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일렉기타 주법교본 [성기완의 내 인생의 책 ②]

성기완 | 시인·뮤지션 2022. 1. 1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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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Kiwan을 떠올리며

[경향신문]

내 청춘의 시간이 아로새겨진 20세기 후반에 출판사가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후반기출판사’다. 주로 가요나 팝송 책을 펴내던 후반기출판사의 책들 후반부에는 수많은 청춘들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깨알같이 적혀 있곤 했다. 펜팔 주소록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그 이름과 주소들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방바닥을 뒹굴며 세월 따라 한 장 두 장 뜯겨가던 후반기출판사의 책들은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중에서 지금껏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제목은 <록 일렉기타 주법교본>이다.

록 일렉기타 주법교본

책 표지에는 오렌지 형광색에 고딕체로 제목이 써 있고, 아래쪽에는 ‘새 시대 새 방법 새 감각의 트레이닝’이라고 써 있다. 표현이 어딘가 일본스럽지 않나? 일본 책을 무단복제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돌이켜보니 당시에 나는 전기기타가 없었다. 중학교 때 조르고 졸라서 장만한 통기타로 이 책을 마스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초반에 나오는 척 베리의 전설적인 로큰롤 프레이즈를 익힌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기기타를 사달라고 아무리 졸라도 어머니는 절대 안 사주셨다. 원대한 꿈은 이내 소박한 취미로 소소하게 지속되는 수밖에 없었다.

책장을 뒤져 극적으로 찾은 이 책의 표지를 넘겨보니 “1982년 3월 성기완 Kiwan”이라고 서명까지 되어 있다.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 3월에 기타 교본을 산 걸 보면 공부할 생각은 아예 없었나보다.

이 책을 구입하고서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엄숙하게 서명을 했으리라. 따지고 보니 구입한 지 딱 40주년이다. 불세출의 록 기타리스트가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아직도 ‘인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걸 감사히 여기며 나 홀로 이 40주년을 기념해본다.

성기완 | 시인·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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