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티티와 예술원

박미향 2022. 1. 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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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소설가 이기호가 자신의 단편소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청와대 국민청원에 관해 소개한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편집국에서] 박미향 | 문화부장

2022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무릇 새해라 함은 묵은 때를 털어내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지난해 노정된 문제들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희망을 말할 수가 없다. 새해도 오지 않은 것이다.

일례로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실종자 5명은 아직도 구조가 요원한 상태다. 애타는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새해 희망’을 입에 올리기 죄송하다. 과거 흙더미에 묻힌 죽음이 한둘이 아니었거늘, 왜 달라지지 않는 걸까. 건설업계의 묵은 때가 여전히 우리 삶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선 후보들의 행태도 실망스럽다. 일단 ‘지르고 보자’식 공약 남발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가 빠져 있다.

문화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대성공으로 케이(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아이피(IP·지식재산권)를 비롯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지난해 <블룸버그>가 입수한 넷플릭스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개별 콘텐츠로는 드물게 8억9110만달러(약 1조원)라는 엄청난 수익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비용 대비 시청률을 따지는 효율성 지표도 41.7배나 된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아이피를 독점한 넷플릭스는 주머니를 채웠지만, 우리가 챙긴 실속은 셈이 안 될 정도로 적어 보인다.

블랙홀처럼 콘텐츠를 빨아들이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오티티)의 위력에 영화판도 움츠러들고 있다. 좋은 평가를 받은 첫 작품으로 기대주가 된 한 영화감독은 최근 섭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섭외 0순위 배우들의 답이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과거엔 ‘상대 배우는 누구냐?’를 비롯해 시나리오에 대해 질문하던 그들이 이젠 “다음 작품은 오티티와 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출연 조건에 오티티가 상수로 자리 잡았다. 영화판의 우수한 제작 인력도 오티티가 빨아들이고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사람이 답이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콘텐츠의 중심축이 플랫폼으로 넘어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전세계 콘텐츠 플랫폼의 혈전이 예상되는 올해 정작 토종 오티티의 성적은 걱정스럽다. 케이-콘텐츠가 향후 전세계에서 탄탄한 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국내 오티티의 성장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

지난해 제기된 ‘예술원’ 문제도 답보 상태다. 소설가 이기호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대한민국예술원 비판을 골자로 한 소설을 발표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이에 문인 744명과 다른 장르 예술가 329명이 비판 성명을 이어 내며 예술원 개혁 촉구에 동참했다. 소설가 이순원은 <한겨레> 기고에서 개선 자체가 어려우니 “해체와 폐지가 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쟁점은 세 가지다. 물방울 작가 김창열도 신입회원 추천에서 떨어질 만큼 폐쇄적인 회원 선출 방식, 한번 회원은 평생회원이 된다는 점, 회원 대부분이 교수 등의 직업이 있는데도 매달 1인당 180만원의 수당을 받는다는 점 등이다. ‘끼리끼리’란 말이 돌 정도로 기존 회원들과 가까운 인사들이 회원으로 선출된 전례가 많았다. 평생회원제는 문인들의 비판 성명서에서 거론되었듯이 “전근대적인 신분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독일, 프랑스, 미국에도 예술원 제도가 있는데, 그저 명예직이다. 수당은 지급하지 않는다. 한 해 예산만 32억6500만원인데, 설립 취지 중 하나인 청년 예술가의 지원금은 적다. 예술원 주최 수상과 관련해 추문도 끊이질 않는다. 성평등이 사회적 화두인 요즘 남성 회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통과는 기약이 없다. 문체부는 개선책을 마련 중이라는데 이것조차 기약이 없다. 지난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문체부 관계자는 “2월 첫 회의를 거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제도개선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며 6월 상반기까지 결과물을 낼 예정”이라고 했다. 6월이면 한 해의 반이 지난 시점이다. 개혁 의지가 의심되는 지점이다.

희망 가득한 새해를 맞고 싶은 건 누구나의 소망이다. 희망은 그저 몇마디 덕담이나 격려로 오지 않는다. 잔혹한 희망고문이 되지 않기 위해선 실천이 따라줘야 한다.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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