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소방당국의 늦은 후회

구현모 입력 2022. 1. 1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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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최근 소방청이 '위험물 관리법'을 개정하겠다고 하자 소방설비 관계자 A씨가 한 말이다.

소방당국이 잊혀졌던 낡은 법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서울 금천구의 한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소화가스 누출 사고 때문이다.

보도가 나간 뒤 뒤늦게 문제를 인지한 소방당국은 부랴부랴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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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최근 소방청이 ‘위험물 관리법’을 개정하겠다고 하자 소방설비 관계자 A씨가 한 말이다. 위험물 관리법은 체적이 1000㎥ 이상인 제4류 위험물(인화성 액체) 시설(발전기실 등)에는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만 설치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17년 전 규정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이산화탄소 소화설비가 유류 화재 대응에 적합한 물질로 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는 호흡기에 들어가면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등 질식 위험이 높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할로겐 화합물 소화설비가 대중화됐지만, 해당 규정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소화설비 설치 업체들은 더 안전한 소화설비를 두고도 법 때문에 위험한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설치해야만 했다. ‘안전을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구현모 사회부 기자
소방당국이 잊혀졌던 낡은 법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서울 금천구의 한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소화가스 누출 사고 때문이다. 당시 현장에서 작업하던 52명 중 4명이 사망했다. 사고 후 만난 소화설비 공사 업체는 기자에게 “다른 층은 할로겐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설치했지만, 사고가 난 층에만 규정 때문에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보도가 나간 뒤 뒤늦게 문제를 인지한 소방당국은 부랴부랴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이제라도 법이 개정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가웠지만,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A씨의 말처럼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변화가 생겼을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규정 때문에’ 굳이 더 위험한 소화설비를 설치해야 했던 소화설비업체 관계자들은 오랜 기간 해당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현장에서 묻힐 뿐, 규정을 만들고 고치는 ‘윗분’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이산화탄소 소화가스 누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이번 사고를 포함해 10명이라고 한다. 최소한 2년 전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 이 규정을 들여다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때 개선하지 않으면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경기도 평택 물류창고에서는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를 보는 순간 지난해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로 소방관 1명이 순직한 게 떠올랐다. 소방관들은 불길 재확산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무리하게 내부로 진입하는 등 현장에 맞는 매뉴얼이 없다고 지적한다. 반년 전 경기도 이천 화재 참사 때도 나왔던 말이다.

금천구 사고 현장에서 막내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는 빈소에서 만난 기자에게 “생전에 (아들과) 연락을 자주 할걸”이란 후회를 털어놨다. 고인의 동료들은 “평소에 더 잘해주지 못해 아쉽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장 후회하고 아쉬워해야 할 사람은 이들이 아닌 소방당국일 것이다. 더 이상 ‘늦은 후회’는 없었으면 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문제지만 소를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다면 더 심각한 문제다. 지금이라도 소방당국이 현장에 맞는 매뉴얼을 구축하고 지휘체계를 개편하는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구현모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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