 통해 여러 정책적 실험을 해 왔다. 집권 초부터 3년 차가 지난 2020년 7월까지만 해도 김현미 전 장관은 부동산 시장이 ‘공급은 충분하나 일부 투기수요가 있다’고 봤고, 따라서 강력한 ‘투기수요’ 억제 정책이 시행돼왔다. 유주택자의 대출한도를 대폭 축소했고, 부동산 세금을 대폭 인상해 현재 최고세율 기준 취득세 12%, 양도세 75%, 종부세는 6%에 이르고 있다.

정책적 실험의 근저에는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어야 하고, 토지는 공공재여야 하며,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자본소득은 ‘불로소득’이기에 철저하게 환수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도덕적 가치관이 있는 듯하다. 이는 현 정부에서 부활시킨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도(재초환), 각종 공공주도의 주택공급 정책, 그리고 비록 관철되지는 않았으나 양도소득 100% 환수를 주장했던 청와대 모 인사의 주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부동산가격 상승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모두 ‘불로소득’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용도지역 변경 같은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지 않아도 발생하는 자본이익은, 삼성전자 같은 주식가격 상승에서 발생하는 자본이익과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이러한 내용은 시각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매우 논쟁적인 사안이다. 심지어 현 제도에서는 집주인들이 비용을 부담해 낡은 아파트를 부수고 동일한 높이와 면적의 아파트를 새로 지으려 해도 지역에 따라 상당한 금액의 ‘초과이익’에 대한 부담금을 납부해야만 한다. 이것은 옳은 것일까? 분명한 것은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익은 모두 ‘불로소득’이고, 따라서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이 찬성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현 정부 정책의 취지가 어떠했든, 정책의 결과가 어떠한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현 정부 출범 후 작년 10월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폭은 92%에 달한다. 무주택자들은 ‘벼락거지’가 되어 허탈해하고 있고, ‘영끌’해서 집을 사기는커녕 전세자금 마련도 쉽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양도소득세 중과는 재고주택시장 매물을 대폭 감소시켰고, 재초환과 민간주택 분양가상한제도(분상제)는 사업 추진 속도를 대폭 늦춰 신규주택시장 공급 또한 감소시켰다. 또한 재초환은 여러 문제로 아직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주택 고급화를 촉진하고 있다. 분상제와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는 필요 이상의 주택 대형화를 촉진하는 반면 소형주택 공급을 축소하는 등 커다란 사회적 비효율을 유발하고 있다. 주택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국민 주거 안정은 크게 후퇴하고 있다.

정책에 있어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는 도덕적 관점과 사회적 약자도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도덕적 당위성이나 선의가 되어서는 매우 곤란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선량한 국민 중에서 ‘토지는 공공재’ 혹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은 불로소득’이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매우 많을뿐더러, 설사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국민 다수의 주거 안정을 해친다면 이는 옳지 않은 정책이다. 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결과여야 한다.

우리는 미국에서 발원한 정치철학인 실용주의(pragmatism)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실용주의 윤리학에서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도덕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유용하지 않다고 본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하고 가장 좋은 결과’를 낳는 수단이 가장 올바르다고 보고 이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서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 봐야 하고, 이 중 좋은 결과를 내는 수단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정책으로 돌아오자. 현 정부 들어 시도했던 수많은 정책실험의 의도가 어떠했든, 그리고 일각에서 바라보는 도덕적 원칙에 비춰 정의로웠든 그렇지 않든, 그 결과가 국민 다수의 주거 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쳤다면 분명 잘못된 정책이다. 지금까지의 정책 실패를 교훈 삼아 이제는 정책 방향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양도소득세 중과는 증여의 급격한 증가와 ‘매물잠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확연하게 확인되고 있지만, 정부가 의도한 불로소득 환수나 투기 억제 효과는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그리고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한들,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해치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도덕적으로도 올바르지 못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재초환과 분상제, 이 밖에 주택공급에 있어 ‘공공성’을 강화한 수많은 시도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정의 실현’이나 선의가 아닌, 결과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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