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부터 구의역까지 "이름없이 스러진 수많은 곳, 모두가 연결돼 있더군요"
[경향신문]
“(천사는)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발터 베냐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중)는 송상희의 작업 내용과 방식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말이다. 송상희는 망자들의 희생 현장에서 죽임과 죽음의 역사를 복원한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을 불러낸다. 방식 측면에선 “집요하게” 수집한 영상이나 사진, 문헌, 드로잉을 몽타주로 이어 붙인다. 분할 화면, 실물 타일, 종이 매체를 동원한다. 송상희 특유의 몽타주를 두고 ‘수공예 퀼트’란 평도 나온다. 송상희는 베냐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를 반복해 읽으면서 이미지들의 연결 방식을 상상하고 계획했다고 한다.
서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자연스러운 인간’전(2월27일까지) 출품작들도 망자들과 상흔의 장소들을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희생당한 아이들을 위로하는 돌탑을 둔 일본 오소레산, 당시 조선인을 수용한 인도네시아 반둥의 수카미스킨 감옥, 2011년 극우 테러리스트가 청년들을 죽인 노르웨이의 우퇴위아섬 등이다. ‘김군’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구의역, 군인들의 총칼에 시민들이 희생된 광주 전남도청 이미지도 담겼다. 태안과 체르노빌 같은 대형 재난의 현장, 노예무역 거점 탄자니아의 바가모요 등지도 몽타주를 이루는 현장이다.
송상희는 학살과 재난의 현장을 20년 가까이 찾아다녔다. 작품으로 재현한 지는 약 15년이다. 왜 이 참혹한 장소를 목적지로 순례를 지속하는지 궁금했다. 네덜란드에서 ‘거주권’을 받아 사는 그는 최근 ‘작가와의 대화’(20일)를 위해 잠시 귀국했다. 격리 때문에 전화로 인터뷰했다.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는 곳에 가게 되네요.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곳입니다.”
망자 진혼은 2003년 시작됐다. 그해 러시아 사할린섬 해역과 접한 일본 홋카이도 최북단 소야곶을 찾았다.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진혼의 첫 순례지였다. 열세 살 때인 1983년 ‘소련 KAL기 격추 사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269명이 죽었다. “바닷가에서 그분들에게 나라도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잊힌 역사는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냉전 시대 말없이 죽어간 이들의 목소리를 불러내기로 했다. 당시 소련이 희생자들의 유품이라고 돌려준 건 신발뿐이다. 2010년 일본 북반구와 태평양이 만나는 사할린 바다에 신발들을 띄워 촬영한 영상 작품 ‘신발들’을 내놓았다. 이 현장에서 침략과 전쟁, 종교·이념 갈등으로 사망한 이들도 함께 떠올렸다. 이후 국경과 이념, 민족 너머의 ‘삶과 죽음’ 문제에 몰두했다. 과거 이미지로 현재 문제를 환기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발걸음은 아우슈비츠로, 한국의 보도연맹 학살지로 이어졌다. “국민보도원연맹조사보고서를 보니, 우리나라 많은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학살지가 우리가 사는 바다나 땅 모든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2021년 작 ‘대지의 노래’에 이 생각을 반영했다. 2008년부터 10여년간 촬영한 영상으로 작업했다. 7개 채널의 영상 속 하늘과 땅, 바다는 어디가 한국인지, 어디가 외국인지 알 수 없다. 상흔의 장소라는 공통점만 있다. 송상희는 “이 모든 곳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묻힌 곳일 수도 있다고도 여겼다. 결국 이 장소들이 서로 연결돼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광주의 하늘과 체르노빌의 땅 이미지를 이어붙였다.
‘말걸기’(2021)엔 보스니아 전쟁(1992~1995) 말기인 1995년 7월 무슬림들이 학살당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접경 도시 스브레니차가 담겼다. 민족 분쟁 지역인 사라예보 등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여러 장소에서 “서로 씻어내거나 지워내지 못할 상처를 준 사람들, 서로 같이 살 수 없는 세 종족의 사람들(보슈나크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이 어떻게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는가”에 관한 답을 찾으려 했다.
이 작품엔 자기 성찰도 들어있다. 송상희는 자신에게 붙은 ‘잊힌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작가’라는 수식을 두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수십 년 전 타국에서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크다”고 말했다. 사명감도 부인했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주제넘는 일이다. 나에게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허영에 가득 찬 애처로운 ‘비장함’일 것이다. ‘발견되어야 할’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송상희는 ‘죽인 자들’에게 보내는 비판과 경고의 언어도 몽타주에 담았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하층 계급 지칭 용어를 노동자, 농민, 여성, 피식민인 등 ‘억압받는 자’로 확장한 가야트리 스피박의 ‘서발턴’이란 관점에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본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오브라이언의 입을 빌려 전달한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며 존재한다. 권력은 사람의 정신을 찢어놓는다”는 말을 견지하려 한다.
송상희의 작품 속 평온한 풍경엔 잔인하고 야만적인 인간상이 스며있다. ‘자연스러운 인간’이라는 전시 제목은 니체의 <선악의 저편> 7장 ‘우리의 덕’ 중 “자연적 인간이라는 무서운 근본 텍스트는 다시 인식되어야만 한다”는 구절에서 따왔다. 인간이 인간을 거래하는 노예무역도 잔인한 본성을 드러낸다. 과학과 기술의 미명으로 핵폭탄 같은 죽임의 도구를 만든다. 3채널 영상 작품인 ‘사과’(2021) 두 번째 영상에서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 대사를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입으로 전달하고, 핵개발 ‘맨해튼 프로젝트’ 기록 영상을 활용한 건 “우리가 뭘 알려고 하는 욕망이 타인에게 죽음으로 연결되고, 인간이 자신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는지” 일깨우려는 것이다. 그는 보편적 윤리나 도덕적 규범이 타인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긴다. ‘사과’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범죄자로 규정된 컴퓨터 과학자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담은 것도 ‘보편적’이라는 윤리·도덕의 위험성을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송상희의 전망은 이처럼 비관적이다. 송상희는 역사의 진보를 믿지 않는다. ‘꿈’(2021)에선 세상의 종말을 다룬다. 영상 중 일기예보에 “아름다운 봄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라는 자막이 나온다. 다만 그의 비관은 낙관에 기대어 있다. 2003년 홋카이도 소야곶의 작은 나무 위패에 한글로 새긴 문구 “세상 모든 이들이 평화롭기를”이란 기대는 아직 버리지 않았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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