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상고 '역전의 명수' 50주년, 7월 행사로 또다른 역전 꿈꾼다
1972년 7월 19일 서울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제26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이 열려 군산상고가 부산고에 9회초까지 1-4로 끌려가고 있었다. 9회말 모두가 군산상고의 패배를 점치는 순간, 선두타자 김우근의 안타와 고병석·송상복의 연속 볼넷으로 만루가 되며 차츰 달아올랐다.
김일권이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며 1점을 따라 붙고, 그 뒤 양기탁의 적시타로 순식간에 4-4 동점을 만들었다. 2사 만루 기회에 군산상고 3번 타자 김준환이 끝내기 좌전안타를 때리면서 5-4 짜릿한 역전승을 올렸다. 지역차별에 쌓인 울분과 한을 야구공에 실어 보내곤 했던 호남인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안긴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한 대목이다.
서울과 영남 고교들에게 억눌려 있던 호남 야구의 자존심을 곧추 세운 짜릿한 역전승이기도 했다. 광주서중 야구부도 전국 대회를 제패한 적은 있지만 중학과 고교 과정이 분리된 이후로는 1968년에 창단한 지 4년 밖에 안되는 군산상고 야구부의 처녀 우승이 최초의 역사였다.
이날 역전승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 유달리 군산상고는 1점 차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는 일이 많아 자연스럽게 ‘역전의 명수’란 별명을 얻었다. 당시 호남선 열차로 이리(현 익산)역에 야구부원들이 내리자 군용 지프로 군산까지 퍼레이드를 펼쳐 전북도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군산상고가 지금의 명성을 누리는 데 두 사람의 역할이 막중했다. 1931년 경성고무 창업주 이만수씨의 넷째로 태어난 이용일(91)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대행이다. 군산중학교를 다니다 2학년 때 서울 경동중으로 전학, 나중에 매형이 된 유복룡 이 학교 초대 감독의 권유로 야구부원이 됐다가 1950년 서울대 상대에 진학, 야구를 했고 한국전쟁에 입대 1953년 육군 야구단 창단 멤버를 거쳐 감독을 맡기도 했다.
제대 후 경성고무의 전무로 재직하던 이 옹은 사내 야구 동아리를 만들었다가 군산에 많았던 불량 청소년들을 교화시키는 데 야구를 활용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962년 2월 군산국민학교, 중앙국민학교, 남국민학교, 금광국민학교등 4개 학교에 야구부를 창단했고 이들이 휘문고나 동대문상고로 진학하는 모습을 보고 안되겠다 싶어 1968년 군산상고 야구부를 창단했다.
다른 인물이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의 주역인 최관수 감독. 이용일 옹은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주 대행을 맡기도 했는데 초대 감독에 김성근 감독을 임명할 정도로 선수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지도자를 높이 평가하는 구시대(?) 야구관을 갖고 있었다. KBO 초대 사무총장으로 국내 프로야구의 산파 역이기도 했는데 초기 구단 창단과 리그 운영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그의 기획력 덕이었다.
최 감독 역시 이 옹의 마음에 쏙 드는 지도자였다. 열정만큼은 대단해 늘 선수들과 함께 뛰고 구르며 창단 4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군산상고 야구부는 전국체전 우승을 하면 꼭 그 다음해 전국대회를 제패하는, 이상한 징크스를 갖고 있었던 점도 특이했다. 1971년 대통령배 준결승까지 진출할 정도로 신생팀 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는데 김봉연과 김준환이 군산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렸다. 최 감독이 파출소를 찾아가 두 제자 앞에서 엎드려 뻗친 뒤 몽둥이를 건네 자신을 때리라고 했다. 이 일이 야구부가 똘똘 뭉치는 계기가 돼 다음해 우승으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1977년 정인엽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는 최 감독과 선수들의 하나된 모습을 그렸다.
최 감독은 30대였던 1979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감독 직을 그만 둔 뒤 군산 시내에서 홈런 세탁소를 차리는 등 어렵사리 투병했는데 해태 타이거스에 대거 입단한 제자들이 찾아와 치료비를 보태는 등 정성을 다했으나 57세 한창 때인 1998년 타계했다
군산상고에 얽힌 전설 같은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은 전북 군산시(강임준 시장)가 오는 7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 동안 ‘역전의 명수 군산, 50주년 행사’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에 발맞춰 군산야구사기념관 건립도 추진돼 군산상고 야구부 출신들이 많은 물품을 모으고 있단다. 조계현 KIA 타이거즈 전 단장이 군산상고 야구부 출신 모임인 역전회 회장으로, 우종삼 군산시의회 예결위원장, 김기만 군산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 등이 지난해 연말 강 시장을 예방해 GM자동차 공장 철수 등으로 지역에 불어닥친 한파를 역전의 기회로 돌리자고 의기투합했다.
조계현 회장은 “군산상고의 역전승은 군산시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기적을 낳는다’는 교훈을 남겼다”라며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출신으로 항상 자부심을 느낀다. 올해 50주년 기념 행사와 군산야구사 기념관 건립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군산 금암동의 이른바 째보 선창(죽성리 포구)도 또다른 역전 신화를 꿈꾼다. 언청이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가 째보인데 주먹깨나 쓰는 언청이 객주가 일대 상권을 쥐락펴락했다는 유래와, 포구의 한쪽이 꼭 언청이 입마냥 움푹 들어가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맞서고 있다. 하여튼 낡고 칙칙하며 쇠락한 기운 물씬하던 어판장 건물을 도심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비어포트 1899’로 꾸몄는데 3월 정식 개장하면 새로운 명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대형 맥주회사만 자체 호프를 생산하고 대다수 수제맥주 브랜드들은 수입 호프에 의존하는데 군산 보리 재배농으로부터 수거한 쌀보리에서 호프를 추출해 젊은 수제맥주 마니아들이 14개 점포를 운영한 뒤 그 수익을 농민들에게 돌려준다니 그 뜻도 갸륵하다.
갈매기떼가 끼룩끼룩 날고 썰물이 빠져나가는 모습, 갯벌에 노을이 깃드는 장관을 바라보며 수제맥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명소가 될 것 같다. 황민호 사장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리 호프를 갖고 이런저런 배합을 하는 등 좋은 맥주 맛을 선사하기 위해 젊은 사장들이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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