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꾀하는 나쁜 '정체성 정치'

한겨레 2022. 1. 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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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메시지를 보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당대표가 지난 6일 저녁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포옹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왜냐면] 전후석 | 뉴욕 변호사·다큐멘터리 <헤로니모> 감독

6년 전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과 그 후 4년간의 혼란을 버티었기에 제게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재외동포로서 요즘 한국의 대선을 보니 내성이 아직 부족한 듯싶습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닌 합리적인 다수가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싶고요. 이야기해보고 싶은 부분은 정치인들이 승리를 위해 취하는 정치공학에 관한 것입니다.

작년 국민의힘에서 이준석 체제가 출범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그때 ‘정체성 정치’의 맛을 본 이 대표가 앞으로 그 유혹을 떨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그와 손을 맞잡은 직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며 그때 느꼈던 불길한 예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 메시지는 선동적이고 배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죠. 매우 의도된 선택으로, 구체적으로는 2030 남성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불순한 정체성 정치입니다.

정체성 정치란 젠더, 종교, 인종, 성적 지향 등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한마디로 표를 얻기 위해 특정 집단에 어필하는 행위인데, 이는 포용과 보편성이 아닌 배타와 분열을 야기하는 속성을 지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메시지의 본질은 여가부의 실제 존재 가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부처나 조직이 비효율적이고 구시대적이라면 건강한 담론과 합의를 거쳐 개선 혹은 철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준석·윤석열 두 사람의 저 행위는 어떤 사회적 약자의 존재를 폄하하며(혹은 그런 제스처를 취하며) 반대에 있는 젊은 남성들의 표심을 얻으려는 매우 폭력적인 시도입니다. 이준석 대표는 이미 저 집단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승리를 맛보았던 기억이 있기에 선례를 답습하려는 듯합니다.

며칠 전 <뉴욕 타임스>는 이런 한국의 젠더갈등 양상에 대해 “혼란스럽다”고 표현했습니다. 선진국 가운데 대한민국의 남녀 월급 격차가 가장 크다는 점 등 몇가지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언급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사회적·정치적·경제문화적 위치는 아직 세계적 기준에 비춰 볼 때 한참 뒤처진다는 뉘앙스의 기사였습니다. 저 역시, 젠더 이슈를 더 오랫동안 고민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거주하며 방한할 때마다 제 또래 친구들의 젠더 인식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젠더갈등은 하나의 과정이자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제1야당의 대표와 그 당의 대통령 후보가 정체성 정치를 통해 경계 너머에 있는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듯한 태도를 보며 위험을 느꼈습니다.

트럼프 시대를 살며 권력의 힘을 쥔 다수가 보여준 정체성 정치―백인·기독교인·이성애자·남성―를 경험한 우리들은, 그의 임기 중에 아시아계, 흑인, 여성, 라틴계, 비기독교인, 성소수자가 돌아가며 배타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트럼프와 미국 우익단체가 주장했던 ‘백인 기독교 남성들이 사실은 가장 큰 피해자’라는 선동은 실제 많은 소수자에 대한 정치적 타자화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혹자는 물어볼 수 있습니다. 소수자들이 내세우는 정체성 정치는 문제가 없는가. 이것은 의미있는 문제제기입니다. 정체성 정치가 가진 속성상 다수가 실행하건 소수 집단이 실행하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수의 정체성 정치가 문제가 있기에 소수의 정체성 정치 역시 문제가 있다는 판단은 현실에서 집단 간 힘의 균형을 망각한 무책임한 결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 소수민족, 이민자, 장애인들이 내세우는 정체성 정치는 수위 조절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이게 어려울 때도 있지만, 선진국이라면 적어도 그들의 힘과 권리가 한 사회에서 다수와 최대한 균형을 맞출 때까지는 그 움직임과 연대를 긍휼히 바라볼 수 있는(혹은 지지해줄 수 있는) 성숙함을 다수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남성들을 향한’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의 정체성 정치는 긍휼의 미덕이 보이지도 않고 진보적이지도 않고 포용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분열적이고 배타적인 정치공학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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