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세계일주] 협곡 깊이 3,800m..그랜드캐니언 2배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2022. 1. 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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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콜카캐니언
콘도르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크루즈 델 콘도르 전망대에 오르면 콜카캐니언의 웅장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수십만 년 동안 높은 안데스산맥을 흐르던 콜카강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인 콜카캐니언(3,800m)을 만들어 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그랜드캐니언보다 무려 2배나 깊다. 1,000m가 넘는 협곡에는 칼로 자른 듯 절벽이 치솟아 절경을 이루고, 이를 배경으로 한 무리의 콘도르Condor가 날갯짓 한번 없이 바람을 타고 유유히 계곡을 날아오른다. 콘도르의 날개는 무려 3m, 몸무게는 15kg에 이른다. 날개를 펼치면 자동차를 덮을 수 있는 위엄을 가지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온 몸을 휘몰아친다.
콜카캐니언은 사람이 살지 않는 그랜드캐니언과는 달리 1세기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잉카인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잉카테라스’라 부르는 계단식 밭들이 가파른 절벽에 남아 있고 협곡 곳곳에는 작은 마을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잉카의 후손으로 농사를 짓거나 라마와 알파카를 키우면서 선인장 재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 협곡의 바닥까지 걸을 수 있는 트레킹이 있다. 콜카캐니언 트레킹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계곡을 두 발로 직접 걸으며 가슴으로 느끼는 트레킹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색도시인 아레키파의 중앙 광장.
엘 콘도르 파사의 무대
콜카캐니언 트레킹을 위해서 아레키파로 향했다. 아레키파는 페루에서 수도 리마 다음으로 큰 도시로 콜카캐니언에서 약 160km 떨어져 있다. 사막에 가까워 건조한 기후이지만 안데스산맥에서 흐르는 물을 이용할 수 있고, 쿠스코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잉카제국의 중심지였다. 1540년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건설한 도시로 도시의 건물의 대부분이 스페인 양식의 흰색건물이어서 백색도시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이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에 나오는 콘도르를 보거나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인 산타카탈리나 수녀원Convento de Santa Catalina을 방문하기 위해 온다. 엘 콘도르 파사는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핍박받은 잉카인들의 삶의 애환을 담긴 노래로 페루 국민들의 많은 애정을 받고 있다.
아레키파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와 잉카 제국 시대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레키파 백색의 유문암으로 지어진 건축물은 햇살을 받으면 도시 전체가 반짝거린다. 해발고도 2,300m의 고산지대에 있고 3개의 화산, 미스티Misti(5,822m), 픽추픽추Pikchu Pikchu(5,669m), 차차니Chachani(6,075m)가 아레키파를 에워싸고 있다. 아레키파의 역사 지구는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작은 도시를 연상하게 하는 순백색의 아레키파는 왠지 순결해 보인다. 수녀원 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산타카탈리나 수녀원이 아레키파 도시 중심에 자리한다.
트레킹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산 미겔의 전통복장을 입은 마을사람들.
밖에서는 요새처럼 보이는 산타카탈리나 수녀원은 페루에서 가장 큰 종교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크기의 중정 및 회랑이 연결돼 있고, 여러 빛깔로 페인팅되어 있다. 화사한 햇살과 알록달록 다양한 꽃들이 골목들을 장식하고 있다. 이 수녀원은 1597년 건립되었지만 한 번에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증축되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색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보는 즐거움이 더욱 크다. 특히 회랑 쪽은 프레스코화가 일부 남아 있다. 현재는 관광객을 위해 개방하고 있고 북쪽의 일부 공간만 수녀원으로 사용된다.
한때는 약 500명의 수녀와 고용인들이 거주했었다고 한다. 귀족가문의 젊은 여인들이 강제 결혼을 피해서 수녀원으로 들어왔다. 수녀원의 이름도 자신을 억지로 결혼시키려는 부모의 뜻을 거슬러 헌신적인 수녀가 되었던 시에나의 성녀 카탈리나(1347~1380)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막대한 지참금을 가지고 수녀원에 들어온 수습 수녀들은 몸종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 4세기 동안 폐쇄되었던 수녀원은 1970년대부터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수녀원은 마치 작은 마을처럼 꾸며져 있다. 수녀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꾸며진 독립된 집에서 생활을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주방. 커다란 화덕이 있는 주방은 실외에 있어서 환기가 잘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파스텔톤으로 색칠해진 건물들과 화사한 햇살이 잘 어우러졌다. 딱딱하고 고요한 적막이 흐를 것이라 생각했던 수녀원은 따사로운 햇살과 더불어 화사하게 빛났다. 이곳이 진정 페루인가?
더위를 피해 여명이 트기도 전에 콜카캐니언의 바닥부터 다시 올라가고 있는 트레커들.
콘도르,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
새벽 3시, 투어버스에 타니 역시나 동양인은 나 홀로. 게다가 대부분 커플. 어째 시작부터 어깨가 움츠려든다. 아레키파에서 콜카캐니언까지는 4시간 가까이 자동차로 이동했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도착한 곳은 콘도르전망대. 협곡 가운데 가장 높은 고원지대인 ‘크루즈 델 콘도르’가 콘도르의 서식지이다. 잉카인들은 콘도르가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영적인 존재라고 믿었다.
콘도르전망대에서 약 30분간 콘도르를 기다렸다. 협곡에 서면 가까이서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콘도르를 볼 거라 생각했는데 대부분 아주 멀리서 그들끼리 놀고 있다. 카메라로 당겨 보지만 표준렌즈는 역부족. 이럴 때는 망원이 필요하지만 나에게는 망원렌즈가 없다. 마음을 비우고 눈으로 보다가 조금 더 가까이 날아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콘도르를 사진에 담았다. 그 거대한 몸짓과 부리부리한 눈에서 나오는 눈빛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순간 몸이 움찔했다.
콜카캐니언 트레킹은 1박 2일 동안 약 20km를 걸으니 그리 힘들지는 않을 듯하다. 콜카캐니언에 나무는 거의 없고 뜨거우 태양 아래 엄청난 먼지 속으로 걸어가야 하니 그리 좋은 코스는 아니지만 콜카캐니언 전체 뷰를 감상하기엔 최고의 코스이다. 오아시스 마을까지 내려가는 길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처럼 아주 자그마한 마을들이 있어서 걸으면서 현지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첫째 날 처음 7km는 계속 내리막길로 고도가 3,400m에서 2,200m까지 1,200m나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5km 올랐다가 내려간다. 고도차가 많이 나서 고소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산미겔 전망대Mirador de San Miguel (3,400m). 트레킹 출발지점이다. 콜카강이 흐르는 콜카캐니언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걸어가야 할 길도 계곡에 선명하게 자국이 나 있다. 저 정도면 가이드가 없어도 되겠지만 이곳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게다가 숙소 예약도 어렵다. 특히 넓은 대륙인 남미에서는 트레킹을 할 때에는 투어사를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편리하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협곡 가장 아래에 있는 오아시스 마을이다. 마을이라고 해야 집 몇 채가 전부이다.
길이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대부분이 사토여서 상당히 미끄럽다. 내리막길이라 더 위험하다. 조심 또 조심. 경사도가 심해서 등로는 강물이 돌아내려가듯이 끊임없이 지그재그를 그린다. 이런 길이 덜 위험하고 덜 피곤하다. 걷는 데 집중하다 보면 경치를 보지 못하기도 한다. 가끔은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절경이 앞에 서있다. 바닥까지 내려가니 콜카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그 앞쪽에는 음료수와 과일을 파는 여인이 있다. 음료수는 뜨거워지지 말라고 물에 담가 놓았다. 이곳에서 공원 입장티켓을 확인한다.
콜카캐니언 가장 아래에 있는 산가예 오아시스 마을.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물을 이용해서 만든 수영장이 눈길을 끈다.
콜카강은 완전 회색빛이다. 마치 시멘트가 섞여 있는 느낌이다. 강을 건너서 반대편에 서니 우리가 걸어온 산길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먼지 속을 걸었음에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직선으로 쭈~욱 그려진 길이 내가 걸어온 길이다. 내가 대견스럽다.
츄코산후안의 길 양쪽에는 대규모 선인장 재배지가 있다. 선인장의 뒷면에는 하얀 점막 같은 것이 있다. 벌레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기생충이란다. 이름은 연주벌레. 손으로 누르면 터지면서 빨간 물이 나오고 이것을 말려서 코치닐cochineal이라는 식용색소를 만든다. 단 암컷만을 사용한다. 딸기우유를 비롯한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의 식품이나 스틱의 원료이다. 스페인이 멕시코 정복하던 시기인 16세기에 유럽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잠시 쉬면서 식물공부도 한다.
내려오다가 다시 오르는 길은 더 힘들게 느껴진다. 게다가 햇살은 더욱 강해졌다. 모두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오아시스 마을이 보인다. 수영장도 보이고, 온갖 꽃들이 만발한 정원도 있다. 피로에 지친 이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빨리 가서 수영장에 풍덩 해야지. 모두들 같은 마음이다.
오늘의 숙소는 산가예 오아시스Oasis de Sangalle. 샤워는 가능하지만 찬물만 나온다. 지하에서 올라온 물은 얼음처럼 차갑다. 머리에 물이 쏟아지는 순간 온 몸이 찌릿찌릿 전기가 흐른다. 몸이 식기 전에 빨리 샤워해야 한다. 종일 흙먼지를 뒤집어썼으니 안 씻고는 참을 재간이 없다. 차가워도 씻고 나니 하루 피로가 모두 사라진다. 종일 햇볕에 담금질 당했던 내 몸도 오랜만에 휴식을 취한다. 수영장에선 배구 경기를 하느라 요란스럽다. 수영장의 배구놀이보다는 정원의 꽃이 나를 유혹한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이곳은 자가발전을 하고 있어서 전기를 사용하기는 어렵다. 해가 지면 모두 적막 속으로 들어간다.
가운데서 흘러내리는 하나의 물줄기를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던 수녀원의 빨래터
모든 걸 녹일 듯한 한낮의 태양
이튿날 시커먼 새벽 4시, 태양이 거동을 시작하려는 시간에 머리에 헤드랜턴을 켜고 콜카캐니언의 바닥에서부터 다시 전망대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전망대에서 보아도 될 협곡을 온 몸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두 발로 땅을 밟으며 느끼는 격정은 비교 불가이다. 그 격정은 참으로 오랫동안 내 몸 안에서 꿈틀거린다.
두 번째 날은 트레킹 거리도 짧은데 왜 동이 트지 않은 컴컴한 시간에 트레킹을 시작해야 할까? 걷다 보니 알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이 계곡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급격한 오르막길에서는 숨쉬기도 어려웠다. 가능한 조금이라도 덜 더울 때 걸어야 한다. 어제의 루트보다 거리는 짧고 경사도는 급하다.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에 전망대에 도착해야 하니 느긋하게 여유를 피울 수도 없다.
떠오르는 해가 협곡을 비추니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모두들 입고 있던 상의를 훌훌 벗어던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걷는다. 중천으로 올라선 해가 쏟아내는 뜨거움은 세상을 녹일 기세이다. 잠시 후 한 무리의 말떼가 지나간다. 짐도 싣고, 사람도 실었다, 오르는 게 힘이 들면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다. 조금 많은 돈을 지불하긴 하지만 30여 분 만에 계곡 바닥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남미의 트레킹 코스에는 대부분 이런 서비스가 있다. 차량이 다니지 못하는 곳이니 당연하게 만들어진 서비스이다.
내 키의 두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선인장에 하얀 꽃이 피었다. 메마른 토양에서서 꽃이 피다니, 생명력의 위대함이 놀랍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 이틀간의 콜카캐니언 트레킹이 막을 내렸다. 1박2일 일정으로 여유 있게 진행된 트레킹은 하루 일정으로도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하루에 걸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남미까지 와서 굳이 걷는 것에만 목적을 두고 빠르게 걷고 싶지는 않다. 트레킹을 하면서 충분히 경관도 즐기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 속에 함께하는 시간을 가능하면 많이 하고 싶다. 트레킹 후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배낭을 깔고 편하게 쉬면서 픽업 올 버스를 기다린다.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면서 어느 누구도 버스는 언제 도착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오겠지. 모두들 남미에 익숙해져가고 있음이다.
아레키파로 돌아오면서 차카피 노천온천으로 향한다. 시설은 별거 없었지만 탕마다 온천물의 온도가 달라서 각자 맞는 온도를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 제일 뜨거운 탕에서 한참동안 있었더니 모두들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한국엔 이것보다 더 뜨거운 온천이 많습니다.’ 웃으며 혼잣말을 한다. 이 온천물엔 관절염과 류머티즘 질환 치료에 효과적인 유황과 철, 미네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계곡 사이로 바람이 살랑거리며 어깨를 감싸주며 토닥거린다. “이틀 동안 수고 많았어.” 모든 피로가 단번에 날아갔다. 매혹적인 음색의 ‘엘 콘도르 파사’가 귓가를 스쳐 흘렀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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