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에 등 떠밀린 죽음을 애도하며

한겨레 2022. 1. 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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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 ㅅ그룹 연구소에서 약 5년간 일했고, 그 후 영국, 일본, 노르웨이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약 10년 전부터는 핀란드에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 외국 기업이라면 2~3년은 걸려야 할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한국 연구소는 그보다 훨씬 짧은 1년 안팎의 개발 기간을 목표로 더 적은 연구 인력과 예산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그중에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한가지 소개하면, 제가 일하고 있는 연구소에서는 약 2~3년에 한번씩 건강검진을 실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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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 디자인센터 연구원이 과로에 시달리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김해식 | 핀란드 국립과학기술원 박사

저는 한국 ㅅ그룹 연구소에서 약 5년간 일했고, 그 후 영국, 일본, 노르웨이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약 10년 전부터는 핀란드에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현대자동차 디자인센터 연구원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펜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글로벌한 회사가 되었고, 한국 제품은 디자인이 세련된데다 첨단기술을 탑재하고 있어 전세계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더욱이 촛불집회와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 덕분에 한국은 체계화되고 민주화된 사회로 인식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방탄소년단(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과 같은 문화 콘텐츠로 많은 유럽 사람들이 우리의 소프트파워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일터는 어떨까요? 우리 일터도 그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을까요?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충분히 존중받고, 꿈을 펼치고, 성장하는 그런 곳이 되었을까요? 자고 나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유럽 사람들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데, 우리 일터에서의 일상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을까요?

한국에서 근무할 때 일입니다. 보통 외국 기업이라면 2~3년은 걸려야 할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한국 연구소는 그보다 훨씬 짧은 1년 안팎의 개발 기간을 목표로 더 적은 연구 인력과 예산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우리 연구원들은 그 어려운 프로젝트를 실제 1년 안에 완성해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우리나라의 놀라운 기술력으로 외국 기업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냈다고 자랑스러워하곤 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납니다. 많은 외국 기업은 2~3년의 기간을 두고 개발하면서 차근차근 매뉴얼을 만들고,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는 방법까지 체계화합니다. 그러나 우리 연구원들은 그 과정을 생략하고 어떻게든 동작만 하게끔 하면 되기 때문에, 제품이나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연구개발 과정에 알게 되는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많은 우리 기업들은 지나치게 성과 위주, 단기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는 좋은 일터를 만드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핀란드는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중에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한가지 소개하면, 제가 일하고 있는 연구소에서는 약 2~3년에 한번씩 건강검진을 실시합니다. 여기에는 정신과 상담도 포함되어 있는데, 의사가 늘 하는 질문 중 하나가 “퇴근 후에 회사 일을 얼마나 생각합니까?”입니다. 만약 퇴근 후에도 회사 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대답하면, 의사는 이를 꽤 심각한 문제로 판단하고 회사에 별도의 레터를 보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회사원이 학업을 좀 더 이어가고 싶다고 한다면, 회사는 이를 ‘지원할 수 있다’가 아니라 ‘지원해야만 합니다’. 근무 연수가 10년이 넘으면 대학교수의 안식년처럼 약 6개월에서 1년간 회사를 쉬면서 재충전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누가 바꿀 수 있을까요? 끊임없이 요구해야 합니다. 과거 엄혹한 시절을 견뎌내고 민주화를 이뤄냈듯이, ‘복지는 곧 세금 낭비’라는 편견을 바꿔냈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의견을 모아 정치가 이에 응답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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