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파크 보이콧 여론에도..정몽규 회장 반쪽사퇴 논란

유준호,이종혁,김희래 2022. 1. 1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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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차례 붕괴사고에 신뢰 추락
책임론 커지자 사퇴 강수던져
鄭 "대주주로서 할 일 하겠다"
지주사·축구협회 회장직 유지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아니지만
사퇴 선례·엄격적용 명분될듯
고용부, 현산 12곳 특별 감독

◆ 광주 아파트 붕괴 후폭풍 ◆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난 정몽규 회장이 17일 오후 4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을 방문해 실종자 가족 대기소로 들어가고 있다. 정 회장은 실종자 가족을 만나 사과했지만 일부 가족은 빠른 대책을 촉구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광주광역시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사고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이 공사를 수주한 사업장에서 시공권 회수 움직임이 본격화된 데다 일각에서 '건설업계 퇴출'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정 회장의 사퇴는 벼랑 끝 위기에 내몰린 회사를 구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건설업계는 오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을 앞두고 정 회장 사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의 거취 표명이 건설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최고경영자(CEO)가 처벌 혹은 사퇴로 책임을 져야 하는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울러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사고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 분위기가 고조되고 향후 중대재해법 적용이 더욱 엄격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17일 정 회장은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서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정 회장은 2018년 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회장직은 유지했고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에 관여해왔다. 정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것은 1999년 회장에 취임한 이후 23년 만이다.

정 회장은 "1999년부터 23년 동안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며 고객과 국민에 대한 신뢰를 지키고자 했다"며 "하지만 이번 사고로 그런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책임을 통감하며 저는 이 시간 이후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다만 정 회장은 HDC그룹 회장직은 유지하기로 했다. 정 회장이 3번째 연임하고 있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직도 그대로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지주회사 회장으로서 자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쪽 사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 회장직까지 내려놓으면 사퇴를 통해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을 수 있다"며 "자리에 연연했다기보다 사태를 끝까지 수습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 회장도 "사퇴로 제 책임을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주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고 제일 먼저 고객과 국민 신뢰를 되찾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광주는 정부기관과 힘을 합쳐 안전관리를 비롯해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신속히 실종자 구조에 총력을 다하겠다"면서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투명하게 밝히고 외부 전문가와 당국의 안전진단을 받아 문제가 있다면 완전 철거 후 재시공도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이 사퇴한 배경에는 대형 참사를 연이어 터뜨린 데 대한 사회적 책임감과 함께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인명사고를 낸 데 이어 7개월 만인 지난 11일 신축 중이던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까지 일으키면서 부실공사 등과 관련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학동 참사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은 국토교통부가 실시하는 시공사 안전관리 수준 평가에서도 '미흡' 판정을 받았다. 미흡은 가장 낮은 단계로 시공능력 상위 10대 건설사 중 HDC현대산업개발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올해 화정동 붕괴사고까지 발생하면서 큰 상황 반전을 꾀하기 어려워졌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권을 따낸 재개발 사업장에서는 계약 철회를 요청하는가 하면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 회사 아파트 브랜드 '아이파크'를 보이콧(거부)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서울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복합공간 조성사업과 청라의료복합타운 등 수도권 내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정부도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해 가능한 한 최강도 엄벌 조치를 내릴 방침을 시사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이날 "(HDC 관련 사고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일어나 현재 운영되는 모든 법규상 가장 강한 페널티를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원인 조사에 따라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책임은 분명히 묻겠다"고 말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건설산업기본법상 고의나 과실로 중대재해를 낸 건설사에 대해서는 최대 1년 이하 영업정지와 건설업 등록 말소까지 가능하다. 고용노동부도 HDC현대산업개발이 공사를 진행하는 전국 12개 건설 현장에 대한 특별감독에 착수했다. 각 현장에는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감독반이 투입돼 최소 5일 동안 감독을 실시할 방침이다.

한편 정 회장은 이날 오후 광주 화정아이파크 사고 현장을 찾아 실종자 가족을 만나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을 통해 "여기(광주)에 온 이유는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것을 약속 드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사고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가족을 찾고 돌아가야 문제가 해결될 것 아니냐. 피해 보상은 중요한 게 아니다. 다 필요 없으니 얼른 (실종자를) 찾아달라"고 고성을 지르는 등 강하게 항의했다.

[유준호 기자 / 이종혁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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