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단축 개헌 공약을 기다린다

한겨레 2022. 1. 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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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고성원 | 메시지 컨설턴트

이른바 ‘87년 헌법’이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된 때가 그해 10월29일, 그로부터 3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87년 체제’는 한국 사회 민주화와 민주주의 공고화라고 하는 역사적 과업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민주적 절차는 깡그리 무시당한 채 군부권위주의 통치의 오랜 기억을 안고 있던 국민들에게 ‘내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고 권력을 창출하는 것만큼이나 절박하고 간절했던 시대정신은 달리 없었을 것이다. ‘87년 헌법’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6월 항쟁’이라고 명명된 그 세계사적 혁명을 기점으로 한국의 민주화는 제도적으로 그렇게 안착이 됐다.

한 사회의 민주화 과정은 이후의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민주적 이념을 절차적으로 제도화하는 데 방점을 둔 ‘87년 헌법’은 하지만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를 넘어 민주주의를 내용적으로 실질화하는 데까지 미처 이르지는 못했다.

민주적 절차를 거쳤지만 여전히 대통령 권력은 초월적인 국가권력으로 군림했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민들이 ‘제 손으로’ 제왕을 뽑는 아이러니가 반복됐다. 막강한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는 데 방점을 두면서 국회에도 상당한 권한과 권력이 집중됐지만, 권력에 책임성을 부과하고, 사회적인 합리성을 제고하고, 사회적인 불평등을 완화하는 상태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비단 선거 국면만이 아니라 일상의 정치 국면에서도 첨예화된 대립적 구조는 급기야 승자독식의 패권적 정서로까지 이어졌다. 무책임한 선동과 선심성 공약, 갈라진 진영논리 속에서 확증편향만이 난무했다. 사회의 논리적인 객관성은 상실되고, 사람들은 편을 갈라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기 시작했다. 경계를 짓고 무리를 지으면서 소통은 단절되고 자기확신에 편승한 막무가내 주장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됐다.

“정치 상황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어 극단적 분파주의를 조장한다”거나 “대통령과 의회 간의 대립을 초래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제도적 경직성에 빠진다”거나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국외자를 선출할 잠재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대통령제의 실패’를 설파한 예일대학 후안 호세 린츠 교수의 지적은 지금 우리 정치 상황과도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비록 권력구조 자체가 민주정치의 성패를 규정짓는 결정요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권력구조 개편이 정치 문화나 정치 과정의 변화를 이끌어낼 개연성은 충분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획득해야 할 정치적 가치는 절차적 정당성 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개헌 논의를 시도한 때가 지난 35년간 한두번의 일이 아니지만, 그때마다 정치일정과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한번도 의미있는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누구도 기득권을 주장할 수 없는 지금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하는 ‘4년 중임제 개헌’을 각 후보들이 공약하는 방안도 검토해주었으면 한다. 현행 헌법에 따라 당선되는 신임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기 5년에서 1년 임기를 단축하고, 개헌 이후 새 헌법에 따라 당선되는 대통령부터는 ‘중임제’를 통해 책임성을 부과하는 제도 말이다.

공교롭지만 정치일정상으로 행정권력을 선출하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같은 해에 치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년 터울을 두고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선출 시기가 교차하면서 상호견제하는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다. 지배적인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 정부’가 아니라 견제되고 분립된 ‘○○○ 행정부’를 만들어낼 기회이기도 하다.

‘87년 체제’는 부정할 수 없는 민주화의 산물이지만, 그 덕에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민주주의가 확장되었다면 이제는 민주주의를 심화해야 할 때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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