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검푸른 장벽 아닌 인류 역사 발전 원동력"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인류 대부분은 땅 위에서 살아간다. 선사시대에는 동물을 사냥하거나 열매를 따서 먹었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농경과 목축 활동으로 식량을 조달했다. 역사의 무대는 대개 육지였다.
서양사학자인 주경철 서울대 교수는 육지에 치우친 역사 서술은 반쪽짜리라고 본다. 지구에서 육지보다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바다에서 일어난 일까지 통합해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15세기 이후 세계사를 해양 중심으로 정리한 책 '대항해 시대', '문명과 바다'를 썼다. 두툼한 신간 '바다 인류'는 시대를 확장해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해양사를 고찰한 노작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의 출발점부터 바다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바다가 인류 소통을 막은 검푸른 장벽이 아니라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만 해도 육지를 벗어나 바다까지 아우르는 관점으로 분석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 지중해에서는 그리스와 로마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 집단이 협력하고 투쟁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중해 동부 페니키아는 그리스 문명 성립에 영향을 미쳤다. 고대 그리스인은 자신들이 사용한 문자를 '페니키아 문자'라고 불렀다. 페니키아와 접촉한 그리스 상인들이 먼저 문자를 수용했다고 알려졌다.
저자는 "지중해 세계는 중심부와 주변부를 가진 수많은 네트워크의 집합체들로 구성됐다"며 "고대 지중해는 올리브기름, 포도주, 직물, 도자기, 철, 은 같은 상품이 이동하고 건축, 문자 등 문화 자산이 전달되는 해상 네트워크의 중첩으로 그리는 게 타당하다"고 말한다.
그는 근대에 중국과 유럽의 운명이 달라진 배경에도 바다를 향한 태도가 있다고 진단한다.
중국은 송나라 때부터 해상 교역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해양 네트워크가 확대되면서 동남아시아와 인도양 세계를 소개한 서적도 늘어났다. 이와 더불어 아랍 세계의 상인들이 동쪽으로 팽창을 시도했고, 인도에는 아시아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촐라 왕조가 들어섰다.
중국은 명나라 초기인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정화(鄭和)가 이끄는 함대를 아프리카까지 보냈다. 하지만 황제가 바뀐 뒤 해양 교류를 중단하고 바닷길을 막는 해금(海禁) 정책을 펼쳤다.
마침 유럽에서도 11세기 이후부터 해상 교역이 활기를 되찾았다. 북유럽 도시들이 협력하는 한자 동맹이 생겨났고,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치아와 제노바 같은 항구 도시가 성장했다. 유럽의 해양 팽창은 배들이 세계 각지를 탐험하는 '대항해 시대'를 낳았다.
저자는 "중국이 어느 순간 '해상 후퇴'를 했지만 유럽이 '해상 팽창'을 지속한 것이 근대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며 "당시 유럽이 '발견'한 것은 대륙이 아니라 세계의 바다였다"고 분석한다.
이어 "포르투갈은 아시아의 바다에서 상당히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며 "유럽인들은 아시아 내륙에 식민 제국을 건설하기 전에 먼저 바다를 공략했다"고 주장한다.
바다가 발전의 추동력이 된 또 다른 사례는 중앙아메리카를 관통하는 파나마 운하다. 1914년 이 운하가 개통되면서 미국 동부와 서부를 잇는 항로가 매우 짧아졌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간 항해 거리는 2만900㎞에서 8천370㎞로 줄어들었다. 미국은 운하를 통해 광물과 농업 자원을 더 쉽게 유통할 수 있게 됐다.
저자는 "파나마 운하로 대서양과 태평양이 연결됨으로써 그야말로 세계의 바닷길이 이어졌다"며 "미국은 세계의 바다를 연결하고 통제하고자 했다"고 짚는다.
인류의 바다 역사를 밀도 있게 들여다본 저자는 앞으로도 '바다의 시대'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바다의 중요성에 눈을 뜬 각국이 해상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커졌고, 해적과 밀수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심각한 해양 오염과 어류 남획도 문제다.
바다에서 공포와 희망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던진 마지막 메시지다. 정답은 정해져 있지만, 그 답을 인류가 실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휴머니스트. 976쪽. 4만8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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