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軍] 북한 '극초음속 미사일' 1발에 수십억.. 남한에 쏘면 돈 낭비일까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스위스에서 유학해 자본주의를 맛본 29세 젊은 지도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년 전 현대사에 유례없는 3대 세습으로 김씨 왕조를 이어받을 당시, 일각에선 그가 개혁적 리더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서방세계를 경험한 그가 폐쇄국가의 빗장을 풀고 비핵화 대화의 장으로 나와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였지요.
하지만 집권하자마자 개헌에 착수해 ‘핵’을 최초로 헌법에 명시한 그는 선대와 달리 폭주를 거듭했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 개발 사실을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으며 협상카드로 쓰려 했지만 그는 대놓고 핵 무력 증강에 집중한 겁니다. 김 위원장 집권 10년간 북한의 핵실험은 총 네 차례 있었고 핵 탄두 탑재 가능성이 열려 있는 탄도미사일은 65회나 쏘아 올렸습니다. 이달 5일과 11일,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인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연초부터 이 미사일을 놓고 남북의 진실게임이 한창입니다. 북한은 “두 차례에 걸쳐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해 성능을 최종 확증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리 군 당국은 “성능과 형상 면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이 아닌 개량된 탄도미사일”이라고 평가절하했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장이 맞다면 낮은 고도에서 마하 5(시속 6,120㎞ㆍ초속 1.7㎞) 이상의 속도로 변칙기동을 하는 이 미사일은 평양에서 약 195㎞ 떨어진 서울을 1분 만에 타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탄도미사일에 특화된 기존 방어체계로는 탐지와 요격이 어려워 북한이 30년 전 언급했던 ‘서울 불바다’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반면 이를 ‘개량된 탄도미사일’로 결론 내린 우리 군 당국은 “현재 한미 연합자산으로 탐지 및 요격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상당수 언론과 여론은 북한의 발표에 힘을 실으며 우리 군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11일 이 미사일이 동해상으로 발사될 당시 우리 군이 측정한 비행거리는 ‘700㎞ 이상’이었는데 다음날 북한이 “1,000㎞를 날았다”고 발표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낙하지점을 300㎞나 놓쳤는데 어떻게 요격이 가능하겠느냐는 의심입니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걸까요.
탄도·순항 장점만 갖춘 '극초음속 미사일'
군 당국이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쐈다”고 인정한 적이 한 차례 있긴 합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해 9월 28일 북한이 자강도 일대에서 쏘아올린 미사일을 포착하고도 과거와 달리 순항미사일인지, 탄도미사일인지 곧바로 결론 내리지 못했는데요. 정체불명의 미사일이 발사 후 대기권 밖으로 날아갔다가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떨어지는 탄도미사일과 저고도에서 수평 궤도로 비행하는 순항미사일의 특성을 모두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북한이 이를 극초음속 미사일인 화성-8형이라고 공개하자, 우리 군이 부인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다만 속도는 마하 3, 비행거리는 200㎞에 불과해 개발 초기단계라고 평가했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탄도미사일의 탄두부에 ‘극초음속 활공체(HGV)’를 장착한 미사일로, 고도 30~70㎞에서 HGV가 추진체와 분리된 뒤 마하 5 이상의 속도(극초음속)로 목표를 향해 복잡한 궤도로 비행한다는 점에서 위협적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의 장점만 두루 갖춘 건데요. 동력에 의해 로켓이 곡선을 그리며 대기권 밖으로 날아갔다가 떨어지는 탄도미사일은 파괴력은 엄청나지만 높이 나는 탓에 레이더망에 쉽게 잡히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수평 궤도로 비행하는 순항미사일은 탄두 중량과 속도가 떨어져 파괴력은 작은데 정확도는 높고 비행 고도가 낮아 탐지는 어렵고요. 다시 말해 극초음속 미사일은 ‘파괴력은 크면서 레이더망에 잡히지도 않는 미사일’이란 거지요.
정부, 北 미사일 평가절하한 이유는
군 당국은 이 성능을 구현하려면 최소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속도’인데요. 관건은 미사일이 활공지점, 즉 저고도 비행을 하거나 떨어질 때 ‘마하 5이상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상대가 요격이 어려워지니까요. 미사일은 상승할 때 최대속도를 찍는데 이 속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15~20년 전 개발한 노동미사일은 마하 9~10, 무수단 미사일은 마하 14의 최대속도를 보이는데도 극초음속 미사일로 칭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는 활공체의 형상입니다. 고도 30~70㎞에서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도록 장시간 극초음속으로 지그재그 변칙비행을 하려면 활공체가 원뿔형이 아닌 날렵한 글라이더가 돼야 한다고 합니다. 원뿔형은 빠른 속도를 내지만 금방 낙하해버리니까요. 중국의 ‘둥펑-17’을 비롯한 군사강국의 극초음속 활공체가 글라이더 형태를 띠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군 당국이 지난해 9월 28일에 북한이 쏜 화성-8형은 극초음속 미사일로 분류하고 5, 11일에 발사한 미사일을 ‘개량된 탄도미사일’로 보게 된 결정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 그럴 것이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 이 무기를 개발한 국가가 러시아, 중국, 미국에 그칠 정도로 손에 꼽히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수년간, 10여 회 안팎의 시험발사를 거쳐 개발한 무기를 북한이 수개월 만에 뚝딱 완성했다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평양에서 서울, 1분 만에 타격' 사실일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극초음속 미사일의 명확한 정의가 아직 없기에 남북 간 미사일 논쟁은 한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극초음속 미사일이냐 아니냐’를 떠나 실제 방어가 가능한지 여부일 겁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나중에 개발을 완료하면 자강도에서 청와대는 약 1분 30초, 남한 전 지역은 3분 내 타격할 수 있다니까요. 더구나 군 당국은 “11일에 쏜 것 역시 극초음속 미사일은 아니지만 성능은 진전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 당시 미사일이 낮은 고도에서 바나나킥처럼 휘어지는 선회기동을 한 차례 성공했다고 합니다. 북한 주장처럼 완성은 아니어도, 둥펑-17과 같은 극초음속 미사일 흉내내기엔 성공했다는 거지요.
미국은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당시 본토 피격을 대비했었다거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비롯한 서부 공항에 15분간 이륙금지 조치를 시행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미 재무부는 미사일 개발에 쓰이는 철강과 합금, 소프트웨어, 화학물질을 조달했다는 이유로 북한인 6명과 러시아인 1명 러시아 기관 1곳을 특별제재 대상에 포함했고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 무력시위에 대한 첫 제재였습니다.
반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표정입니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이번 발사체에 대해 탐지뿐 아니라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청와대는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강한 유감”을 표했지만 이번에도 ‘규탄’이나 ‘도발’ 표현은 쓰지 않았습니다.
美는 못 막아도 우리는 막는다?... "지구 곡률 때문"
답은 ‘둥근 지구’에 있습니다. 북한이 사거리를 늘려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1만㎞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면 지구 표면의 굴곡(곡률) 때문에 미국은 막강한 탐지자산을 보유했더라도 4분의 1정도만 잡아낼 수 있습니다. 레이더의 전자파는 직선인데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거리가 멀어질수록 숨어버리는 곡선이 생기는 겁니다.
반대로 북한이 이 미사일을 남쪽으로 쏘면, 종심이 짧은 평지에 떨어져 미사일이 뜨는 순간부터 우리 레이더에 포착됩니다. 미사일이 뜰수록 점점 우리와 가까워지기 때문에 동해상으로 쏠 때보다 탐지가 훨씬 쉽습니다. 탐지가 가능하면 요격도 어렵지 않겠지요. 우리 군의 탐지는 이지스함 레이더와 탄도탄조기경보레이더, 요격은 패트리엇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로 하는데요. 사드는 마하 10 이상의 미사일도 잡아내기 때문에 극초음속 미사일이라도 해도 요격이 가능하다는 게 군 당국의 평가입니다. 낙하할 때 마하 10의 속도를 내는 미사일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북한에서 개발한 대남용 미사일은 대기권까지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미국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은 레이더 전파가 못 미치는 대기권을 찍고 내려오기 때문에 위협적인 것과 대조적입니다. 같은 극초음속 미사일이라도 미국이 바라보는 것과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다른 겁니다. 다시 말해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은 미국은 몰라도 한반도에선 게임체임저가 될 수 없단 소립니다. 물론 북한이 아닌 거리가 떨어진 러시아나 중국에서 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겠지요.
11일에 탐지 못한 ‘300㎞의 공백’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당시 합참이 발표한 ‘700㎞ 이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사일이 700㎞ 이후 레이더 탐지 고도 밑에서 비행한 탓에 우리 군 자산에는 700㎞까지만 찍혔다는 건데요. 그 이후 지점부터는 미국 자산에 찍혀 우리 군도 이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우리가 노출시킬 수 없는 협력국의 자산이라 ‘700㎞ 이상’으로 발표가 제한됐던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보다 동쪽에 있는 일본 역시 미사일의 종말단계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만약 이 미사일이 동쪽이 아닌 남쪽을 향해 1,000㎞를 날았다면 우리 역시 낙하지점까지 볼 수 있습니다.
남한에 극초음속 쏘면 수십억 날리는 꼴
통상 탄도미사일을 한 번 발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억~40억 원이라고 합니다. 북한이 미국을 타깃으로 비싼 돈 들여 만든 이 미사일을 남쪽으로 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와 대북제재로 2020년 경제성장률이 -4.5%를 기록한 상황에서요. 뜨자마자 남측 레이더에 잡힐 미사일을 발사하는 건 허공에 수십억 원을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인 KN-23과 에이태킴스인 KN-24, 초대형 방사포(다연장로켓) 등 대남용 미사일이 버젓이 있는데 1만㎞를 넘게 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는 것과도 같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소 잡는 칼로 닭을 잡겠다’는 발상이지요. 북한도 이를 모를 리 없고요.
바꿔 말하면 상대할 적이 북한밖에 없는 우리나라가 둥펑-17 급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실제 우리 군 당국은 극초음속의 속도를 내는 무기는 만들어도 글라이더 형상의 활공체가 변칙기동을 하는 고성능의 무기체계는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방공시스템이 허술한 북한을 상대로 이런 무기를 개발하는 건 실익이 없고 헛돈을 쓰는 일이니까요.
"대선 앞두고 北 미사일 우려된다"는 대통령
국민들이 불량국가인 북한보다 우리 군의 발표를 더 믿지 않는 건 그간 불신이 누적됐기 때문일 겁니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버젓이 갖추고도 같은 탈북민에게 동부전선 철책이 두 번이나 뚫린 이상 “사람 하나 못 막는데 미사일을 무슨 수로 방어한다는 거냐”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미사일을 탐지하고 요격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과 실제 100% 방어하는 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대선을 앞둔 시기에 북한이 연속해서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는 것은 우려된다”며 “정부 각 부처에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은 불난 국방부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습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탐지 및 요격이 가능하다”는 국방부 발표가 ‘대선 발언’에 부응하는 정치적 행보로 읽히게 된 겁니다. 당분간 군 당국의 대응이 국민들에게 더 안 통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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