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책장은 '성평등'한가요?

한겨레 2022. 1. 1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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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힌 관점 담은 그림책 고르는 방법
성별 고정관념, 편견 가득한
'구닥다리' 그림책은 이제 그만..
사회적 약자 희화화하거나
여자는 수동적, 남자는 악당도 '진부'
미래세대 위한 '좋은 책' 골라볼까
엄마와 딸이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그림책을 보며 고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수십년 전 제가 어릴 때 보던 편견 가득한 그림책들이 여전히 많더라고요. 여자 캐릭터는 언제나 한발 뒤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하거나 집에서 요리만 하지요. 장점을 가진 친구를 이유 없이 질투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도 그려집니다. 남자 캐릭터의 경우 남을 괴롭히기만 하는 악당 역할로 나오거나 ‘맨 박스’(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에 갇힌 주인공들이 많고요. 아이 둘을 낳은 뒤 그림책 고르기에도 더욱 신경을 쓰는데 참 쉽지가 않습니다.”

30대 후반인 김혜인씨의 말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유아, 어린이들을 위한 콘텐츠를 접하지만 여전히 김씨는 책에 먼저 손이 간다고 했다. 좋은 그림책을 많이 사주고 가족이 다 함께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교육적인 고민 없이 조회수만 바라보고 만들어진 어린이 대상 동영상 콘텐츠의 유해함을 좋은 책으로 ‘중화’하고 싶다고도 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유튜브 영상들이 굉장히 자극적이거든요. 극단적으로 여성성, 남성성을 구분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아예 안 보여줄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유튜브 영상에 ‘나도 빨리 화장해서 예뻐지고 싶다’라든가 ‘너는 너무 예뻐서 질투 나! 너랑 안 놀 거야!’ ‘남자가 힘이 세니까 무조건 이겨야지!’ 같은 성별 고정관념이 담긴 말이 너무 많이 나와요.”

김씨는 자신이 30여년 전에 접했던 ‘구닥다리’ 그림책이 여전히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남자는 대장, 여자는 조수’와 같은 말이나 여자 캐릭터에 연약함이나 애교를 강요하는 내용, 노인의 모습을 지나치게 약하게만 그리는 것 등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 콘텐츠 큐레이션 플랫폼 ‘딱따구리’ 누리집 갈무리

‘성평등 가이드라인’ 참고해볼까

미래세대인 아이들을 위한 좋은 그림책 고르기, 어떻게 해야 할까? 영유아 및 어린이 콘텐츠 큐레이션 플랫폼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 강지하 다산북스 어린이사업팀장과 함께 좋은 그림책 고르는 법을 알아봤다. 성평등 그림책 구독 서비스를 운영한 바 있는 유 대표는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외국 교육청의 성평등 교육 가이드라인과 논문,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만든 성평등 테스트인 ‘벡델 테스트’를 참고해 좋은 그림책 고르는 기준을 만들었다.

유 대표는 “등장인물의 묘사와 설정이 성차별적이진 않은지, 여성 주인공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사고하는지, 남성 주인공의 설정이 일차원적이지 않은지 등을 살핀다”고 말했다. 우따따가 선정한 ‘새로운 시대의 상식―여성 롤모델’ 그림책 시리즈는 구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재미없거나 완성도 낮은 책은 선정하지 않습니다. ‘유해한 남성성’이 강조된 책도 빼고요. 여자아이의 진취적인 모습을 강조하려다 보니 남자아이가 너무 악당처럼 그려진 책이 가끔 있어요. 악당과 말썽꾸러기, 규칙을 어기는 캐릭터가 대부분 남성인 거죠. 이런 내용은 남자아이들에게도 유해하다고 생각해요.”

책장 평등 지수 테스트 문항. 딱따구리 누리집(www.wooddadda.com)에 들어가면 전체 문항을 볼 수 있다. 어린이 콘텐츠 큐레이션 플랫폼 ‘딱따구리’ 제공

다양한 사회 구성원 다룬 그림책 골라봐

영유아 및 어린이 콘텐츠 큐레이션 플랫폼 ‘딱따구리’의 기준을 참고해 그림책을 골라볼 수 있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그림책 속 성비와 고정관념, 외모, 직업, 가족관계 등을 살피면 된다. 딱따구리 누리집(www.wooddadda.com)에서 테스트해볼 수 있다.

먼저 등장인물의 성비가 불균형한지 확인해보자. 주인공 또는 보조 캐릭터를 통틀어 스토리의 흐름에 관여하는 등장인물의 성비가 적절한지, 남성으로만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자. ‘그래 봤자 그림책인데 이렇게까지 확인해야 한다고?’라는 생각은 어릴 적에 접한 책 한 권이 아이에게 직간접으로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여자 캐릭터가 이야기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한 역할만 하는지도 체크해보자. 여자 캐릭터가 남자 캐릭터처럼 스토리 흐름을 이끌어가거나 직접 참여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거나 비중 없는 대사만 하는지 살피는 것도 포인트다.

남자 캐릭터의 성격이나 행동, 말투가 성 고정관념적인 경우도 많다. 지나치게 말썽을 자주 일으키거나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역할을 도맡는 그림책이 적지 않다. “남자는~” “여자는~” 같은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 ‘새 시대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그림책이다.

여자 캐릭터가 도전을 두려워하거나 감정적이고 질투심 또는 허영심이 많게 그려진 경우도 여전히 많다. 남자 캐릭터의 애정을 일방적으로 갈구하는 모습, 다른 캐릭터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수동적인 모습이 의외로 많이 나온다.

직업적으로 의사, 사장, 조종사 등은 남성임에 반해 간호사, 비서, 돌봄·서비스직은 여성으로 등장하는 경우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여자는 예뻐야 해. 남자가 왜 울어?” 등의 표현이나 뚱뚱한 사람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 등 외모 지상주의적인 내용이 있는지도 살펴보자.

그림책 배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연령대와 성비, 구성원의 다양성 등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한부모 가정이나 조부모 가정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을 반영했는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지, 문제 해결 후 평가와 보상 방식이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는지 등의 기준으로 살펴볼 필요도 있다.

좋은 그림책이 균형 감각 키워줘

물론 그림책을 고를 때 이런 교육적인 부분뿐 아니라 재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균형 있는 관점으로 아이의 책을 골라주고 싶다면 부모 등 보호자가 먼저 아동도서에 관한 비평서를 읽어보거나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본 뒤 함께 이야기 나눠볼 것을 추천한다.

강지하 팀장은 “차별적이거나 혐오 정서가 담긴, 즉각적인 반응만을 유도하는 영상 콘텐츠가 참 많은 시대다. 이에 반해 좋은 그림책은 정교하게 짜인 언어와 풍부한 감수성을 키워줄 수 있는 양질의 교육 자료”라며 “보호자들이 미래세대인 아이를 위한 ‘새로운 시대의 상식’을 원하는 만큼 좋은 책을 만드는 작가와 기획자들도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유 대표도 ‘업데이트’된 그림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어린이들에게 세상은 정말 궁금한 곳입니다. 늘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어른들은 늘 그 이야기를 읽고 보는데 어린이들이라고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동안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현시점에서 설명해주는 콘텐츠가 많지 않았습니다. 사회와 경제, 과학과 환경, 젠더와 인종, 기후위기 등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이슈를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과 형식의 콘텐츠로 접할 권리가 있지요. 이를 통해 어린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며 다름에 대해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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