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공포의 중대재해법'] "사례 없으니 가늠하기 어려워".. 모호한 기준 기업들 좌불안석

박정일 2022. 1. 1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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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27일부터 시행
경영책임자·대표 의미 불분명
소규모 사업자장실효성 의문도
업무 질병 인과관계 파악 불확실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혼란과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이 법의 처벌 대상의 범위에 대한 모호한 기준 때문에 법적 논란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면서, 이로 인한 불확실성 가중을 우려하고 있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 사고 같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은 '경영책임자 등'에 대해 '사업을 대표·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문제는 법 적용 대상인 '사업주·경영책임자 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안전 담당 이사를 별도로 두면 대표이사가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대규모 장치산업을 운영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민간기업이나 공기업들이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 조직을 구축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이들 담당자들이 어느정도 역할을 하고 위치에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현재로서는 사례가 없으니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할 만큼 했다'는 명분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렇다고 최고경영자가 처벌을 안 받는다는 보장도 없고 현재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안전 담당 이사는 '대표에 준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안전 담당 이사' 식의 직함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면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부의 이 같은 해석에도 법리 공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이전에는 기업들이 최대한 빠르게 사고를 수습하고 상황을 보겠지만, 이제는 사고의 잘잘못을 따지는 법리 싸움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다"며 "이 경우 통상 법적판단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기업들보다 사고 당사자 개인들이 부담이 더 클 것이고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소모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가 실제로 발생해 다양한 판례가 쌓일 때까지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적용 여부 역시 논쟁꺼리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가 5인 이상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이 법은 또한 소규모 기업의 혼란을 줄이고자 50인 미만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 현장에는 2년간의 유예기간을 줘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산재 사망사고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특히 자주 발생하고 있어, 사고 예방이라는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828명을 소속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5인 미만' 317명(38.3%), '5∼49인' 351명(42.4%), '50∼99인' 54명(6.5%), '100∼299인' 58명(7.0%), '300∼999인' 30명(3.6%), '1000인 이상' 18명(2.2%)인 것으로 집계됐다.

중대산업재해를 구성하는 요건 중 하나인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놓고도 의견이 갈린다. 법 2조 2호 다목은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3가지 요건 중 하나로 규정했다.

시행령은 이 '직업성 질병'으로 급성 중독, 독성 간염, 혈액 전파성 질병, 산소 결핍증, 열사병 등 24개의 질병을 명시했다. 논란이 있었던 뇌심혈관계·근골격계 질병, 직업성 암 등은 제외됐다. 이들 질병은 업무로 인한 것인지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영계 일각에서는 같은 조항 가목에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 중대산업재해로 본다고 돼 있는 점을 들어 실제로는 뇌심혈관계 질병 등으로 노동자가 숨지면 사업주·경영책임자가 처벌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가목 '사망자'의 질병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입법 취지와 달리 각종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모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일·장우진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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