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으로 꽉찬 '뮤~우지컬'의 향연..어설프고 유쾌한 예언자, 배우 정원영 [인터뷰]

선명수 기자 2022. 1. 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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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어설프고 유쾌한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를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정원영을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준헌 기자


시와 노래는 있지만 뮤지컬은 존재하지 않았던 1595년, 영국 런던의 한 거리. 올리는 공연마다 쪽박을 차온 극작가 닉 바텀은 당대의 스타 작가 셰익스피어에 맞설 히트작을 찾기 위해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를 찾아간다. 닉은 앞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고,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이 예언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무언가를 응시하기 시작한다. “저런! 저런 장관이!” “왜요? 뭔데요?” “미래의 극장에서 대박칠 게 뭐냐면….” “뭔데요?” “뮤~우지컬.”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썸씽로튼>은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뮤지컬이 탄생했다면’이란 독창적인 상상력과 유쾌한 패러디로 가득찬 이 작품의 간판 넘버는 ‘뮤지컬(A Musical)’. 노스트라다무스(사실은 유명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조카 토마스)가 어설프게나마 내다본 미래의 공연을 예언하는 넘버다. 멜로디만 들어도 친숙한 온갖 유명 뮤지컬의 넘버를 정신없이 들려주며 미래의 ‘대박 상품’을 예언하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장광설에 관객석에선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져나온다. 능청스러운 유머로 관객들을 단번에 뮤지컬의 세계로 인도하는 노스트라다무스 역을 맡은 배우 정원영(37)을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습 때는 준비하지 않았던 애드리브가 무대에서 관객분들을 만나며 나온 게 많아요. 코로나19로 인해 입으로 내지 못하는 환호가 박수 소리를 통해 온전히 무대에 전달되는데,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습니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 편하게 웃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썸씽로튼>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정원영은 짧은 등장 시간에도 무대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등장 후 내리 10여분간 그는 쉴 새 없이 노래를 부르며 연기하고, 탭댄스를 추고, 덤블링까지 하며 말 그대로 무대를 쥐락펴락한다. 그렇게 노스트라다무스는 미래의 극장과 뮤지컬의 인기를 예언하며 히트작에 목마른 닉이 세계 최초의 뮤지컬을 제작하도록 돕는다. 빈약한 예지력으로 그가 훔쳐 본 “역사상 최고의 희곡으로 기억될 작품”의 제목은 바로 ‘오믈릿’. 훗날 셰익스피어가 집필할 ‘햄릿’을 잘못 본 것이다.

“‘햄릿’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가의 어설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철학 중 하나가 관객을 신처럼 만들라는 것이었죠. 원래 노스트라다무스가 턴을 하며 짠! 하고 등장해야 하는데, 연습실에서 옷을 밟고 넘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동료 배우들이 엄청 웃더라고요. 등장부터 관객이 이 캐릭터의 어설픔을 어떻게 바로 알 수 있게 할까 고민하다가, 무대 위에서 등장할 때마다 넘어지고 있어요. 그때마다 관객분들도 이 캐릭터를 직감하고 웃음으로 맞아주시더라고요.”

뮤지컬 <썸씽로튼>의 한 장면. 정원영은 등장과 함께 이 뮤지컬의 상징과 같은 넘버 ‘뮤지컬(A Musical)’을 들려준다. 엠씨어터 제공


그가 등장과 함께 부르는 이 작품의 상징과 같은 넘버 ‘뮤지컬’엔 <캣츠> <시카고>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노트르담 드 파리> 등 유명 뮤지컬의 대표곡들이 담겨 있다. 이 시대 모든 뮤지컬에 대한 헌사와 같은 곡이다. 2020년 초연에선 브로드웨이 원작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면, 이번엔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하도록 바꿨다고 한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미래를 보기 위해 몸을 푸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최근 붐을 일으킨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춤을 동작 속에 넣는 식으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구성했어요. 대사 한 마디, 동작 하나에도 저만의 방식으로 유머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연습 과정에서 수많은 버전을 준비해 최고를 찾아내는 식으로 작업했죠.”

두 번째 시즌에 작품에 합류하게 된 정원영은 대선배인 남경주와 번갈아 노스트라다무스 역을 맡는다. 초연 때는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 김법래가 노스트라다무스를 연기했다. 정원영은 “브로드웨이에서도 한국 공연에서도 저보다는 연령대가 높고 캐릭터가 확실한 배우들이 이 역할을 해왔기에 저와 어울릴지 고민이 있긴 했다”면서도 “관객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캐릭터가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저만의 색깔이 담긴 노스트라다무스를 찾으려고 했어요. 라이선스 공연이지만 창작을 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 이 역할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하고, 그 부분에 중점을 둬서 역할에 임하게 됐습니다.”

뮤지컬 배우 정원영. 이준헌 기자


2007년 뮤지컬 <대장금>으로 데뷔해 올해 데뷔 15년차를 맞은 정원영은 뮤지컬 <맨 오브라 만차> <멸화군> <렌트> <신과 함께>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해 왔다. 최근 첫 영화 촬영을 마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최근 배우로서 제 역할과 위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인지, 당연했던 것들에 대해서 당연하지 않았음을 체감하는 시기였어요. 정체돼 있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무대뿐 아니라 스크린이나 (방송)매체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연기 폭을 넓혀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정원영이란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노를 저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예전엔 그냥 막연히 좋은 배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달라진 생각도 있어요. 관객들에게 한 번을 봐도 기억에 남고, 한 번을 봐도 앞으로가 궁금해지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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